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영광 뒤의 굴욕
쇼트트랙 영광 뒤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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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의 효자 쇼트트랙, 속절없는 추락은 언제까지?

동계올림픽의 자존심이자 대표적인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이 일약 한국 스포츠의 간판으로 부상하며 영광을 안은 지 얼마 안 돼 잇따른 굴욕을 면치 못하며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일명 ‘이정수 외압’으로 발발된 이번 쇼트트랙의 검은 폭로전은 이정수 VS 곽윤기+전()코치의 대립각에 이어 급기야 ‘곽윤기 옹호’를 자처한 성시백까지 가세, 승부조작 및 짬짜미(담합)의혹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더군다나 설상가상으로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가 어린 여중생 제자를 수년 동안 성폭행한 일까지 드러나 쇼트트랙망신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어찌되었든 순수하게 열광했던 빙산 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 일련의 사태에 대해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중재위원회까지 결성하며 사태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쇼트트랙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 따갑고 그 후폭풍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이정수 외압설

지난 4월18일 일명 ‘성시백 동영상’이 파장을 몰고 오더니 4월20일에는 전재목 코치와 곽윤기(연세대)가 기자회견을 열어 이정수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고 나서 검은 폭로전으로 점철되는 쇼트트랙 진실게임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자초지종을 돌이켜 보면, 쇼트트랙 굴욕의 발단은 밴쿠버동계올림픽 2관왕 이정수(21)가 지난달 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목을 출전하지 못하면서부터다. 처음에 알려진 불참사유는 발목부상이었다. 그러나 안현수(성남시청)의 부친 안기원씨가 “이정수는 코치의 강압으로 출전하지 못한 것”이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이정수 외압’ 논란은 불이 붙는다.

여기서, 근데 왜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자기 아들의 일이 아닌데도 이정수 불참과 관련해 이런 폭탄발언을 한 것일까. 그 이유는 안현수 역시 2005년 인스부르크 동계유니버시아드 당시 출전권 양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료선수에게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4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안현수와 파벌이 다른)코치와 선수가 짜고 안현수의 독주를 고의로 막았다”는 주장이 안기원씨로부터 제기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안기원씨가 대한빙상연맹에 갖고 있는 뿌리 깊은 불신은 쉽사리 가시지 못한 채 급기야 대한빙상연맹의 부조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이번 사태까지 촉발된 것이다.

짬짜미 발각

‘이정수 외압’에 대한 관련 의혹이 증폭되자 감사에 나선 대한체육회측은 지난 4월8일 “(이정수가)전재목 코치의 강압적인 지시 때문에 불참 사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진술했다”며 “이정수는 전 코치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윗선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혀 ‘이정수 외압’과연 그 윗선이 누구인지로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감사결과 드러난 것이 있으니, 지난해 4월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전 역시 짬짜미(담합)로 일궈진 결과라는 것이다.

대한체육회 발표에 의하면 지난 대표선발전 때 탈락위기에 놓인 이정수를 전 코치의 제자인 곽윤기가 시합 중 추월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보답의 차원으로 전 코치가 (이정수에게)세계선수권 개인종목양보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이정수가 지난 4월13일 아버지 이도원씨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짬짜미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즉 당시 선수 간 협의했던 사실이 없으며 만일 코치가 그런 말을 하더라도 이를 수용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이정수의 폭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재목 코치가 밴쿠버동계올림픽 때에도 1000m종목을 곽윤기에게 양보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 거기다 만약에 (이정수가)1000m를 타면 세계선수권대회를 포기하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고 밝혔다.

또한 전 코치의 이 같은 압박이 있었음에도 자신이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김기훈 코치가 개인전 성적대로 출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막아 가능했다는 것이다.

‘담합플레이’가 ‘작전’이라고?

이로써 일파만파로 불거진 ‘이정수 외압’으로 인해 대한빙상경기연맹에 가해지는 비판과 함께 수세에 몰린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곽윤기다. 이정수 대신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던 곽윤기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

그러자 이번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곽윤기가 이정수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며 기존의 사태를 뒤엎고 만다. 지난 4월14일 한 스포츠지와의 인터뷰에 나선 곽윤기는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 1000m 준결승을 앞두고 이정수가 전재목 코치를 찾아와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며 “당시 전 코치가 나에게 '정수를 도와주라'고 말해 (담합을)흔쾌히 수락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제 사건은 이정수VS곽윤기의 진실공방전으로 치닫게 된다. 동계올림픽의 영광스런 얼굴들이 쇼트트랙 진흙탕 싸움에 자의든 타의든 휘말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 여론의 관심은 잠시 주춤한 듯 했다.

13일(이정수), 14일(곽윤기)의 잇따른 폭로전 이후 새로운 폭로전이 나오지 않고 있으니 냄비 같은 여론의 특성 상 그럴 만도 했다. 적어도 잠잠해져가는 쇼트트랙 사태에 전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난 4월18일 ‘곽윤기 옹호’를 내세운, 이른바 ‘성시백 동영상’이 뜬 것이다. 성시백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정수는 과연 1000m준결승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았나?’라는 제하의 동영상과 글을 게재하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곽윤기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정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성시백은 자신이 올린 동영상 밑에다 “마지막 1000m 결승선에 들어오기 직전에 영상을 자세히 보면 마지막 바퀴에서 휘청거리면서 넘어지려는 이정수를 받쳐주는 곽윤기의 손을 볼 수 있다”며 “만약 곽윤기가 이정수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절호의 기회에 (앞으로)치고 나가지 않을 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시백은 “곽윤기는 이정수를 밀어주다 그 힘에 자신이 뒤로 밀리게 됐고 결국은 넘어졌다”면서 “이 새로운 영상으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성시백과 곽윤기는 연세대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반면, 곽윤기와 89년생 동갑내기인 이정수는 단국대학고 출신이다.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성시백 동영상’이 공개됨으로 인해, 쇼트트랙 사태는 점입가경으로 한 발짝 나아가며 복잡한 양상을 맞게 됐다.

더군다나 성시백의 ‘곽윤기 옹호’ 여세에 불을 붙일 양인지 이번에는 파문의 당사자인 전재목 코치와 곽윤기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4월20일 앞서 발표한 이정수의 주장에 대해 요목조목 상세히 따지고 들어간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대표 선발전에서 다른 팀을 떨어뜨리기 위해 선수들끼리 역할을 정해 '담합 플레이'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정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면 반박했다. 즉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 때 점수가 모자랐던 이정수가 먼저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기 때문에 곽윤기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정수를 도왔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전재목 코치는 “이정수 선수가 가다가 삐끗해요. 그 때 곽윤기 선수가 받쳐요. 그 다음에 밀어주면서 윤기는 뒤로 밀려나가요. 뒤에 있던 송경택 선수가 속도 때문에 앞으로 나오면서 윤기랑 부딪치는 상황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며, 밴쿠버 동계올림픽 1000m 경기 직전 출전 양보를 권유한 것도 이정수가 대표 선발전에서 도움을 받을 때 스스로 약속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곽윤기도 "(이정수가) 선발전 이후에 너 아니었으면 국가대표 되기 힘들었을 거다, 그런 이야기를 했고 그때 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했던 걸로 기억해요." 이렇게 말하며 “또, 지난달 세계선수권 출전 포기 사유서도 이정수가 결정해 쓴 것”이라고 반박했다.

막장굴욕 더 이상은 없어야

쇼트트랙 파문의 발단인 이정수 외압이, 이제는 이정수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로 번져가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쇼트트랙 파문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구성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공동조사위원회 심판들이 대표선발전 비디오 분석을 하며 “이정수가 1000m 준결승에서 곽윤기의 도움을 준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 쇼트트랙 관계자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다.

어찌되었든 일련의 상황을 보면, ‘외압을 넣은 윗선이 누구일까’에서 ‘과연 누가 거짓말을 했느냐’에 대한 진실공방으로 이어진 이번 사태는 그 숫자 면에서도 단연 이정수가 열세일수밖에 없겠다.

그럼에 따라 이정수 측의 고소도 이어질 전망이지만, 전재목 코치를 포함한 대한빙상경기연맹 측의 공세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 이 문제가 ‘이정수 거짓말’로만 사건이 일단락 될 수 있어 섣부른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번 사건에서 쇼트트랙의 승부 조작이 만연해왔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전재목 코치는 “외부에서는 승부 조작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공공연히 이뤄지는 불가피한 ‘작전‘이다”며 “쇼트트랙에서 같이 훈련하는 팀의 선수들끼리 유리하도록 경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런 역할을 하지 않으면 코치가 왜 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하니, 그간 쇼트트랙에서의 일명 짬짜미가 얼마나 만연한지를 여실히 방증해주고 있어 씁쓸한 노릇이다.

즉 이 문제는 이정수가 짬짜미에 포함됐는가, 안 됐는가를 떠나 근본적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쇼트트랙계가 그간 얼마나 파벌적으로 흘러왔는지, 또 양심의 가책 없이 으레 것 승부조작을 일삼았던 것에 깊은 반성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더욱이 밴쿠버동계올림픽 이후 한국 스포츠의 간판으로 부상한 쇼트트랙이 아닌가. 이처럼 속절없이 추락하기엔 지금껏 효자노릇을 해온 그 명예스런 기록들이 너무 안타깝다.

때문에 이번 사태는 차라리 잘 된 일인지 모른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쇼트트랙의 승부조작·담합 등의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대수술을 벌여야 할 시점임을 뼈아프게 방증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비록 이번 사태가 페어플레이 정신을 망각한 한국 빙상계의 어두운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긴 했어도, 곪은 것을 도려내면 되는 될 뿐, 아직 늦지 않았다.

다만 이번 사태로 아까운 재목들이 검은 폭로전에 휩쓸려 일거에 무너지며 기사회생하지 못할까,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터놓고 보면, 잘못된 관행으로 점철된 그릇된 빙산계의 희생물일 수 있다.

“다시는 후배들이 이런 일을 겪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 이정수나 곽윤기의 말처럼, “이 일에 관여돼 잘못이 인정되는 지도자 등 ‘어른’들은 철저히 징계해야 한다. 그러나 선수들은 보호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어느 쇼트트랙 관계자의 말처럼, 이번 사태가 쇼트트랙계의 막장굴욕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닌, 진정 자랑스러운 한국 스포츠의 효자가 될 수 있는 진일보의 길목이 될 수 있음을 기대해본다.

이와 함께 경기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계에 따르면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 A(41)씨가 개인코치자격으로 가르쳐왔던 어린 여학생 제자를 초등학생시절부터 수년 동안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지난 4월18일 밝혔다. 이에 쇼트트랙 승부조작 및 담합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빙상계는 성폭력 사건으로 또 다시 일대 파문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쇼트트랙 공동조사위원회는 지난 4월23일 이정수, 곽윤기 선수에 대해 1년 이상 자격정지조치를, 담합을 주도하고 책임을 회피한 전재목 코치에 대해서는 영구제명을 권고했다.

또한 전 코치와 함께 이정수의 불출전을 종용한 송재근 코치와 담합을 묵인한 김기훈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각 3년간 연맹활동을 제한을, 대표선발전 당시 담합 행위를 막지 못 한 쇼트트랙 경기위원회 위원들은 3년간 직무활동제한을 권고했다. 아울러 관리 감독 책임을 다하지 못한 쇼트트랙 부문 최고 책임자 유태욱 부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자진사퇴를 권고하며 대한빙상경기연맹 박성인 회장에게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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