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사물인가, 성인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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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보고서- ‘범죄수사물’ 방영 실태

언론에서는 연일 성범죄 사건이 보도되고 있고 국민적 공분이 높아지고 있다. 계속되는 사건과 수사, 범인의 체포 등을 통해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도 더불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이기에 몇몇 유료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는 성범죄 관련 수사물이 더욱 눈이 띄는 요즘이다. 이들은 국내에서 제작된 재연드라마 형식의 범죄수사 프로그램인 <현장추적사이렌>과 미국에서 제작된 성범죄 수사 시리즈 <성범죄전담반>이다. 이런 성범죄를 다룬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에게 성범죄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사회적으로 어떤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유료방송의 성범죄 관련 프로그램들은 이 같은 장점을 살릴 수 있음에도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이야깃거리로 이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성범죄 사건을 다루면서 성폭력을 성적 관계를 연상시키는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마치 성인물의 제목을 연상하게 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이하 여성민우회)는 “이러한 소재들을 단순히 상업적인 볼거리로 만드는 것은 지양해야 함에도, 성범죄를 선정적으로 광고하는 제목들은 성범죄에 대한 문제점과 경각심을 갖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케이블방송들의 무분별한 방송 행태를 비난했다.
이에 여성민우회는 유료방송에서 방영되고 있는 성범죄 수사 프로그램의 에피소드별 제목이 갖는 문제점에 주목하여 이를 7월1일 부터 7월22일까지 모니터한 결과를 발표했다.

여성민우회 ‘범죄수사물인가, 성인물인가’라는 제하의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현장추적 싸이렌>은 재연드라마 형식의 범죄수사 프로그램이다. 연기자들이 피해자, 가해자, 형사 역할(실제 피해자, 형사가 등장하기도 함)로 등장해서 범죄 과정 및 범인 검거 과정을 재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회에 2~3개의 범죄수사 내용이 방영되며 매회 방영분 마다 하나의 큰 제목이 있고 그 밑으로 여러 개의 범죄사건을 다루고 각각 부제목을 두고 있다. 그러나 FX채널을 통해 방영되고 있는 <현장추적 싸이렌>의 새 시즌인 <현장추적 싸이렌 2.0>은 기존과 달리 범죄사건별로 제목과 부제목을 각각 두고 있다.

성인물을 연상케 하는 성범죄
수사 프로그램 제목의 문제

<현장추적 싸이렌>은 성범죄를 다루면서 성행위, 성적 욕망 등을 연상시키는 제목을 붙여 선정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여성민우회 조사 결과 나타났다. 예를 들면 ‘참을 수 없는 인터넷 성범죄’, ‘비상식적인 성욕에 빠진 사람들’, ‘성폭행에 빠진 아빠들’, ‘그 남자의 은밀한 손장난’, ‘변태에게 농락당한 여자들’, ‘성욕에 물든 도시’, ‘놈에게 당한 나홀로 여성’, ‘몸으로 한 아찔한 거래’, ‘불륜에 사고 팔린 여자’ 등이다. 이 중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성욕으로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 듯 한 뉘앙스의 ‘참을 수 없는’, ‘성욕에 빠진’, ‘성욕에 물든’이란 용어는 가해자의 성범죄 논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는 표현이다. 더욱이 이 프로그램은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은밀한 손장난’으로 에로틱하게 표현하였고, ‘놈에게 당한’, ‘변태에게 농락당한’ 등으로 가학적이고 자극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또한 ‘몸으로 한 아찔한 거래’편은 배우지망생과 모델지망생 여성들을 유인하여 캐스팅을 제안하며 접근해 여성을 성폭행 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스스로 성접대를 한 것처럼 시청자들이 오인 할 수 있는 제목을 붙여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이는 모두 성폭행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바로미터가 없는 몰지각한 제목이다”면서 “폭행뿐만 아니라 성매매 또한 마찬가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제목이 문제가 됐다. 즉 ‘윤락사건 : 여학생의 은밀한 아르바이트’, ‘돈에 학대당한 인간 노예’, ‘청소년 성매매 : 여고생 포주’, ‘꽃뱀사건 : 몸으로 저지른 범죄’, ‘성폭행 소녀의 피맺힌 복수’ 등은 모두 성매매관련 사건의 제목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여기에는 성폭행과 어쩔 수 없는 올가미에 의해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이나 혹은 성매매를 주도하기도 한 사건의 여성들이 등장하였는데, 이 제목들이 ‘인간 노예’, ‘은밀한’, ‘학대’, ‘몸으로 저지른’, 등으로 지나치게 직설적이며 가학적이고 자극적이어서 마치 성인물을 보는 듯했다”며 “더욱이 성매매 사건은 주로 10대 청소년 성매매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를 제목으로도 적시한 것은 더욱 큰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10대에 대한 혹은 그들에 의한 성범죄행위는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청소년들이기에 좀 더 주의 깊게 다루어져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오히려 제목을 통해 이를 더욱 부각시켰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문제는 제목에 쓰인 ‘윤락’, ‘발바리’ 등의 단어이다. ‘윤락’은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짐.’이라는 뜻으로 이는 성범죄 사건을 다룸에 있어 대단히 적절치 못한 제목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 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윤락’은 여성이 성매매에 남성보다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는 은폐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이 스스로 성매매를 한다는 인상을 주어 성매매 여성에게만 죄의 굴레를 씌우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발바리’라는 표현은 성폭행의 폭력성을 희석시키고 가해자를 희화화시키기 때문에, 연쇄 성폭력 가해자에게 ‘발바리’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됨에도 제목에 이 단어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었다. 이처럼 <현장추적 싸이렌>은 성범죄에 대한 부적절한 용어를 제목에 사용하면서 성범죄를 심각한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과 경각심을 갖게 하기보다는 성인물의 한 장르로 전락해 버렸다고 보고서는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보고서는 “이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해당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간과하게 만들고,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확산시킬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범죄의 내용과 관련 없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시청자 유인

방송의 선정적인 제목으로 쉽게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는 시도는 성범죄가 아닌 다른 범죄사건에도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장추적 싸이렌>은 해당 범죄사건과 동떨어진 선정적인 제목을 붙여 방영하여 시청자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현장추적 싸이렌> 방영분에서 ‘꽃뱀사건 : 몸으로 저지른 범죄’, ‘누가 그녀를 덮쳤을까?’, ‘유부녀사건 : 총각 울리는 아내의 욕정’, ‘권력사칭사건 : 몸 파는 신데렐라’, ‘유혹의 늪에 빠진 누님들’ 등이 그 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목과는 무관한 절도, 사기 등의 내용들임에도 마치 성범죄사건인양 자극적인 제목들을 붙여 눈길을 끌고 있었다. 특히 ‘몸 파는’, ‘아내의 욕정’, ‘유혹의 늪에 빠진’, ‘몸으로 저지른’ 등의 표현은 여성을 성적 대상 혹은 존재로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이는 선정적인 제목을 통해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를 이용해 시청률을 높이려는 제작진의 의도이며 범죄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경각심이 없는 얄팍한 상술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의 본질을
흐리는 자극적인 제목

, <성범죄수사대 : SVU10> 시리즈는 케이블 채널에서 익숙히 보는 미국 드라마이다. 미성년이나 여성에 대한 성범죄 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자극적으로 보이지만 본 내용은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범죄자들의 프로파일과 추적, 체포, 재판에 초점을 맞춘 시리즈이다. 그리고 성폭행 등의 범죄가 등장하나 그 장면들을 최소한도로 드러나게 하거나 단순 설명하여 선정성을 최대한 배격하고 범인에 대한 단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시청연령층에 대한 경각심외에는 프로그램의 질적 문제를 비판할 것은 별로 없다. 더욱이 각각의 에피소드 제목도 사건해결의 열쇠를 적시하는 것으로 선정적이거나 자극이지 않은 제목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방영되면서 에피소드별 원제목과 주 내용에 맞지 않는 선정적인 제목을 내보내고 있어 이 시리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일례로 원제목인 ‘아바타’와 ‘충동적인’이란 뜻의 에피소드명은 국내에서는 성범죄의 신체적, 심리적 폭력성을 은폐하는 ‘섹스’란 단어를 사용했다. 또 그 외 몇몇 사례에서는 피해자의 상태를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린 딸의 높은 청각능력을 이용해 엄마를 공격한 범인을 잡는 ‘Savant(천재, 전문가)’는 ‘피투성이 유부녀’로 공격받은 엄마의 외관을 강조했다.
‘harm(손상)’의 본 내용은 이라크에서 미군에 의해 자행된 비인간적인 고문과 이를 자문한 한 여성 의사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었으나, 국내에서는 ‘찢겨진 블라우스’라는 제목을 써 초기 피해자의 모습에서 연상된 제목으로 변신했다. ‘가슴 잘린 비너스’도 적나라한 피해자 상태를 제목으로 삼아 또 다시 범죄 사실을 선정적으로 노출한다.
보고서는 “더욱 심각한 것은 7월20일에 방영된 ‘아동성애자의 고백’으로 이를 예고하면서 ‘난 어린 소녀가 좋다’라는 문장을 자막으로 내보내, 성폭력 피해자인 ‘어린 소녀’를 미끼로 성적 호기심까지 자극한 것이다”고 지적하고, “이런 예고 자막은 무엇을 의도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모두 본래 시리즈의 내용과 그 내용에 적절하고 좋은 제목을 호도하고 왜곡하여 전달한 사례들이며, 결국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성범죄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제목을 모니터링 한 결과 국내 제작 프로그램과 해외에서 제작되어 수입된 프로그램 모두 성범죄 피해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옳지 않은 제목을 쓰거나,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성인물을 연상하게 했다.
<현장추적 싸이렌>은 15세 이상 시청등급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에피소드에 청소년들이 접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몇몇의 다른 선정적인 제목으로 바꿔가며 재방송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오디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던 에피소드를 7월1일에는 ‘윤락사건 : 여학생의 은밀한 아르바이트’로, 7월15일에는 ‘성접대 사건 : 몸으로 한 아찔한 거래’로 제목만 바꾸어 재방송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심지어 성범죄 이외의 범죄에도 선정적인 제목을 붙여 방영하고 있어 범죄수사물의 제목이 시청자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들을 유인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여성민우회는 “이렇게 그 의도가 의심스러운 성범죄 수사물 제목들은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문제점 보다는 호기심을 유발하고, 범죄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성행위를 연상시킬 수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고 강조하고, “이에 유료방송에서 방영되고 있는 국내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해외 프로그램을 수입하여 국내에 제공하는 제작진은 성범죄를 다루는 내용 및 그 제목을 선정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지켜줄 것을 권고한다”고 케이블방송 업자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취재/조은위 기자

akali8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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