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넛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어릴 적 틈 날 때마다 학교에서건 동네에서건 불러 제쳐 지금도 가사와 곡조가 익숙한 동요건만 요즘 아이들에게선 좀체 듣기가 어려운 노래이다.
하긴 요즘 아이들이야 피자에 통닭에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먹을거리가 없어 겨우 고추나 먹으면서 매워서 맴맴 거리던 나이든 세대들과 정서가 같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국민적 음식의 대명사인 김치도 고추가 들어있어 맵기 때문에 어린 세대일수록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가 오늘날 많은 역경을 딛고 이만큼 성장한 덕에는 고추의 힘도 곁들어져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고추를 먹고 자란 한국 사람들은 체력적으로도 강하여 잘 병에 걸리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강인하여 온갖 어려움을 잘 이겨내어 성공한 다는 것이다.
그래서 곧잘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경기를 하게 되면 고추의 매운 맛을 보여주라고 주문하는지도 모른다.
비단 고추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영화 올드팬이면 누구나가 기억하는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 그레고리 펙은 유명한 고추 애호가였다고 한다. 그는 87세까지 살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걸작을 남긴 명배우이다.
그의 건강 비결은 고추를 좋아하여 항상 바쁜 촬영 일정 속에서도 정원에 고추를 재배하였고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꼭 풋고추를 싸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과 나눠먹는데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지휘자인 주빈메타도 가는 곳 마다 작은 상자에 고추를 가지고 다니면서 음식에 넣어 먹는다고 한다. 그의 영향으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부인이나 영국 여왕과 스페인 국왕도 고추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고추는 쌍떡잎식물인 가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의 열매를 말한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종류가 존재하며 원래 원산지는 중남미 지역으로 문헌에 의하면 기원전 7500년경부터 재배되었다고 한다.
이후 콜럼버스에 의하여 유럽으로 전해졌고 일부는 멕시코를 거쳐 필리핀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남아시아로 전파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중 일본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오히려 우리나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고추가 전래한 지역의 이름을 붙여 만초(蠻椒), 남만초(南蠻椒), 번초(蕃椒), 왜초(倭椒), 당초(唐椒)로 부르거나 매운 맛의 특성을 따라 라가(辣茄), 고초(苦椒)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전래 경로에 어쨌든 고추는 우리나라 음식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된지 오래다. 사실 거의 모든 음식이 고추를 이용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장을 담글 때에도 고추를 숯과 더불어 장독 속에 넣는가 하면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아기를 낳으면 대문 앞에 고추를 새끼에 엮어 걸어놓을 정도로 우리 생활 풍습에도 깊숙이 들어온 지 오래되었다.
고추는 성질이 뜨겁고 맵다. 그래서 속을 뜨겁게 하여 추위를 없애고 소화기능을 촉진하는 효능이 있다. 따라서 식사를 하고 나서 위가 팽만해지거나 소화불량 증상에 좋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고추는 다른 나라 고추에 비하여 맵기는 덜하고 달기는 더하여서 식용으로 하기에 적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영양학적으로도 고추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다. 고추에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 C는 사과의 40배나 되고 귤의 2배나 된다고 할 정도다.
여기에 고추에 들어있는 비타민 C는 고추의 주성분인 캡사이신 덕분에 쉽게 산화되지 않기 때문에 조리에 의하여 손실되는 양도 적다고 한다.
그래서 더운 여름날 지치고 밥맛도 없을 때에 나이든 사람들은 풋고추를 반찬으로 먹게 되면 식욕이 생긴다고 말한다. 바로 고추가 식욕을 촉진하고 풍부한 비타민 C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또 고추의 뜨겁고 매운 성분은 우리 몸을 자극하여 열을 내도록 하고 땀을 내도록 한다. 그래서 고추를 먹고 나면 얼굴에 땀이 흐르게 되는 이유다.
가끔 감기에 들었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를 넣고 마시면 좋다든가 아니면 고춧가루 대신 청양고추 듬뿍 썰어 넣고 한 잔 마시면 딱이라는 비방들도 결국 고추에는 비타민이 풍부하고 땀을 내는 작용을 가지기 때문에 감기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활용한 민간요법 들이다.
한의학적으로도 고추가 가지는 맵고 뜨거운 성질은 기력을 발산하는 효능이 있다. 그래서 고추를 먹고 나면 힘이 생기고 정신력이나 투쟁력이 더 강해지는 모양이다.
잘 알다시피 시골에서 닭싸움을 시킬 때는 닭에게 매운 고추장을 잔뜩 먹인다. 고추장을 먹은 닭은 여느 때보다 더 힘이 세져서 용감하게 싸우기 때문이다.
요번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국민들이 세찬 비를 아랑곳 하지도 않고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수백만 명이 모여서 함성을 지르면서 응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몸속에 흐르는 기를 발산하는 고추의 효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고추를 맵게 만드는 주성분인 캡사이신은 항암효능을 지니고 있다. 미국암협회에서는 캡사이신이 전립선암 세포를 억제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전립선암에 걸린 쥐에 캡사이신을 투여하였더니 암세포의 크기가 5분의 1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또 고추에 들어있는 천연 캡사이신은 직접적으로 백혈병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폐암 세포의 사멸을 촉진하는 효과도 캡사이신에는 있는 것으로 연구 되었다.
원래 캡사이신은 피부를 자극하는 성질이 있다. 고추가 입안에 닿았을 때 입안이 얼얼해지는 것이 바로 이 성분 때문이다.
이 캡사이신은 위점막을 자극하여 위액의 분비를 촉진하기도 하지만 살충효과와 항진균 효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부 유기농을 하는 농가에서는 벌레를 죽이기 위해서 농약대신 고추 우린 물을 분무하기도 한다.
일설에는 이런 살충 및 독성의 효능이 있는 고추를 이용하여 우리나라 사람을 독살시킬 목적으로 임진왜란 중에 일본인들이 들여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남미의 잉카족들도 매운 고추에 불을 질러 스페인 군대의 눈을 멀게 하여 침략자를 물리쳤다고 한다.
캡사이신은 진통작용을 발휘한다. 대상포진과 같은 신경성통증이 있을 때 캡사이신을 주성분으로 하는 연고제가 사용된다.
또 근육통이나 관절염 또는 관절을 삐었을 때에도 캡사이신 연고가 효과적이다.
또 캡사이신은 중이염에도 효과가 있고 동맥경화증으로 인한 심장병에도 효능이 있으며 부정맥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최근 고추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권장된다.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은 지방세포에 작용하여 몸 속 지방을 분해하는 작용을 하고 지방의 형성을 방해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고추를 이용한 제품이 많이 시중에 나와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캡사이신을 몸에 바르기도 하는 제품이 나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고추는 맵다. 매운 고추를 과량 섭취하게 되면 위장 점막에 손상을 줄 수 있다. 개인적 경험으로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3 개월 만에 처음으로 김치를 먹게 된 적이 있다.
오랜 만에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빨간 김치는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했지만 우리 부부는 그날 밤새도록 복통과 설사로 고생을 해야 했다.
사실 내시경을 해보면 우리나라 사람에게 위염이 많이 보이는 소견도 바로 매운 고추가 많이 들어간 음식 때문이라고 말하는 의사들이 많다.
따라서 위염이나 위궤양이 심하거나 치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추를 섭취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하겠다. 또 담낭염이나 안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고추는 적당하지 않다고 하므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고추를 먹고 나서 매운 맛에 쩔쩔매면서도 고추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고추를 먹고 나면 캡사이신에 의한 불쾌한 신경 자극을 줄이기 위해 뇌에서는 모르핀의 100배 가량의 효력이 강력한 천연진통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이 분비되면 통증이나 고통을 잊게 되기 때문에 다시 매운 고추를 찾게 된다는 설도 있다.
한때 페루 정부는 교도소에서 음식을 요리할 때 고추 소스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고추가 성욕을 자극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도에서도 매운 고추는 성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젊은 성직자 계층에서는 금지되는 식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더위로 지치고 짜증나는 여름날 비타민도 공급하고 항암효과도 있고 엔도르핀도 분비시켜 고통도 멎게 하고 게다가 성기능도 높여주고 기력까지 발산시키는 고추로 힘을 내보는 것은 어떨까.
◇ 송봉근 교수 프로필
現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장
現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한의학 박사)
現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 6내과 과장
원광대학교 한의과·동 대학원 卒
中國 중의연구원 광안문 병원 객원연구원
美國 테네시주립의과대학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