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위기론’을 강하게 어필하며 경영전면에 복귀한지 두 달여가 되는 가운데, ‘승지원 경영행보’에 가속도가 붙고 있어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3월24일 삼성전자 경영에 전격 복귀한 이건희 회장은 그간의 주요정책 모두를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사용하는 한남동 승지원에서 결정해왔다. 복귀한지 2달여 만에 공식행사로 첫발을 내딛은 사장단 회의도 승지원에서 이뤄졌으며, 이날 2020년까지의 5대 신수종사업이 결정됨으로써, 향후 삼성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임원자격으로 참가하면서 차후 후계승계 작업에도 초미의 관심을 불러왔다. 이와 함께 각국재계의 귀빈들과의 회동도 모두 승지원 영빈관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4월에는 일본 최대 재계모임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소속 기업인들과의 만찬회동을, 이달 5월에는 하워드 스트링어 소니회장과의 만찬회동 승지원에서 가진 것이다. 삼성의 핵심전략을 태동시키며 이건희 회장의 경영시대가 다시금 개막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승지원, 그곳에서 활약하는 이건희 회장의 움직임과 향후 행보에 대해 알아봤다.

최근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다시금 관심을 끄는 곳이 바로 승지원이다. 이건희 회장의 서울 한남동자택과 가까운 이태원동에 있는 승지원은 원래 삼성 창업주인 故호암 이병철 회장이 살던 집이었다. 1층 한옥건물의 자택으로써 대지 300평에, 건평 100여평정도 되며, 한남동 하얏트 호텔과는 7~8분 정도 거리에 있다. 그런 승지원이 이건희 회장의 승지원이 된 것은 지난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후부터다. 당시 자택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은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쓰기 위해 집을 개조하였고, 선친의 경영이념을 이어받는다는 취지로 직접 ‘승지(承志)’라고 이름 붙였다. 내부구성으로는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되는 본관과 상주직원 사무실로 사용되는 부속건물 등 2개동으로 이뤄져 있으며, 보안요원들의 철저한 경호를 받고 있다.
삼성경영의 본산지로 자리매김
그간 이건희 회장은 주로 승지원에서 주요 업무를 봐왔다. 지난 2008년 현재의 ‘서초동 사옥’으로 옮기기 전, 무려 32년간이나 유지되던 ‘태평로 사옥’시절에도 이 회장은 회장실로 출근하는 대신, 승지원으로 사장단을 불러 모았다. 또 지금의 서초동 사옥 42층에는 엄연히 이 회장을 위한 집무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정책결정은 모두 승지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이건희 회장과 승지원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승지원은 지난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특검 때검찰이 처음으로 압수수색할 정도로, 삼성경영의 본산지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그러던 승지원이 재계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지난 2008년 특검 당시, 이건희 회장이 경영쇄신을 목표로 퇴진의사를 밝히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부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불과 23개월 만에 이건희 회장이 삼성경영에 복귀함으로써, 삼성의 성지로 불리는 승지원 의 경영시대 역시 다시금 개막된 것이다.
그간 삼성은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전두지휘 했던 이건희 회장이 은퇴한 뒤, 사상최대의 실적을 올리는 실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오너의 부재로 인한 내홍에 시달려왔다. 실적수치와 상관없이, 삼성의 파워가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스러운 목소리가 안팎으로 들려왔다.
그런데 이 회장이 ‘지금이 진짜 삼성의 위기’라고 역설하며 지난 3월24일 돌아온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그룹 공식 트위터를 통해 “10년 앞을 내다볼 수 없다”며 “지금이 진짜 위기”라고 토로한바 있다. 이어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며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또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사라질 것이다”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밝힌 이 회장은 직접 구원투수로 나설 것을 내비쳤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 배경에 대해, 카리스마 있는 오너의 부재에 따른 경영한계와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대한 삼성의 대처미흡에 따른 위기감 때문이라고 보았다.
첫 공식행사도 승지원에서
어쨌든 이건희 회장이 ‘동계올림픽유치’를 명분으로 사면 받은 지 3개월 만에 경영전면에 나선 이후, 주요 사업전략에 대한 의사결정이 승지원을 모태로 창출되고 있어,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삼성그룹이 이 회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체계를 정비해가며, 잇따른 주요전략을 승지원을 통해 결정함에 따라, “삼성의 미래를 전망하려면, 이 회장의 승지원 행보에 주목하라”는 소문이 재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이 회장은 경영에 복귀한지 2개월 여 되는 시점인 지난 5월10일 사장단 회의라는 공식적인 경영행보를 처음으로 승지원에서 가졌다.
특히 이날 사장단 회의에서는 사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참여함으로써, 장차 후계승계 작업을 가속화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으며 초미의 관심이 된바 있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사장단인사에서 일약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재용 부사장은 삼성전자의 최고 운영책임자(COO)까지 맡으며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어 더욱 주목되지 않을 수 없는 것.
이에 삼성그룹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삼성의 최대 현안과제인 차세대 성장사업들에 대한 투자결정이 이뤄진 중요한 회의였던 만큼, 이재용 부사장이 임원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승지원에서 이뤄진 사장단 회의에서는 삼성으로서는 실로 중요한 장밋빛 전망이 오고갔다. 이건희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태양전지, 자동차용전지, 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사업에 대해 논의하며, 23조3000억원을 투자키로 발표한 것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번에 승지원에서 결정된 대규모 투자계획은 이 회장이 삼성의 위기론을 내세우며 경영에 복귀한 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퇴진했음에도 왜 복귀할 수밖에 없는가’를 외부에 납득시키는 동시에 승지원의 경영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에 대해 업계관계자는 “이 회장이 다시금 경영에 나선 것과 관련해, 재계 안팎에서 환영하는 면도 있었지만 사면 받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복귀한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면도 컸다”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청사진을 전략으로 내세울 것이 필요했고, 그런 점에서 이번 승지원에서 가진 차세대성장사업들에 관한 투자결정은 공식행보의 포문을 연 동시에 복귀의 당위성을 강조하려는 측면이 크다”고 전했다.
소니회장과의 만찬회동 업계 주목
또한 최근 국제 귀빈들과의 회동 역시 승지원에서 가진다는 점에서 향후 글로벌 위기 대처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먼저 지난 4월6일 이건희 회장은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요네쿠라 히로마사 스미토모화학 회장 등과 만찬회동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경영 복귀 후 공식 외부 일정을 소화한 이 회장은 “일본기업으로부터 배울 것이 더 있다”며 “한중일 3국의 협력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와 함께 지난 5월24일 오후에는 이 회장의 초청아래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이 승지원을 찾아 2시간30분간의 화기애애한 만찬회동을 가졌다.
특히 이번 회동은 TV완제품 시장에서는 라이벌로, LCD패널에서는 연합군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세계전자기업의 두 거인이 만난다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켜왔다. 또 회동이 있기 전부터 이미 그 배경에 대해 여러 추측이 쏟아지기도 했다.
재계에 따르면 “소니가 현재 LCD패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며 “소니 스트링어 회장이 LCD패널 공급량 증가를 삼성 측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LCD 패널로만 놓고 보면, 삼성과 소니의 관계는 동지적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간에 삼성은 명실공이 세계 최대의 LCD 패널 생산업체로 자리매김한 기업인데 반해, 소니는 삼성이 생산하는 LCD패널의 40%가량을 수입해가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필요성에 의해 삼성과 소니는 지난 2004년 합작으로 충남 아산 탕정에 S-LCD를 세우기도 했다. 이에 스트링거 회장은 합작에 대한 논의를 위해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이건희 회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두 거인의 회동배경에 관한 또 다른 예측으로는 라이벌관계에 놓여있는 3DTV 분야의 협력논의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는 “3DTV 분야에서의 제조기술은 한국이 앞서지만, 콘텐츠와 표준화는 일본이 앞선다”며 “추후 이에 대한 양사의 긴밀한 협력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삼성그룹은 회동이 있던 다음날인 5월25일에 "(삼성과 소니의 합작사인) S-LCD 출범 6주년을 맞아 양사의 회장이 만나 지속적으로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자는 취지의 만남이었다"고 밝히는 한편, “구체적인 사업 현안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음으로써 더 이상의 추가 공개는 하지 않았다.
한편 이날 승지원 만찬회동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최지성 대표이사 사장, 장원기 LCD사업부장 사장, 요시오카 히로시 소니 부사장 등이 배석했다.
그간 이건희 회장은 선친이 물려준 승지원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각인시켜왔다. 이에 승지원은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맞는 영빈관으로 활용됨과 동시에, 5대 신수종사업 등 삼성의 미래를 결정짓는 성지로써의 역할로 자리매김 돼왔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서초사옥에 마련된 공식적인 집무실을 놔둔 채, 승지원 경영에 주안점을 둔 것은 고 이병철 회장의 경영이념을 표방한다는 취지와 더불어 삼성의 정통성 유지에 무게감을 두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회장이 기존에 은둔적인 행보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최근에는 반도체생산현장을 방문하는 것을 비롯해, 승지원에서 가진 귀빈과의 회동까지도 내부방송을 통해 직원들에게 공개하는 등 사내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그간에는 승지원에서 밀실경영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러한 꼬리표도 조금은 떼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처럼 승지원을 통해 주요전략을 창출하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 발판에 물꼬가 트이며 가속도가 붙는 가운데, 현재 과연 승지원에서 차후 행보를 위한 어떤 움직임이 있을지 재계의 촉각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삼성그룹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건희 회장의 차후 공식 일정에 대해 승지원에서 현재 논의되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