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를 시작으로 항공, 휘발유 사업으로 외연 넓힐 계획
“호암의 ‘석유시장 진출’과 이건희 회장의 사업구상 결합”
최근 삼성이 10월부터 LPG를 본격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석유시장에 대한 야심찬 계획을 가시화했다. 이에 관련업계는 가격이 내려질 거라는 긍정적인 기대와 함께 과다경쟁에 따른 긴장감어린 표정을 지으며 뒤숭숭한 입김을 오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체 물량의 9%에 불과한데 그 파장이 얼마나 되겠냐”며 시큰둥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현재 삼성은 액화석유가스(LPG)를 발판 삼아 항공·휘발유 사업 등 점차 에너지사업에 대한 영역까지 넓힐 계획에 있다. 이에 증권업계에서는 “석유시장 진출에 대한 호암 고 이병철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본격적으로 실현시키려는 동시에, 신수종 에너지 사업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야심이 결합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편 올해는 호암 고 이병철 회장의 100주년이자, 지난 6월1일은 선대의 뜻을 기리는 호암시상식에서 석유화학관련 기술개발자가 상을 받아 향후 석유사업에 대한 삼성의 행보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에너지사업에 대한 교두보로 석유시장을 바라보는 삼성의 기대는 일단 밝다. 그간 삼성은 석유사업에 눈독을 들이며 꾸준히 러브콜을 시도했지만, 한 때는 실적이 여의치 않아 사업을 접은 바 있어 정유업에 대해 내심 조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눈독들인 석유사업 드디어?
그러나 지난 5월27일 삼성토탈이 화학분야에 치중된 이미지를 탈피하며 “10월부터 LPG를 본격 판매할 계획”이라고 발표함에 따라, 삼성의 석유시장진출은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토탈의 유병렬 회장은 당시 충남 대산공장에서 열린 ‘LPG 탱크 준공 및 제품출하 기념식’에 참석해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하는 에너지사업 비중을 2012년까지 30%에 해당하는 1조5000억원 규모로 끌어 올리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번에 500억원을 들여 건설한 LPG저장탱크도 저장시설로는 4만t규모로 국내 최대 규모이다. 이에 연간 100t 규모의 LPG를 중동에서 수입할 계획인 삼성토탈은 이중 60만t은 나프타를 대체하는 원료로, 나머지 40만t은 자동차용 LPG로 판매할 계획이다.
이에 삼성토탈은 석유화학의 주요 원료인 나프타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 원료로 LPG의 가격변동에 따라 구매를 최적화할 경우 연간 2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향후 8월부터 나프타를 이용해 항공유와 휘발유 제품을 생산하는 데 이어, 10월부터는 항공유와 휘발유 제품도 생산할 계획에 있다.
뛰어든 삼성, 관련 업계 뒤숭숭
연간 450만t에 이르는 국내자동차용 LPG시장은 그간 SK가스와 E1로 나뉘어 있었다. 이에 거의 독과점 구조에 따른 담합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삼성이 SK가스와 E1에 이어 새로운 수입판매업자로 나섬에 따라, 본격적인 3파전으로 치닫게 돼, 관련 업계는 바짝 긴장한 상태다.
한편 일각에서는 S업계 관계자의 말대로 “삼성토탈이 유통하는 물량이 전체의 약 9%밖에 되지 않는데,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치겠냐”며 별 지장 없을 거라는 반응도 있긴 하다.
그러나 최근 정유업계의 가격내림현상을 보면, 미리부터 가격경쟁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음을 드러낸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유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토탈이 시장진출에 빠르게 적응키 위해 가격을 낮추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일 거라는 예측에 따라, 경쟁사들이 미리부터 이에 대비한 측면이 크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삼성이 정유업에 뛰어드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며 “그간 무성히 나돌던 업체 담합으로 인해 가격 면에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 측면 있는 것이 사실인데, 삼성 같은 신규사업자들의 진입이 나아지면, 가격하락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일각에서는 “LPG시장은 중동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은 것을 비롯해 국제 LPG가격에 연동돼 있는 등의 특수성이 있다”며 “이런 점에서 오히려 과다 경쟁에 따라 역으로 수입가격이 올라갈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어 “이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가격상승으로 이어져, 또 다른 소비자들의 피해를 불러오는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보면, 연료효율 면에서 LPG가스를 쓰는 나라는 얼마 되지 않는다”며 “특히 유럽지역에서 친환경 경유를 확대보급 하는 추세인데도 불구, 삼성토탈의 LPG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거꾸로 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삼성이 에너지사업진출의 일환으로 석유류와 항공유 시장도 넓히려고 하는데, 국내 시장이 이미 포화된 상태이다”며 “국내 업체들이 물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삼성이 뛰어들면, 오히려 과대출혈경쟁만 낳을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고 이병철 회장의 못다 이룬 꿈
뒤늦게 정유 사업에 뛰어든 삼성이 기존 경쟁사들에 대한 견제를 뚫고서 무사히 안착할 수 있냐는 점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증권업계는 “석유시장진출에 대한 고 이병철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올해는 호암 고 이병철 회장의 100주년이자, 지난 6월1일은 선대의 뜻을 기리는 호암시상식이 있던 날이었다.
이에 석유업계 관계자는 “이날 시상식에서는 석유화학산업에서 필수촉매로 이용되고 있는 제올라이트를 만든 유룡 카이스트 교수가 호암상을 받게 되었다”며 “향후 삼성의 행보가 어떠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k증권 관계자도 “호암이 삼성전자와 자동차 등에 이어 석유시장을 주력산업으로 만들려고 했던 만큼, 이건희 회장이 선대의 뜻에 누구보다 주안점을 두는 것 같다”며 “여기에 현재 이 회장이 야심차게 계획하고 있는 에너지 신수종 사업까지 결부시켜 더 큰 삼성으로 거듭나려는 확장 정책을 펼치려는 것 같다”고 가늠했다.
이에 삼성그룹관계자는 “석유시장 진출은 삼성토탈에서 추진하는 사업일 뿐, 이건희 회장님의 직접적인 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며 “더욱이 고 이병철 회장님과 관련짓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밝혔다. 이어 “호암상 관련해서도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며 “(일각에서 자동차 시장이든 뭐든 자꾸)고 이병철 회장님의 못 다 이룬 꿈이라고 연결시키는데, 이 역시 타당치 않다”고 전했다.
한편 호암에게 있어 석유시장 진출은 1976년 위암진단을 받던 기간에도 이루려 했던, 끝없는 도전의 영역이자, 못다 이룬 꿈의 상징으로 비춰진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설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