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 유족에 명예훼손 책임 없어”
“영화 ‘실미도’, 유족에 명예훼손 책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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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자원한 훈련병을 사형수로 허위 묘사해 명예훼손 당했다”

관객 1100만 명을 동원한 영화 ‘실미도 684부대’ 훈련병 유족들이 영화가 훈련병들을 마치 살인범 또는 사형수나, 용공주의자로 묘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냈으나,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지난 15일 훈련병 12명의 유족들이 실미도를 제작한 강우석 감독과 시네마서비스, 한맥영화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족들은 “실미도 훈련병들은 전과가 없는 순수한 민간인으로서 단지 높은 보수를 지급하고 장래를 보장하겠다는 정보기관원들의 제의를 수용해 스스로 자원한 것인데, 영화에서 마치 살인범 또는 사형수로서 어차피 사형에 처해질 신분으로 사형을 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북파공작원의 길을 택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가 훈련병들을 마치 용공주의자로 묘사해 훈련병들과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족별로 1억 원을 지급하라”며 2004년 12월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18민사부(재판장 안승국 부장판사)는 2005년 7월 원고 패소 판결했고, 이에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23민사부(재판장 심상철 부장판사)도 2006년 12월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먼저 “역사적 사실의 각색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밖에 없는 상업영화에 있어서 영화제작자에게 국가기관이나 언론기관이 행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충분한 사실 확인 작업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 이전에 존재하던 실미도 사건에 관한 국회회의록, 언론보도, 고위공직자 진술 등 공적인 자료에는 훈련병들의 신분에 관해 ‘공군 관리 하에 수용된 특수범 내지 죄수들’, ‘군특수범’, ‘사형수나 무기수로 극형에 처해져 복역하고 있던 죄수들’, ‘범법자, 깡패들’이라고 돼 있었던 점이 고려됐다.
이어 “영화를 전체적으로 볼 때 훈련병들의 모집경위나 출신성분을 추하게 표현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혐오나 멸시 등 비방의 의도를 드러내기보다는,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훈련병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실미도 사건이 있은 지 30년 이상이 경과한 후에 제작된 영화에 대해 그 세부적인 내용이 역사적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격권 침해 내지 명예훼손의 성립을 인정하게 된다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 또는 표현 창작의 자유가 크게 위축돼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런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피고들이 영화 내용 중 문제되는 부분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들에게는 명예훼손에 대한 고의 및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어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피고들이 영화에서 훈련병들을 살인범이나 사형수 등으로 표현해 망인(훈련병)들 또는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취재/김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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