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신 계승 놓고 민주당vs국민참여당 간 신경전 치열
정치권, 盧 추모행사가 가져올 파급효과에 촉각 곤두세워...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MB정권심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야권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특히 야권단일화가 불투명해져 선거 전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재 정국을 돌파해 나가기 위한 계기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친노진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 추모행사가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추모행사를 통해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 노풍(盧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가 단순한 추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하여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본지는 현재 노풍(盧風)이 선거에서 미칠 영향에 대해 집중 조명해 봤다.
민주당vs국민참여당
진정한 노무현 계승당은?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전국에서 500만 명에 달하는 추모인파가 움직이면서 MB정권에 큰 타격을 준 적이 있다. 당시 MB정부의 외압이나 탄압에 의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인지하는 일부 국민의 여론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MB정권은 민심을 달래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바로 잡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야당도 분열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주당에서 나온 일부 친노인사들이 국민참여당을 창당하면서 ‘노무현 정신’을 두고 민주당과 참여당의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국민참여당의 이재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고, 노무현 대통령을 살려내는 길이 이 길이기 때문에 국민참여당을 만들었다”며 국민참여당이 진정한 노무현 당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참여당의 주장에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창당한 국민참여당은 가치나 의미에 있어 아무리 찾아봐도 민주당과 다른 것을 찾을 수가 없다”고 밝히고 “힘을 합쳐도 모자란 상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뜻을 무시 할 정도의 설득력 있는 창당 명분은 없다”고 비난했다.
이후에도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갈등은 계속 됐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것을 두고 김민석 민주당 지방선거기획본부장이 “노무현 정신에 맞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공방이 본격화 됐다. 유 전 장관의 경기도지사 출마로 민주개혁세력의 수도권 후보 단일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유 전 장관은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과 관계없는 정당”이라며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정당은 국민참여당”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이야기 하려면 좀 더 엄정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노무현 정신계승’ 갈등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며 이번 1주기 추모행사를 주도하는 당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노무현 적통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 추모행사가 각지에서 시작되고 있다. 노무현 재단에서는 ‘노 전 대통령 추모행사기획단’을 구성하여 대규모 추모행사에 나섰고,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가 오는 5월23일 서거 1주기 즈음에 맞추어 개봉될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특히 이번 추모행사는 일방적인 행사가 아닌 상호 소통에 중점을 둔 특별 토론회, 특별 미술전, 추모 전시회, 추모 콘서트, 학술 심포지엄 등 국민이 참여하는 형태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추모행사가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시민 “노풍은 없을 것이다”
6.2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출마한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풍(盧風)’이 불 가능성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노 대통령을 다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현 정부가 비정한 정권이란 이미지가 강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도 향상된 게 없기 때문에 그런 정서가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들의 정서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아닌 정권에 대한 견제와 공약에 의해 선거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친노계 핵심인물인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바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목을 받고 있다. 유 전 장관은 모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란 존재는 이제 많은 국
민들 가슴 속에서 정리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의 등장과 퇴장 그리고 죽음의 전모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각자가 목격하고 겪었던 부분을 통해 나름대로 정리하고 해석하고 그렇게 애도와 작별을 조금씩 해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지금 이대로는 아닌 것 같다’라는 번민, 고민, 성찰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되지 않을까싶다”면서 “그게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서 ‘노풍’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건 비단 노 전 대통령 하나만으로 일으킬 수 있는 건 아니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재해석,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재평가 등이 다 함께 진행되면서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의 발언은 노 전 대통령만의 영향력으로 이번 선거에서 승리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흐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노 전 대통령의 추모 분위기로 국민적 정서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6.2지방선거의 ´노무현 바람´ 가능성에 대해 “쉽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선거가 추모 1주기를 앞두고 있는 만큼, 그런 분위기는 형성될 것”이라면서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야권 인사들이 노풍을 인정하면서도 그 효과에 대해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은 단순한 추모분위기 만으로 선거에서 반전을 노리기에는 그 힘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서 노풍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야권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공천’과 ‘야권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정권을 견제하려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강해 어느 때보다 야권에 유리한 선거“라고 전제한 뒤 ”이번 지방선거 최대 이슈는 ‘노풍’이 아니라 야권의 선거연합과 후보단일화 문제”라며 “그런 만큼 야권이 유권자의 속성과 요구를 잘 받아들여 유리한 선거지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노풍의 최대 변수는?
일각에서는 5월 24일 일본에서 개최되는 축구 한일전이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를 잠재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맞이하여 국민적 열기가 뜨거워지면 반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행사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공교롭게도 한일전 날짜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5월 23일 다음날 배정되어 일각에선 여권의 음모론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올 만큼 부정적인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다.
민주당의 관계자는 “노풍이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월드컵 열기가 뜨거워지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젊은 층의 표심이 어디로 이탈할지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를 넘어 선거에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 해 서거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전국민적인 동정론이 앞섰지만, 그때의 국민정서가 이번 선거까지 이어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변수로는 ‘천안함 침몰 사건’을 들 수 있다. 천안함 침몰 후폭풍이 어떻게 몰아치느냐에 따라 야권이 탄력을 받을 수도 혹은 같이 침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정부와 군이 명확한 입장 발표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의혹이 커져만 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천안함 침몰이 내부 문제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면 군 기강문제와 사고대처 문제로 정부와 여권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고, 북침에 의한 문제라면 대북 햇볕정책을 펼쳐왔던 야권에 부정적인 여론을 몰고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발언문제도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과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독도 관련 발언을 비교하며 문제 삼고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정서가 민감한 만큼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넘어 간다면 이 대통령의 이미지에 지속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관측했다.
한 정치원로는 “여러 가지 외부 요인에 의해 야권이 노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내부문제”라며 “어떤 변수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외부 요인을 기대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 야권이 힘을 합쳐 내부에 직면된 문제를 하나둘씩 풀어 가는 것만이 현명한 대처법”이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