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대상 치정살인 위험수위
여성대상 치정살인 위험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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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통했던 사람이 ‘살인마’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치정살인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정을 통했던 배우자나 애인이 살인마로 돌변해 여성을 살해하고 유기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 최근 살해한 여성을 차 트렁크에 싣고 사흘 동안이나 출퇴근을 한 이도 다름 아닌 남자친구였다. (사)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70여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분석한 결과로 실제 그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치정살인으로 번지는 여성폭력의 위험수위를 취재해봤다.

지난해 남편·애인에게 살해된 여성, 언론보도된 것만 최소 70여명
데이트폭력 가정폭력으로, 폭력 눈감는 판결로 국가가 살인 방조?


승용차 트렁크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한 남자가 경찰에 자수를 하면서 치정살인의 전모가 드러난 것. 전북익산경찰서는 지난 21일 여자친구인 박모(37)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박씨의 차에 싣고 다녔던 최모(25)씨에 대해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여친 사체 싣고 출퇴근?

최씨의 자수는 친구의 설득에 의해 이루어졌다. 최씨는 여자친구인 박씨를 살해한 사실을 친구에게 털어놓았고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자수를 권유했다. 최씨는 경찰에서 “얼마 전에도 100만원을 빌려줬는데 아침부터 돈을 요구하고 욕까지 한 여자 친구를 말다툼 끝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그는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특정 욕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여자친구로부터 그 말을 듣자 화를 참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관계자는 지난 2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어제 현장검증을 해 영장이 발부된 상태”라며 “본인이 후회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산에서 직장을 다니던 박씨가 명절을 맞아 군산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갔고 이때 최씨와 모텔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한 달반 가량 사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박씨는 자신의 어린 외모를 이용해 최씨에게 33살이라고 속이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5일 최씨는 군산 경장동의 한 모텔에서 박씨가 카드빚이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자 말다툼 끝에 박씨를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밝혔다. 이후 최씨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씨의 소나타 승용차 트렁크에 시신을 실었다.

모텔에서 차 뒷좌석으로 그리고 인적이 드문 익산시 황등면 인근에서 시신을 트렁크로 옮겼던 것. 원래 승용차가 없었던 최씨는 시신을 태운채로 3일 동안 태연하게 출퇴근까지 했다. 그러던 중 최씨는 익산시 부송동의 한 터미널에 시신을 차량과 함께 유기했다. 하지만 최씨가 친구의 권유로 자수하면서 일주일 만에 치정살인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처럼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데이트 폭력이 치정살인으로까지 번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트 폭력은 결혼 이후 가정폭력이 되고, 가정폭력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이러한 치정살인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국여성의전화는 작년 한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수가 7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1년간 46명의 여성들이 남편에게 살해됐고 24명은 남자친구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반면 아내에 의해 남편이 살해된 경우는 10건으로 모두 가정폭력 희생자로써 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경우라고 여성의전화는 전했다.

최후의 저항 ‘살인’

이에 대해 여성의 전화는 “국가가 살인을 방조한 격”이라고 주장했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제도적으로 예방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국가가 아내폭력의 현실에 대해 눈감고 있다는 사실은 재판부의 판결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6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제초제로 살해한 아내 A씨 역시 27년간이나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지만, 사건 당일 폭력이 없었고 살인을 ‘계획했다’는 이유로 검찰은 가중형(1심에서 10년)을 선고했다.

폭력 남편이 구타 중에 아내를 살해한 경우에도,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는 이유로 ‘살인’이 아니라 ‘폭행치사’ 사건으로 처리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는 게 여성의전화의 설명이다.

결국 아내를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남편과, 지속되는 폭력에 대한 최후의 저항으로 남편을 살해한 아내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공정한 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의전화는 남편과 남자친구의 구타로 인해 죽은 여성들과 간신히 살아남은 여성들, 그리고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편을 살해한 아내들은 ‘누구 하나 죽어야 끝이 난다’는 가정폭력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들이 보내는 절규와 경고의 신호를 한국사회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치정살인으로까지 번지는 여성폭력은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과거에 친밀한 관계였던 남성이 가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조사는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건만을 분석한 것으로 실제 희생된 여성들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의전화의 분석결과는, 제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되는 여성들에 대한 통계가 공식적으로 집계되어야 할 필요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전화는 여성폭력이 모르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는 통념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가정폭력상담소 상담건수 1766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의 97.6%는 남성이었으며 피해자와의 관계는 남편·전 배우자·애인·전 애인이 82.8%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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