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혐의자 임의로 석방한 경찰관 ‘직무유기죄’
도박혐의자 임의로 석방한 경찰관 ‘직무유기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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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유죄→항소심 무죄→대법원 “수사업무, 의도적으로 방임ㆍ포기”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경찰관이 도박현장에서 체포한 도박 혐의자들을 충분한 조사나 보고절차 없이 풀어줬다면 ‘직무유기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김해경찰서 소속 경찰관 L(56)씨 등은 2007년 4월 신고를 받고 김해시 진영읍의 도박 현장을 급습해 도박 혐의자 22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해 지구대로 연행했다.
그런데 L씨는 도박 혐의자 연행 직후 진영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구대에 있는 대부분의 경찰관과 안면이 있는 P씨가 지구대에 찾아와 선처를 부탁하자, 도박 혐의자들이 스스로 상의해 일부만 범행을 시인해 처벌을 받도록 하는 속칭 ‘총대메기’를 할 기회를 주고, 4명만 입건해 경찰서로 연행하고 나머지 18명은 현행범이 아닌 것처럼 서류를 꾸며 석방했다.
이로 인해 L씨 등 경찰관 3명은 직무유기,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1심인 창원지법 형사1단독 김진욱 판사는 2008년 2월 “P씨로부터 선처를 부탁받자 사건을 축소 또는 은폐했다”며 L씨 등 경찰관들에게 징역 6월~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경찰관들은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한 사실이 없고, 형량도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창원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최윤성 부장판사)는 2008년 11월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깨고, L씨 등 경찰관 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P씨의 부탁을 받고 도박 혐의자와 상의해 도박사건을 축소ㆍ은폐하기로 마음먹고 사건처리 방향을 정했다는 점이 명백히 입증되지 않는 이상, 피고인들이 위와 같이 도박사건을 처리한 것은 관련 법령의 미숙지, 태만 등으로 인해 업무를 소홀히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언정 의식적으로 18명에 대해 수사업무를 방임 내지 포기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제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도박 혐의자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풀어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경찰관 L씨 등 3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지난 6월29일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이 현행범으로 체포한 도박 혐의자들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현행범인체포서 대신에 임의동행동의서를 작성하게 하고 석방했으며, 이런 사실도 검사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압수한 도박자금도 검사의 지휘도 받지 않고 반환한 점 등에서 단순히 업무를 소홀히 수행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사유 없이 의도적으로 수사업무를 방임 내지 포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럼에도 피고인들이 의식적으로 18명에 대한 수사업무를 방임 내지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직무유기죄의 성립을 부정한 원심의 판단에는, 직무유기죄의 법리를 오해했거나 채증법칙에 위반해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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