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순이 언니와 베레모 아저씨의 못 이룬 꿈
갑순이 언니와 베레모 아저씨의 못 이룬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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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실 샘터에서…연분홍빛 심부름

▲ 이현실 수필가

우리 동네 만화방에는 만화책과 각종 소설, 잡지책도 대여를 해 주는 <길 서점>이 있었습니다.
주로 어린 아이들이 나무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어두운 불빛속에 만화책을 읽고 있었답니다. 만화책을 읽으면서 혼자 낄낄거리며 웃던 아이들도 있었지요.
한쪽 구석진 자리에서는 만화책보다는 만화방에서 팔던 주전부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한 입만 묵자 어 쪼매만 묵어보자”. 서로 귀에다 대고 소곤거리던 소리도 들려왔고 앵 토라져“야 임마 니 아까도 내꺼 빼앗아서 묵었자나 시!.” 하던 아이들로 만화방은 와글와글 대었습니다.
아!참 <길 서점>의 주인아저씨는 항상 까만 베레모를 쓰고 있었어요. 문방구 점 아주머니에게 귓전으로 들은 말은 ‘길 서점’ 아저씨가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몇 번이나 응모했다가 떨어진 작가 지망생이라고 했어요.
생활고에 시달린 홀어머니 채근에 못 이겨 서점을 차렸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학잡지를 서점에 내놓고 손님들에게 대여해주기도 했지요.
나는 갑순 언니의 충직한 심부름꾼 이었어요. 비단 편지뿐만이 아니었어요.
갑순 언니는 내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의 이름을 쪽지에 써 주었어요. <길 서점>에 가서 빌려오라는 것이었죠. 책 제목이 적힌 쪽지를 아저씨께 내밀면 아저씨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희미하게 지으며 책장 한 모퉁이에서 뽑아내 주었어요.
그 책의 제목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22번 미쓰 김’이였습니다. 어찌 그리 오래전의 책 제목을 기억하느냐고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이었어요. 웬 짓궂은 친구 한 명이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소설의 한 대목을 읽어 주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이 흔한 세상이 아니었지요. 한창 호기심이 강한 사춘기 때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소설 속의 여주인공이 되기도 했답니다.
그 중 나서기를 좋아하는 한 친구가 밤무대 종업원이었던 여자 주인공의 진한 애정 묘사를 비음이 섞인 교성으로 말하면 모두는 손뼉을 치면서 깔깔 자지러지게 웃기도 했지요.
남녀 간의 그 은밀하고 농염한 관계성을 알기엔 우리들은 너무 어렸기도 했고요. 성적인 궁금증을 무엇으로 풀었을까요. 그건 단연 ‘길서점’이 일등공신이었답니다. 성이란 모두들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기도 했었고 알려고 들면 들수록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 시절의 성이란 게 뭐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아니었답니다. 그냥 남녀 간에 손목만 잡아도 아기가 생긴다고 모두는 굳게 믿었으니까요. 그러나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이 항상 말썽이었지요.
호기심 많은 우리의 사춘기는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반사적으로 튀어 오르는 반동 작용처럼 우리들의 궁금증은 이렇게 아날로그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길서점’과 ‘갑순’언니로 만족해야 했답니다. 후훗-.
갑순이 언니는 지금으로 치면 참 에지(edge) 있는 여고생이었다고 할까요? 학급 반장이면서 문예반 반장이었고 목소리마저 너무 고와 음악선생님과 문예반 선생님이 먼저 데려가려고 했었다는 말이 기억나네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나지막이 낭송하던 갑순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꿈을 꾸는 소녀가 되어 깊은 상념에 빠지곤 했지요.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나에게 문학을 최초로 발아 시켜준 이도 따지고 보면 갑순 언니 이었답니다. 지나간 소녀 시절 나는 갑순 언니를 통해 참으로 많은 문학작품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는 한동안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어요. 대를 이어 몰락해가는 네 자매의 신산스런 삶을 그린 이야기였지요. 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비껴 갈수도 있다는 조숙한 발상도 했답니다.
여고생이 되는 동안 나는 점차 말이 없는 조용한 소녀가 되어 갔지요. 내 방의 사면 벽에 선반을 지르고 책으로 빠끔히 채워진 방에서 책속에 빠져 들었습니다.
석간신문 사회면의 헤드뉴스 기사보다는 문화면의 한 모퉁이 단 한 줄로 떠 있는 어느 시인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더욱 마음 졸이곤 했지요. 귀가 도중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청마가 그러했고 김수영의 죽음이 그러했습니다.
사후엔 발간된 청마의 시집 <행복>의 시구를 떠올리며 에메랄드 빛 하늘이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괜스레 서성거려보기도 했답니다. 청마가 그랬던 것처럼.
또한 시인 김수영의 비보는 풋내기 문학소녀에겐 너무도 안타까웠지요. 밤늦게 까지 통음하며 울분을 토로하다가 귀가 도중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사후 보름 만에 발표되었다는 <풀>.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는 이름 없는 들풀에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조명한 풀을 암송하곤 했습니다.
나는 또 독일 번역 작가인 전혜린을 무척 좋아했답니다.
-노을이 빨갛게 타는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성과 지성을 겸비한 불꽃처럼 살다간 전혜린. 새까만 단추같은 커다란 두 눈과 웨이브 진 긴 머리카락이 수북하니 어깨를 덮고 있던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신비스러웠다고나 할까요. 안개비 축축이 내리는 이국의 낯선 도시에서 전혜린 그녀가 가졌던 슬픔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어쭙잖은 프레시맨이 되어있었을 때 갑순 언니는 이미 수년 전에 여상을 졸업하고 난 후 였답니다. 풍문으로 들려오는 소문이 심상치 않았어요. 한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올라오는 감자처럼 맏이었던 언니는 다섯 동생들을 위해 튼실한 씨감자가 되어야 했거든요.
누구보다 명석했었던 갑순 언니는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미래가 너무도 아팠겠지요. 갑순 언니는 어느 날 밤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해와 달이 내 곁을 스쳐간 어느날 난 갑자기 언니가 보고 싶어졌어요.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어쩌면 멋진 남자와 밤바다를 거닐며 좋아하는 시를 읊조리는 그윽한 중년 여인이 되어 있지는 않는지. 그렇게 또 해가 바뀌고 세월은 긴 그림자만 내게 남겨 놓았지요.
봄입니다. 제일 먼저 달려와 봄소식을 전하던 노루귀 꽃은 내가 지금 갑순 언니께 보내는 긴 사연을 모두 다 엿들었을까요? 갑순이 언니와 ‘길 서점’아저씨는 까마득히 잊었을 흑백사진 속의 이야기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갑순이 언니와 ‘길 서점’의 검은 베레모 아저씨가 이루지 못했던 꿈의 한 조각을 우리는 서로 조금씩 나누어 가진 걸까요? 숨은 그림을 찾듯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이 말예요.
갑순 언니께 지금 긴 사연 곱게 접은 분홍편지 한 통 보내도 될까요? 하늘 밑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언니의 푸른 청춘을 기억하는 한 소녀의 편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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