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고려시대 문과 무를 겸비한 인물로 구국의 명분하에 기꺼이 자신을 불사른 김취려 장군을 지칭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김취려 장군은 우리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다. 아니 내막을 살펴보면 오히려 그를 능가한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조선과 고려라는 시대적 상황과 이순신 장군이 우리 민족이 영원한 숙적으로 간주하는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일구어 낸데 반해, 김취려 장군은 북방의 거란을 상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전투에 임해서는 항상 선봉에 서서 기발한 전술과 계교로 적을 격퇴시킨 지장이었고, 모든 공은 수하 장졸들에게 돌리며 제 몸 이상으로 부하들을 고루 사랑한 덕장이었으며, 심지어 함께 참여한 전투에서 나이 어린 큰아들을 잃고 아군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쓰라린 상황 속에서도 오로지 구국이란 대의 앞에 스스로를 통제했던 올곧은 인물이었다.
<시사신문>은 성웅 이순신에 비견되는 김취려 장군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영웅 김취려’(도서출판 멍석/070-4122-7573)를 장기간에 걸쳐 연재한다.
화장산의 봄
“스님, 안에 계시는지요?”
댓돌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으로 보아 분명히 안에 계시는 모양인데 기척이 없다. 소년이 잠시 사이를 두다 살며시 문을 열었다. 눈을 감고 불상을 향해 좌정하고 있는 지장 스님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 경건하여 차마 방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일어나 조용히 문을 닫고 마당으로 나섰다. 잠시 그곳에서 멈칫하다 저만치 아름드리 소나무가 쭉쭉 뻗은 숲 가까이 다가섰다.
소나무에 손을 대보았다. 봄기운이 상큼하게 묻어 나왔다. 또한 메마른 껍질에 조금씩 윤기가 살아나고 지난 겨울에 보았던 빛 바랜 솔잎들이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언제고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초록 색깔과 저 멀리 있는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소년이 가만히 소나무를 껴안았다.
“취려 왔느냐.”
잠시 생각에 빠져 있을 즈음 뒤에서 은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 새 나오셨는지 지장 스님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급히 앞으로 나가 단정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스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무엇인데 그러느냐.”
“저......”
“주저하지 말고 말해 보거라.”
취려가 순간 눈동자를 반짝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스님 곁을 떠나야할 듯하옵니다.”“떠나다니?”“아버지 근무지가 송도로 변경이 되어 근일 중으로 가족들이 모두 그곳으로 이사해야 한다고 해요.”“송도로 말이지!”
답을 한 스님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뿐만 아니었다. 갑자기 얼굴에 근심이 어리고 있었다.
“왜 그러시는지요?”스님을 바라보는 취려의 얼굴에도 덩달아 근심이 어렸다.
스님이 답을 하지 않고 묵상에 잠긴다는 듯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불안한 느낌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기를 잠시 서서히 스님의 눈이 떠졌다.
“취려야!”
취려를 부르는 스님의 묵직한 목소리가 산을 울리는 듯했다. 그 소리에 차마 답을 하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우리 잠시 산책하지 않겠느냐.”
말이 끝나자마자 스님이 앞서 걸음을 옮기고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셨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주시하다 급히 뒤를 따랐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걷기를 잠시 스님이 조그마한 소나무 앞에 걸음을 멈추고 그 앞에 쭈그려 앉으셨다.
“이 소나무를 보니 송도의 모습이 그려지는구나.”
스님의 이야기가 생소했는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송도가 왜 송도인지 아느냐?”
“혹시 소나무 송(松)자의 그 송도인지요?”“그래, 소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송도지.”
“스님은 그곳을 잘 아시고 계신지요?”
스님이 즉답을 피하고 몸을 일으켜 세워 북서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머물기 전에 그곳에 있었단다.”
“그런데 왜 먼 이곳까지 오셨어요?”
스님이 답에 앞서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송도란 이름이 무색하게 변하고 있으니 그게 아쉬워서 여기까지 왔구나.”
“무슨 말씀이신지요?”“소나무처럼 고고하고 절개를 지켜야할 인간 사회가 아닌 아비규환의 장소로 변했으니 차마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 도망쳐 온 게야.”“도망이요?”“그곳에서 견디지 못하고 왔으니 결국 도망인게지.”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스님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려사회가 중기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난국에 처하게 된다. 아울러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겪는다. 특히 묘청의 난으로 인해 고려사회는 막바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외형상으로는 개경(개성)에서 서경(평양)으로의 수도 이전을 표방했지만 결국 그 본질에는 무기력한 왕이 있었고 그 난으로 고려 사회는 개경과 서경의 지역감정과 더불어 문신과 무신 사이에 일대 적대감이 형성된다.
묘청의 난을 평정한 인물이 김부식으로 이전에 지장이었던 강감찬과 윤관의 경우처럼 문신 출신이었고 무신의 경우 3품 이상 승진 할 수 없었던 관계로 대장군이나 상장군의 몫은 문신들로 이루어져 있어 무신 경시 풍조가 극대화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 인종의 뒤를 이어 의종이 보위에 앉고 오로지 문신들을 싸고돌면서 무신경시 풍조가 절정에 이른다. 급기야 내시(근시 및 숙위의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 재예와 용모가 뛰어난 세족 자제 또는 시문 · 경문에 능통한 문신 출신으로 임명하였으나, 의종 이후, 특히 원나라의 간섭 이후에는 환관들이 이 자리를 차지했다)인 김돈중(김부식의 아들)이 촛불로 정중부의 수염을 불사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