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조은위기자] 외국인 여성들이 댄서나 가수 등 ‘외국인 연예인’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다. 특히 E-6(예술흥행비자)비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필리핀 여성 노동자는 1999년 876명에서 2009년 2254명까지 크게 늘었다.(법무부 출입국관리 통계연보 참조)
문제는 엔터테이너라는 명목의 E-6비자가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을 돕고 있는 두레방에 따르면 E-6비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여성 대부분이 한국 클럽이나 미군기지촌 내 클럽에서 유흥접객원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3일 <시사신문>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는 엔젤(가명, 29세)과 만나 기지촌 클럽에서 자행되고 있는 E-6비자의 불법적 활용실태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미군클럽에서 성매매를 당하고 도망 나와 공장에 취직한 첫 날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붙들려 외국인보호소로 오게 됐다. 현재 그녀는 한 달이 넘도록 기획사와 클럽사장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기자는 엔젤과의 인터뷰를 위해 통역이 가능한 경기권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 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는 로렐라이씨와 동행했다.
가수의 꿈을 가지고 한국에 온 엔젤은 ‘예술흥행비자’(E-6)를 받고 한국에 들어 온 뒤 외국인 전용 클럽에서 성매매와 술시중만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밴드 보컬리스트로 일했던 엔젤의 한국행은 한국연예인 길거리 케스팅과 흡사했다.
“제가 어느 날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기획사 사장이라는 사람이 절 찾았어요. 저보고 노래 잘 부른다고,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해볼 생각 없냐고, 한국에서 가수로 성공하면 돈 많이 번다고 말했어요.”
엔젤의 필리핀 생활은 평범했다. 장녀인 엔젤은 부모님과 여동생 셋, 남동생 둘과 함께 넉넉하지는 않지만 단란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런 일을 당할 줄 알았다면 절대 한국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한국에 온 것을 후회했다.
엔젤은 한국에 오기위해 E-6비자를 받는 것이 쉬웠다고 한다. 기획사에서 간단한 오디션을 보고 3일 동안 노래 부르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하는 것이 다였다.
“원래 클럽에서 가수였기 때문에 노래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가수가 된다는 것에 마냥 기뻤죠.”
엔젤은 기획사에서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하고 간단하게 E-6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엔젤은 한국에 도착한 날짜와 시각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2009년 1월20일 새벽 6시에 한국에 도착한 엔젤은 그날 저녁 바로 동두천클럽으로 일하러 나갔다.
“처음에는 노래를 부를 줄 알았는데 봉을 잡고 춤을 추라고 했어요. 몸이 거의 다 보이는 옷을 입고 말이죠. 많이 당황해서 멈칫하자 클럽사장이 화를 냈어요. 하지 않으면 더 안좋은 클럽으로 간다고 윽박도 지르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했어요.”
그녀의 가수의 대한 꿈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엔젤은 클럽 내 VIP룸에서 주로 미국인을 상대로 랩댄스를 추거나 주스를 파는 일을 했다.
또한 클럽사장은 그녀에게 치마 안에 속옷을 입지 못하게 하거나 T-팬티만을 착용하라고 강요했다.
“사장이 치마 안에 팬티를 입으면 화를 냈어요. 팬티를 입으면 손님들을 끌 수 없다고 했죠. 심지어 치마도 입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여자 몸이 드러나야 한다면서...”
또한 그녀는 클럽 안에서 그 날 할당된 주스도 팔아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사장에게 폭언이나 구타를 당한다고 했다.
그녀가 일하는 클럽에서는 한잔의 10달러하는 드링크를 10분 안에 마시면 1점의 포인트를 받는 주스할당제(10달러 드링크/10분-1포인트, 20달러 드링크/20분-2포인트, 40달러 드링크/40분-4포인트)가 있다고 말했다.
엔젤은 주스를 정해진 시간 안에 계속 마셔야 했기 때문에 건강에도 무리가 따랐다고 증언했다.
“클럽 사장이 랩댄스를 해야 주스를 더 많이 팔 수 있다고 강요했어요. 랩댄스는 손님 무릎위에서 추는 춤인데, 춤을 출 때 먼저 손님에게 절대 절 만지지 말라고 말했어요.”
엔젤이 클럽 사장으로부터 강요당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무대를 돌때나 춤을 출 때 꼭 가짜 눈썹을 붙이도록 강요받았다. 만약 가짜 눈썹을 붙이지 않을 때는 벌점을 받아야 했다.
엔젤은 처음 클럽과 계약했을 때 850달러를 받기로 했지만 비자발급과 트레이닝, 항공비 등을 이유로 첫 달 급여는 받지도 못했다. 이 후로도 많이 받아야 250달러, 우리 돈 35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처음 말했던 급여를 받지도 못했고, 그나마 받은 돈을 필리핀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야 해서 지금 나에게는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아요. 우리가족이 이런 나의 상황을 알면 아마도 크게 놀랄 거예요.”
엔젤은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을 보였지만 가족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엔젤은 클럽에서 몇 잔의 주스를 파는 것보다 돈벌이가 크기 때문에 성매매, 이른바 바파인(barfine)이라는 것을 강요받았다.
바파인을 거부할 경우 클럽사장은 질이 더 좋지 못한 클럽으로 보내버렸다. 엔젤 또한 여러 번 클럽을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나 총 7군데의 클럽을 옮겨 다니면서도 클럽사장의 감시가 심해 도망쳐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클럽사장님이 장사하는 시간 이외에는 방문을 잠가 놓거나 계속 감시를 하기 때문에 도망쳐 나오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클럽사장이 친구들과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클럽에서 알게 된 필리핀 남성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 친구가 택시를 집 앞까지 불러서 겨우 도망칠 수 있었어요.”
가까스로 클럽에서 도망칠 수는 있었지만 또 다시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 엔젤은 공장에서 취직한 첫 날 출입국 사무소 직원에게 붙잡히게 됐다.
현재 불법체류자가 구금되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있는 엔젤은 자신이 왜 이곳에 구금되어 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 했다.
“나는 정당한 비자를 발급받아 왔어요. 죄인은 나를 속이고 미군클럽에서 성매매를 강요한 기획사와 클럽사장이예요. 나는 피해자이지 죄인이 아니예요. 너무 억울해요. 나를 죄인처럼 대하는 보호소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엔젤은 ‘마이시트터 홈’이라는 쉼터를 통해 의료지원과 소송에 필요한 법률지원을 받고 있지만 힘든 소송보다도 죄인 취급을 받으며 보호소에 갇혀 있는 상황을 더 힘들어 했다.
엔젤에 말에 따르면 한 방에서 20명 내지 12명이 생활한다고 했다. 또한 수면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해놓고 있어서 낮잠을 잘 수도 없고 일주일에 한 번만 옷을 갈아입을 수 있어서 힘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엔젤은 기자에게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인사를 잊지 않았다. 엔젤이 생활하고 있는 화성외국인보호소 내에서는 한국어 교육과 구금된 체류자들을 위해 간단한 운동시간이 있다고 한다.
한편 기자가 찾아간 날 엔젤에게는 또 다른 면회 신청자가 있었다.
엔젤에게 확인해 본 결과 이들은 엔젤과 계약을 맺었던 기획사로 밝혀졌다.
동행한 로렐라이는 “이들은 NGO 단체로 가장 해 면접을 신청하고 엔젤과 협상하기를 원 한다”고 말해줬다.
엔젤은 “기획사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나에게 소송을 포기할 것을 강요해요. 체불된 임금과 항공티켓을 줄 테니 필리핀으로 돌아가래요. 그들은 내가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 자기들 말고는 다른 사람은 믿지 말래요. 한 번은 자신들이 경찰이라고 하면서 필리핀 현지 기획사에게 전화할 수 있게 해준다며 전화카드 4개를 주고 갔어요. 그들도 역시 자기들만 믿으래요.”
그러나 엔젤은 그들과 협상 할 생각이 없으며 소송을 끝까지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나는 한국에 가수를 하려고 왔지 웃음과 몸을 팔려고 온게 아니예요. 나는 엔터테이너지 윤락녀가 아니예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예요. 소송을 포기하지 않겠어요”
엔젤은 자신의 케이스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는 말에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더 자신의 소송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마이시스터 홈의 로렐라이 상담원은 “E-6비자를 받고 클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소송하는 케이스는 드물어요”라며 “대부분 소송을 하기 전에 본국으로 출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E-6비자의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기 힘들어요. 그래서 이번 엔젤의 소송이 중요해요”라고 강조했다.
또 로렐라이는 “우리는 엔젤의 소송이 기소가 되면 법원에 선처를 부탁할 예정이예요. 엔젤이 한국에 와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돈을 벌지도 못하고 필리핀으로 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엔젤의 소송이 잘 마무리 되면 지원 비자를 받고 노동비자를 통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인신매매 처벌규정을 강화해 적극적으로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기획사들은 E-6비자 문제가 붉어 질 때마다 자신들은 비자 발급과 클럽에 취직 시켜준 것밖에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비난했다.
마이시스터 홈의 박수미 소장은 “현재 외국인인신매매피해여성을 돕기 위한 지원시템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계속해서 E-6비자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되고는 있지만 정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며 “한 예로 현재 필리핀 대사관 내 ‘폴라’라는 기구에서 에이젼시 인증절차를 밟고 있지만 출입국관리소에서는 이 인증절차를 거치지 않은 기획사의 예술흥행비자도 발행해주고 있다”고 안일한 정부의 행동을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