회계법인이 주도한 분식회계 전모
회계법인이 주도한 분식회계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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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누굴 믿고 투자해야 하나

공인회계사와 변호사, 외부감사가 뒷돈을 받고 한 기업의 수백억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사건이 일어났다. 가짜 투자 계약서를 만들어 코스닥 상장법인 신명비엔에프(현 케이디세코)의 300억원대 손실을 숨기고 허위 감사보고서를 내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 누구보다 투자자들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인 투자정보를 제공해야할 당사자들이 투자자를 속이는 자료를 만드는데 조직적으로 가담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본지가 신명비엔에프의 수백억대 분식회계 사건을 취재해봤다.

회계법인 화인, 뒷돈 받고 신명비엔에프 300억원대 분식회계 주도
감사자 도덕성↓, 투자자 피해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사전 예방 필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 1부는 지난 15일 신명비엔에프의 당기순손실 314억원을 숨기는 등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대주주 이모(47)씨와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해 준 회계법인 화인의 전 이사인 백모(44)씨, 공인회계사 김모(37)씨를 비롯한 변호사와 채권자 등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도덕적 해이 심각

금융감독원의 내사로 수백억대 분식회계가 적발된 곳은 닭고기 가공업체인 신명비엔에프. 대주주인 이씨가 경영하던 회사는 재작년 상장 폐지 위기를 맞으며 사실상 자본 잠식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씨가 회삿돈 120억원을 빼돌려 써버린 데다 부도 직전인 자회사에 담보도 없이 회삿돈 280억원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금융조세조사 1부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2005년 12월부터 2년간 개인채무를 갚고 주식투자에 사용하는 등 다른 용도로 회삿돈을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08년 5월 자회사에 빌려준 자금 280억원을 회수하지 못해 신명비엔에프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자 백 전 이사 등과 짜고 314억원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숨기는 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적발되면 상장 폐지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씨는 회계장부 조작에 나섰다. 가짜 투자 계약서를 만들거나 사채를 회사 자금으로 위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300억원대의 손실을 숨긴 허위 재무제표를 만들었던 것.

그는 재무제표를 조작해준 회계사와 변호사에게 1000만원씩을 줬으며, 회계법인 화인의 전 이사였던 백씨에게도 1억1000만원을 줬다. 그러면서 그는 엉터리 재무제표가 적법한 회계기준에 따라 처리된 것이라는 감사보고서를 낼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백 전 이사는 이씨로부터 사례비를 받아 챙긴 후 후배 회계사 4명과 전담팀까지 꾸려 직접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등 분식회계 전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검찰조사결과 드러났다.

이씨와 회사 임원, 채권자들은 백 전 이사가 마련한 분식회계 방안에 따라 허위 채권양도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50억원의 사채를 회사자금으로 위장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분식회계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김모(41) 변호사는 분식회계가 마치 정당한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허위 내용의 법률자문 의견서를 작성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첩보를 입수한 금융감독원과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신명비엔에프의 수백억대 분식회계는 막을 내리게 됐다. 신명비엔에프는 지난해 9월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분식회계가 일반 투자자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신인도 추락?

검찰은 “기업의 회계를 감사해야 할 회계사와 변호사가 부정한 돈을 받고 허위 감사보고서와 법률 의견서를 작성해, 이들의 모럴 해저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기업의 분식회계를 회계법인이나 회계사가 눈감아줬다가 들통 난 경우는 많지만 주주와 감사인이 분식회계를 주도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분식회계가 사후에 적발되더라도 투자자들의 피해를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사전 예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회계보고서는 기업에 대한 건강진단서나 마찬가지다. 주주나 투자자가 경영 상태나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본적인 정보”라며 “이를 엉터리로 작성하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라고 비난했다.

이는 기업이 재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진솔히 기록해야 함은 물론 공인회계사 또한 사명감을 갖고 감사에 임해야 투자자들도 안심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래야 증권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한편으론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서라면 분식회계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일각도 있다. 기소된 회계사 중 일부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을 구제해 주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는 소문이 나오는 것 또한 그러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이 주주나 투자자 개인의 피해는 물론 금융시장의 발전을 해치고 나아가 국가신인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투자자 보호측면에서라도 회계법인까지 주도한 분식회계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에 보다 엄격한 심사 기준을 가지고 공정공시 자료를 검토하고 공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물론, 감사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강구하는 차원의 큰 고민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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