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방에 대하여
지훈을 제외한 호삼과 동만의 과거는 특별하거나 유별날 것이 없었다.
고교를 졸업한 호삼과 동만은 현실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공장직공으로 자동차 정비공으로 취직을 했다.
그러나?장기간의 경제 불황은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어라 일만하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것이다.
그 이후 약간의 개별적인 차이가 있지만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실직 후 직장을 구한다, 장사를 해보겠다며 벌어놓은 돈 마저 다 까먹고 이래저래 빚까지?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떡해든 살아보려 뱃일에 막노동에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하다하다 안 돼 결국 길거리에 나앉게 된 ‘실직 형 노숙인’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지훈은 2남 1녀를 둔 부유한 집안의 둘째로 둘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고교시절까지 학내석차5등 밖으로는 밀려나 본적이 없는 우등생으로 앞날이 기대되는 전도유망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3학년 2학기를 진급하더니 사람이 360도 변해버렸다.
하루 일과를 빈둥빈둥 TV가 있는 거실에서 이방 저 방 배외하더니 갑자기 며칠 동안 자기 방에 틀어박혀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위에 어느 누구도 그 이유에 대해선 몰랐고 알 수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데려간 정신병원에서 조차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다는 소견을 내 놓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고교졸업을 며칠 앞둔 겨울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건설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기분전환 삼아 따라 나선 것이다.
그 후로 몇 년 동안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듯 공사판을 누비고 다녔다.
햇볕에 노출된 피부가 구릿빛이다 못해 아프리카인처럼 새카맣게 탔을 정도였다.
그렇게 8년 전의 가물거리는 과거로 묻혀 지나 싶은 어느 날이었다.
지훈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방팔방, 그 어느 곳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날 며칠을 씻지 않은 것인지 쾌쾌한 냄새에 때 구정물이 줄줄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몇 달만의 모습은 눈을 의심하지 않고는 볼 수없는 거지꼴이었다.
하지만 물어보는 행적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하룻밤 만에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몇 달 만에 또다시 거지꼴을 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삼사일에 한번 꼴로 집에 들어와 태연자학하게 옷을 갈아입고 도둑고양이처럼 먹을 것과 돈이나 돈 될 만한 것들을 챙겨들고 나갔다.
‘서면3대악인’의리와 깡다구로 똘똘 뭉친 이들은 그렇게 입에 담기도 잡스러운 악행으로 서면 인근 일대를 주름잡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성인오락장 등 제법 규모 있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토착세력들 조차도 담배 값에 술값을 챙겨주며 달랠 정도였다.
하지만 철옹성 같던 그들의 관계에도 오래지않아 먹구름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훈이 집에서 가져다나르던 것들을 나눠 먹고 쓰는 재미에 호삼과 동만이 빠져 들 때쯤 이었다.
지훈이 두목으로서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아무리 때를 빼고 광을 내 본들 노숙생활의 추래함을 지울 순 없지만 지훈은 항상 깨끗하고 말끔했다.
가져다 나르던 물건들도 말이 사용한 것이지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 또한 다른 노숙부랑인들처럼 법적인 신변노출을 극도로 기피했다.
일단 지구대라도 끌려가면 하다못해 3만 원짜리 스티커라도 끊지 않고선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비교해 봐도 비교가 안 되는 극과 극, 지훈의 두목등극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도 큰 싸움이 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살기 등등, 무대포정신이 3인방의 트레이드마크였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많은 노숙부랑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훈 앞에 무릎을 꿇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복잡하게 얽힐 것 같았던 그들의 관계가 싱겁게 정리 되어 버렸다.
못 배우고 빽없는 무일푼에게 자본우선주의사회의 배고픔이란 극복할 수 없는 한계라는 걸 뼈저린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얽히고설키는 골치 아픈 관계보다 가뭄에 물 주듯 던지는 지훈의 해택이라도 지키기로 합의를 한 것이다.
4. 시작은 설득이다.
지훈의 두목등극에 축하나 복종의 예를 표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보다 심드렁한 침묵 속에 흩어져버린 것이 전부였다.
말이 좋아 굴복이지 동만과 호삼 또한 쑥덕공론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지훈이 유아독존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별한 본보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그늘을 마다하고 도망친 앵벌이들을 잡아 족치기로 결심하고 평소에 곤란한 일을 처리 할 때 부리던 두 명의 덩치들을 불렀다.
먹을 것 입을 것만으로도 죽는 시늉을 하던 부하들이다.
그리고 흩어진 앵벌이들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지하철에서 벌이하기 바쁜 이들을 쉽게 목격 할 수 있으며 잡아 구석에 몰아놓고 눈만 부라려도 도망친 앵벌이들이 숨어 있는 곳을 술술 불 것이기 때문이다.
지훈은 두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찾아낸 족족히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에 협박과 갈취를 일삼았다.
그러더니 어제 늦은 새벽에는 부산역에 나타나 잠든 노숙부랑인들을 깨워 돈을 빼앗고 밟고 차는 무법천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호랑말코 같은 지훈도 1년 전, 준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모든 상황을 구경꾼으로 목격했던 명우다.
그래서 나서달라는 것이다.
소파 옆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열기가 한참 뜨거울 당시 선남선녀들의 가슴을 온통 분홍색으로 칠했던 ‘강애리자’의 ‘분홍립스틱’이다.
“음음음~~~~음음~~~~”
“풋훗, 새끼”
“와~ 우습나.”
“참! 나, 그 얼굴을 하고 노래가 나 오냐? ”
준이 코웃음을 치며 일어나 선반 위의 약상자를 명우에게 건넨다.
명우의 말이 40~50%만 사실이라 해도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지훈을 찾아가 해라 마라 할 상황도 아니다.
십중팔구 칼이나 병 같은 무기를 들거나 떼거리로 덤빌 것이기 때문이다.
준은 맥없이 만지작거린 음료수 캔에서 아직 식지 않은 냉장고의 체온을 느껴본다.
무언가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고민스러운 것이다.
약상자를 건네받은 명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붓고 터진 얼굴 상처에 꺼낸 연고를 바르며 아직 물기가 덜 마른 머리를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만들어 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매만져본다.
“명우야. 지훈이 보면 상대하지 말고 나한테 연락해라. 내가 알아서 하께.”
“내 바보가 그 새끼를 상대하게, 아무리 생각해바도 그 자슥을 제대로 상대 할 사람은 니 밖에 없는기라.”
할 말 다하고 원하는 답까지 받아 낸 것에 흡족한 것인지 거울 속에 비친 머리끝을 걷어 올리며 뒤돌아보는 명우다.
“어떻노?”
“자식, 깨끗하니까. 이제 좀 사람 같네. 자주 좀 씻고 다녀라.”
“그자! 옛날엔 끝내 줬는데.”
명우는 멈췄던 콧노래를 다시 흥얼거리며 거울을 본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사무실과 주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와 주방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음,음,음,~~~ 음,음,음~~~~띠~이, 띠~이.......”
“아~ 냄새 좋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