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천안함 함미 인양을 시작한 후 실종자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고 일부는 신원까지 밝혀지자 초조한 마음으로 인양작업을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들은 안타까움에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가장 먼저 시신이 발견된 서대호 하사 가족들은 마지막 희망이 무너지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서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 씨는 “차가운 바닷속에서 얼마나 외로웠니”라는 말과 함께 아들의 이름만 부르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오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시신이나마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변을 숙연케 했다. 서 하사는 평소 “남자로 태어났으면 육군 말고 해병대 정도는 가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을 정도로 씩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두 달 전 2함대에 배치받은 후 ‘대천함’을 탈 예정이었지만 대천함이 출동하는 바람에 자리가 빈 천안함을 타게 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일부가 가족 참관단으로 독도함에 나가 현장을 지켜보는 가운데 대부분은 해군2함대사령부에 마련된 임시숙소에서 TV를 통해 인양작업을 지켜봤다. 최정환 중사의 친형 춘환 씨는 “함미 인양을 위해 세 번째 체인 연결 완료소식을 들은 가족들 중 상당수는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고 분위기를 전한 뒤 “이제는 실종된 아들과 형제들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실종자 고향에서도 가족과 지인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인양과정을 지켜봤다. 신선준 중사의 울산공고 시절 담임이었던 이재창 교사는 “너무나도 애닯고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학교 홍치완 교장은 “사건이 마무리되면 ‘조국을 위해 애썼다’는 현수막을 걸고 전체 학생들에게 선배이자 씩씩한 해군이었던 신 중사를 애도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김선호 일병의 할머니 이옥찬 씨는 전남 순천 조례동의 아들 집에서 TV를 지켜보면서 “군대 잘 다녀온다고 인사하던 손자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심장이 멎을 지경”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준 하사의 집이 있는 부산 강서구 생곡동 마음부락은 경주 이씨의 집성촌으로 대부분 이 하사 집안과 핏줄로 연결돼 마을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이 하사의 큰아버지 이동우 씨는 “함체 안에 시신이라도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실종자 가족들은 이번 천안함 침몰 후 극한의 슬픔 속에서도 고비 때마다 중대 결단을 내렸다. 첫 번째 결단은 지난 3일 나왔다. 수중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해군 UDT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고 제98 금양호가 침몰하자 위험한 구조작업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 이를 계기로 우리 군은 ‘수색구조’에서 ‘인양’으로 작업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다.
9일에는 함체 절단면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보해 인양작업에 힘을 실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가 “함체 절단면 공개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기존 입장을 고수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힌 것이다.
마지막 결단은 12일 이뤄졌다. 함체에 인양용 쇠사슬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수차례 실패하자 함미를 백령도 연안의 수심 25m 지점으로 옮기는 작업에 동의한 것이다. 예인 도중 함 내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와 함체 파편의 유실이 우려됐지만 신속한 인양을 위해 실종자 가족들은 이를 감수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