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 선거가 지난지 불과 20일이 채 되지 않았다. 당선자들은 인수위원회를 꾸리고 취임전 까지 업무파악이 분주하다. 하지만 당선이 되고도 취임과 동시에 직무정지 위기에 처하게 되는 후보가 생겼다. 주인공은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와 겨뤄 54.4%를 득표하고 강원도지사의 수장 자리에 오른 이광재 당선자다. 이 당선자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항소심에서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으면서 도지사에 취임하더라도 바로 직무정지 상태에 놓이게 됐다. 이와 관련 이 당선자는 지난 5월 11일 국회를 찾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직무가 취임과 동시에 정지되기는 그가 처음이다. 때문에 벌써부터 그의 정치생명이 끝나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당선자는 6.2지방선거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를 누르고 강원도지사에 당선됐지만 7월1일 도지사에 취임하더라도 바로 직무정지 상태에 놓이게 됐다.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항소심에서 유죄를 받고 ‘직무정지’ 위기에 처하게 된 것.

이광재 “억울함 딛고 일어서겠다”
그는 서울고법 2심 판결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미화 9만 5000달러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 1400만원을 선고받았다. 앞서 1심에서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 48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 전 회장 등에게서 부정하게 받은 정치자금의 액수가 9만5000달러에 이르러 이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정치자금에 대가성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고, 이 당선자가 먼저 요구한 것이 아닌 점” 등을 형량을 정하는 데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이 당선자가 항소심에서도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음에 따라, 취임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된다. 지방자치법 제111조 1항 3호는 도지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확정되지 않았을 때 부지사가 권한을 대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강원도지사는 재·보궐선거 대상이 된다.
이 당선자 쪽은 형이 확정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장의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지방자치법 조항은 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선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원도민이 ‘배심원’이라고 생각하며 반드시 억울함을 딛고 일어서겠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박 전 회장을 증인으로 부르고 싶다.”며 법원에 제출한 변론재개 신청이 기각된 것에 대해 불만을 강하게 토로했다. 또 법원이 박 전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한 뒤 두번이나 구인영장을 발부했음에도 박 전 회장이 출석하지 않았다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병보석 중인 박 전 회장은 현재 병원에 있는 만큼 검찰이 쉽게 신병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이미 수사기관과 1심에서 증언을 했으며, 재판부가 심증을 얻을 정도로 충분했다.”며 기각 이유를 밝혔다.
선고 직후 이 당선자는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가 상고의사를 밝힌 만큼 대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겠지만, 원심 판결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당선자가 강원지사직을 유지하려면 무죄를 선고받거나 벌금 100만원 이하로 감형돼야 하는데, 녹록잖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가 대법원에서도 금고형(집행유예 포함)을 받게 되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한다.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날 수 있다.
이 당선자 측은 이와 함께 문제의 지방자치법에 대해 위헌 소송을 낼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법 111조 1항 3호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 부단체장이 권한을 대행한다.’는 규정에 의해 이 당선자는 직무정지가 된다.
이 규정은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같은 선출직인 국회의원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 직무를 계속할 수 있어 형평성에 어긋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민도 ’당혹’
이에 대해 도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안타까움과 냉정함으로 엇갈렸다. 도민의 선택으로 당선된 도지사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실정법 위반에 따른 법적 결과를 동정 어린 시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교차했다.
도청 공무원은 “도정 표류가 우려돼 불안하지만 공무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맡은 일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라며 “어떤 결론이든 표류기간이 단축돼 도정 운영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도민들도 무엇보다 도정 수행에 미칠 파장을 염려했다. 한 주민은 “예상은 했지만 결과가 그대로 나오니 강원도 앞날이 걱정스럽고 안타깝다.”라며 “법원의 최종 판단을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라고 말했다.
또 회사원 김씨는 “도민들이 이광재 당선자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변화와 발전을 바라는 염원 때문이었다.”라며 “도민들의 선택이 법정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지역 법조계 한 인사는 “도민이 선택한 당선자라는 이유로 실정법 위반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사법 질서를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실정법 위반은 법의 잣대로 바라봐야 하는 만큼 좀 더 냉정하게, 성숙한 시민의 자세로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항소심 실형 선고로 직무정지 위기에 처한 상황에도 불구, 도정 안정과 공약 이행을 위한 행보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 당선자측의 도정 인수위원회인 ‘행복한 강원도, 미래과제추진위원회(위원장 김대유)’는 지난 6월 14일 강원도 춘천 도개발공사빌딩 1층에 마련된 인수위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착수했다.
김대유 위원장(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광재 당선자는 직무는 정지되더라도 취임은 가능하다”며 “위원회는 도민들이 이광재 후보를 당선시킨 기대와 이광재 당선자가 꿈꿔왔던 일을 준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당선자가 하고자 했던 일은 일자리 창출이기에 일자리를 늘려가고 도민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취약계층 지원활동과 도 재정의 상당부분을 교육으로 돌리는 계획 수립에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현판식에 이어 전체회의를 연 뒤 곧바로 3일간의 일정으로 강원도정 업무보고에 착수했다.
이 당선자 역시 직접 회의에 참석해 주요 핵심과제와 당면한 현안과제 등을 직접 챙기며 당선자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이 당선자는 “딴 소리에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겠다”고 밝힌 뒤, “김대유 미래과제 추진위원장을 중심으로 신중하면서도 실현 가능성 있는 정책들을 잘 챙겨달라”고 추진위에 당부했다.
이 당선자는 이날 오후 실국별 당면 과제 업무보고도 받았다. 미래과제 추진위 김혜혜 대변인은 “이 당선자는 공직자들의 정책과 아이디어를 도정에 적극 반영하고, 공직사회에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뜻을 전했다”며 “항소심 선고 결과에 상관없이 당선자의 역할을 차질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이력에서 ‘노·무·현’을 뺄 수 없는 ‘우광재’
이광재(45.민주당) 강원도지사 당선자는 한때 안희정 민주당 충남도지사 당선자와 함께 ‘좌희정·우광재’로 불릴 만큼 정치이력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빼면, 이렇다하게 남는 것이 없는 인물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 출신이인 그는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자와 함께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 당선자는 당시 비서실장, 정책기획수석과 함께 청와대 3대 요직으로 꼽히던 국정상황실장에 기용됐다.
국정상황실은 정부 각 부처의 보고를 취합해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만큼 국정운영 관여도가 높았으나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민정수석실, 국가정보원과 업무가 겹친다는 이유로 없어졌다.
이 당선자는 대통령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난상토론을 벌였던 참여정부 청와대 참모들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1988년 13대 국회에서 초선 국회의원과 비서관으로 인연을 맺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노 전 대통령의 캠프에서 기획팀장으로 맹활약한 당선 일등공신이다.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에서 당선됐다.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강원도당위원장·전략기획위원장 등을 거쳐 18대 총선 때 통합민주당 후보로 재선에 성공했다. 1965년 강원 평창에서 태어나 원주고를 거쳐 연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한편, ‘강원도의 자존심과 이광재 지키기 범도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민주당 강원도당 등은 13일 춘천시 8호 광장에서 이광재 지키기 서명운동을 시작한 데 이어 14일 원주 감영 앞, 강릉 남대천 등 강원지역 8곳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15일까지 강원지역 모든 시·군으로 범도민 서명운동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김석현 민주당 강원도당 국장은 “도민이 선택한 이광재 당선인의 진실을 알려나가고, 시민과 함께 당선인을 지키려고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며 “서명 운동을 한 뒤 적절한 시기에 대법원이나 행정안전부에 서명부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
명확한 법적근거 없이 운영되고 있는 시ㆍ도지사 및 교육감 인수위원회에 조직, 활동범위 등 명시적 근거를 부여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으로 변호사 출신인 이춘석 민주당 의원은 18일 시ㆍ도지사 및 교육감 인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서울특별시 21조원(2010년 기준) 등 1년 예산이 수십 조 원에 달하기 때문에 신임 단체장의 원활한 직무시작을 위해서는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필수라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하지만 현행법상 인수위원회의 법적 지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당선자가 자체 조직한 인수위원회와 기존 행정기관 간의 권한충돌은 물론 원활한 인수인계가 지연되는 문제점이 있어 왔다.
실제로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이 변경된 일부지역에서는 자치단체가 인수위원회에 무성의한 자료 제출로 일관하다가 감사원 감사청구까지 이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위 법률안이 통과되면 시ㆍ도지사 및 교육감 별로 법적 근거를 가진 최대 12인의 인수위원회를 꾸릴 수 있게 돼 원활한 인수인계와 체계적인 직무 준비 등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위 법안은 인수위원회로 하여금 지자체 예산현황 파악, 당선자 정책공약 실효성 검토 등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자치단체장 변경에 따른 행정공백을 최소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춘석 의원은 “인수위원회를 통한 철저한 업무파악과 인수인계는 결국 신임 단체장의 빠른 책임행정으로 이어져, 주민들의 권익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일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