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세계에 심취…‘패륜아’로 전락
최근 인터넷 게임 중독이 죽음을 부르고 있다. 닷새 동안이나 PC방에서 식사도 거른 채 게임에만 몰두하던 30대 남자가 숨지는가 하면, 한 20대가 게임을 말린다는 이유로 친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벌어져 사람의 목숨까지도 앗아가고 있는 것. 더욱이 친모를 살해한 오모(22)씨의 경우 범행 직후 태연하게 TV를 보다 집을 나와 다시 게임을 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본지가 사람 잡는 인터넷 게임중독의 심각성을 진단해봤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용산구의 모 PC방에서 고객 손모(32)씨가 화장실로 가다 갑자기 쓰러진 것을 종업원 강모(25)씨가 발견해 119 구급대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손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곧바로 응급조치를 받았으나 3시간여 뒤에 숨을 거뒀다. 강씨는 경찰에서 “손씨가 화장실로 가려고 문쪽으로 걷다가 갑자기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119구급대 요원들이 손씨를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결국 숨졌다”고 말했다.
사람 잡는 게임중독
손씨는 지난 12일부터 숨지기 전까지 하루 15시간 PC를 사용할 수 있는 1만원권 정액권을 끊고 온라인게임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이 기간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한 끼도 하지 않은 채 라면과 소시지, 햄버거 등으로 끼니를 때운 것으로 알려졌다.
PC방 종업원 최모(26)씨는 “손씨가 옷도 갈아입지도 않고 씻지도 않은 채 너무 오래 게임에 빠진 것을 보고 ‘저러다 몸에 문제가 생기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잘 때는 안경을 벗고 엎드려 잤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손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데에는 인터넷 게임 중독이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손씨는 설 연휴였던 닷새 동안 끼니를 거의 거른 채 온라인 게임에만 빠져 지냈기 때문에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여기에 게임만 한다고 꾸중하는 어머니를 숨지게 한 20대도 있었다. 그는 이 끔찍한 짓을 저지른 뒤 PC방에서 또 게임을 하다 붙잡혔다. 또 게임에 대한 집착은 도피과정에서도 계속됐다.
경기도 양주경찰서 수사과장은 “범행 후에도 태연히 PC방을 서너 시간 씩 다니거나, 또는 어머니한테 훔친 카드로 게임기를 구입하는 등 게임에 몰입한 흔적이 있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세대 넘나드는 문제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은 교수팀은 작년 말 게임 중독자들이 마약 중독자와 비슷한 뇌 구조를 갖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충동 조절 또는 중독과 관련된 대뇌 특정부분이 마약 중독자들과 비슷한 활동성을 보였다는 것.
여기에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9~19세 어린이·청소년 중 2.3%, 17만명이 약물치료가 필요한 인터넷 중독 고위험군 이라고 분석했다. 게임 중독자들은 마약중독자처럼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거나 판단력이 흐려져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폭력적이거나 대인 기피, 우울증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청소년뿐 아니라 앞서 두 사람의 경우처럼 성인들 중에도 게임중독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 성인을 위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국 첨단 정보기술(IT)이 보편화되면서 심각해진 인터넷게임 중독 현상은 이제 세대를 넘나드는 화급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 여가를 보내는 도구인 게임이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뿐 아니라 패륜적인 살인사건까지 불러오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다. 게임 중독자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실정이다. 정부 어느 부처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지도 분명치 않다는 게 일각의 비난이다.
정부 뒷짐만 질래?
특히 대부분의 심리 전문가들은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본인이 중독됐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데에 뒀다. 한 전문가는 “의지력이나 사회적응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쉽게 반복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심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게임중독의 심각성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미 미국·네덜란드·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게임 중독 치료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영국 역시 지난해 도박과 알코올중독 전담 의료시설에 온라인게임 중독 치료코스가 신설됐다.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체계화된 게임중독 치료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연계한 치료프로그램을 논의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한 치료책임자는 “게임 중독자들이 무조건 접속하지 못하게 해선 소용없다.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결국 인터넷 게임 중독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는 상태를 넘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가 게임중독자의 예방 대책에 나서는 것은 물론, 게임중독자가 전문가 상담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지원체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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