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뿌리’두고 세력 확장에 ‘골몰’
국내에 뿌리를 내리는 외국인 조직 폭력배들이 늘고 있다. 국내 조폭들이 세계로 활동무대를 넓혀나가는데 반해, 외국인 조폭들은 국내에 침투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 폭력뿐 아니라 밀수와 마약운반, 공항에서의 소매치기, 위조달러의 사용, 인신매매 등 범죄의 종류도 점점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에 흩어진 조직원과 상시 연락 체계를 갖추는 것은 물론, 정기적으로 단합대회도 열고 있어 세력 확대해 치중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희귀 언어를 사용하거나 지문인식도 되지 않아 경찰의 수사에도 어려움이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본지가 국내에 침투한 외국인 조폭의 얼굴을 취재해봤다.

지난해 한 언론은 국내에 침투한 외국인 폭력 조직이 14개국 65개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경찰이 파악한 4600여명, 6개국 22개파보다 많은 수이다. 하지만 경찰이 군소조직을 제외하고 파악한 수임을 감안한다면, 언론이 보도한대로 이미 많은 외국인 조폭들이 국내에 침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인 조폭 14개국 65개파, 경찰 파악한 6개국 22개파보다 많아
초기 자국민이나 불법체류자 상대로 월급 갈취, 불법 도박장 운영
최근 인신매매, 마약밀매, 보이스피싱, 카드위변조 등 범죄영역 확대
지문 인식 되지 않고 희귀 언어 사용하는 등 경찰 수사 어려움 따라
국내 침투 현황
경찰은 외국인 폭력조직의 3분의1가량은 국내로 들어와 결성됐고, 3분의2는 자국 폭력조직에 가담해 활동하다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수배를 피해 우리나라로 들어와 새로 조직을 만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이 파악한 6개국은 중국(2개·2300명), 베트남(5개·800명), 필리핀(2개·300명), 태국(4개·100명), 방글라데시(4개·100명), 러시아(11개·1000명) 등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 외에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미국, 몽골, 인도네시아, 일본 등을 추가하고 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언론에서 보도한 14개국 65개라는 외국인 조폭 현황이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난해 외국인 합수부를 마련해 외국인 조폭의 국내침투 현황 등을 조사 중에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합동수사부는 ‘외국인 조직범죄와 강력범죄에 범정부적 대응 체제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설치됐다. 대검찰청을 주축으로 서울중앙, 서울남부, 의정부, 인천, 수원, 부산, 대구, 광주 등 8개 지방검찰청에 설치됐으며, 수원지검 안산지청에는 지역합동수사부를 설치해 외국인 조직범죄의 척결에 나선 것이다.
이는 체류 외국인 증가로 외국인 범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다, 외국인 범죄의 조직화·폭력화 조짐이 나타나는 데에 따른 국가적 조치였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말 불법체류자는 20만여명으로, 전체 외국인 노동자 115만명 가운데 17.3%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 외국인 범죄현황에 따라서도 지난 2007년 1만 4524건에서 지난 2008년 2만 523건으로 41.3%나 증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동포(조선족),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지역의 신흥 조직들이 무섭게 세를 확장하고 있다”며 “이들 조직은 가리봉·대림·구로 등 서울 지역과 경기 안산·수원, 인천 등 자국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나가고 있으며, 자국민들끼리 서열을 정해 범죄 집단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합수부 관계자는 외국인 폭력조직의 범죄유형을 폭력조직, 마약, 강력사범, 문서위조, 경제 범죄로 분류해 현황 파악에 나서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원래 지난해 말 전체적인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지만, 외국인 범죄가 늘어남에 따라 오는 3월 말로 미뤄졌다”고 밝혔다.
세력 확장 어떻게?
사실 외국인 범죄 조직은 초기 만해도 불법체류자 등 자국민들을 상대로 월급을 갈취하거나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신매매(자국 여성들의 국내 유흥업소 공급), 마약밀매,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카드 위변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불법체류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역시 조직화돼 직업적인 유형으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자국인 노동자 기숙사를 방문해 식료품을 비싼 값에 강매하거나 금품을 갈취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불법체류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은 이젠 고전이 된 것.
이들은 자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를 넘어 한국인 고용주까지 위협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현행법상 사업주가 불법체류자를 고용했을 시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는 점을 악용, 한국인 사업주를 협박하는 수법으로 취업도 시키고 밀린 월급을 받아주면서 수고비·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있다고 한다. 여권 위조 브로커를 통하면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강제출국을 당해도 몇 달 뒤 입국해 다시 취업할 수도 있는 점도 악용하고 있다.
국내 외국인 최대 폭력조직으로 알려진 ‘흑사파(중국동포)’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선족 밀집지역(강남·가리봉·대림 등 서울지역과 경기·안산·인천·울산·경남·창원 등 전국 20여곳)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며 국내 폭력조직과 대등한 관계로 연대할 만큼 세력을 키우고 있다.
이들은 초창기 도박장에서 지하 카지노, 성인오락실, 중국산 식품 밀수, 마약밀매 등으로 사업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유흥주점, 성매매 사업 쪽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전국 동포밀집 지역에 다방이나 호프간판을 내걸고 성매매를 일삼고 있는데, 그 대상도 자국민에서 내국인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더욱이 이들로 인해 서울 등 수도권이 범죄의 온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체 외국인 범죄의 68.1%가 이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경찰청의 외국인 범죄현황에 따라서도 전국적으로 외국인 범죄가 급증하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 신흥 폭력조직 범죄가 급격히 늘고 있음이 조사됐다.
경찰관계자는 “신흥 폭력조직들이 전국에 세력을 확장하면서 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한국어에 익숙해지고 한국 사회에 동화해 갈수록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경찰은 앞으로 몸집이 커진 외국 폭력조직들이 수입원을 확대하기 위해 서로 영역다툼을 공공연히 할 경우 외국인 범죄가 수직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외부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도박장, 유흥주점, 성매매업소 등 사업 이권을 둘러싸고 조직간 물밑작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더욱이 외국인 폭력조직 중 조선족을 중심으로 한 일부는 국내 폭력조직과 손을 잡고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는 국내 폭력조직과 연계해 합법을 가장한 ‘기업사냥’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밖에도 전국에 조직망을 구축하고 있는 베트남,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신흥 폭력조직들의 국내 폭력조직과의 연계도 경계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폭력조직은 대부분 국내 폭력조직과 공조 체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며 “이들 조직 간의 연계를 차단해 한국이 외국인 폭력조직의 범죄 온상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죄 예방대책 부실
특히 경찰은 “외국인 조폭의 움직임을 볼 때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해지면 우리 국민이 표적이 될 것”이라면서 “전국화·거대화되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이들 조직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 폭력조직이 내국인을 상대로 하는 등 세력을 확대해 나가는 데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외국인 범죄 예방책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4년부터 국내 입국 외국인의 지문날인 제도를 폐지하는 등 외국인 범죄자의 경우 거주지 파악은 고사하고 지문 감식조차 안 돼 범행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해도 추적이 어려워졌다.
덕분에 국내 폭력조직 중엔 이들 외국인 조폭의 신분 추적이 어려운 것을 악용하려는 조직도 생겨나고 있다. 이는 한국 폭력조직이 경찰 관리 대상에 올라 있어 범행 순간 수사기관에 인지되는 등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기 힘든 반면 외국인 조폭은 살인·강간 등 강력사건을 저질러도 본국으로 달아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국내 폭력조직과 외국인 폭력조직의 연계를 두려워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통역요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범죄수사에 활용되는 통역의 경우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해석이 형사처벌과 직결되는 만큼 전문지식을 갖춘 통역요원 확충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경찰청 관계자는 “외국인 범죄의 경우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인적 정보 또한 전무해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미해결 사건 가운데 여러 건이 외국인 노동자 소행으로 추정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따라서 검·경은 지난해 외국인 조직범죄에 대한 특별단속을 위한 합수부를 결성했다. 검찰 관계자는 “인터폴 공조 등을 통해 외국인 폭력조직에 대해 다각도로 수사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신원파악이 급선무이고 국정원·경찰 등 유관기관과 함께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결국 검·경은 이들 조직 간 연합으로 외국인 폭력조직의 범죄가 내국인을 상대로 확대되고 국내 조직의 범죄가 국제화하는 것을 예의 주시하는 등 차단에 주력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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