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꿈을 가지고 ‘예술흥행비자’(E-6)를 통해 한국에 들어 온 필리핀여성들이 외국인 전용 클럽에서 성매매와 술시중을 강요받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시사신문>은 482호에서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는 엔젤(가명, 29세)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지촌 클럽에서 자행되고 있는 E-6비자의 불법적 활용실태를 자세히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엔젤은 <시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매매와 주스 등을 따르는 접대부로 일을 해오다 도망을 나왔다.
이 같은 동남아 지역 외국인 여성들의 불법취업 실태 등을 취재하기 위해 <시사신문>은 지난 3일 동두천의 미군기지 주변에 밀집되어 있는 외국인 전용클럽거리를 찾았다.
지하철 보산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서 골목을 들어서자 미군전용클럽들이 즐비했다. 한 눈에 봐도 족히 30여개는 넘어 보였다.
평일 오후라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한 편이었다. 그래서 아직 영업이 시작되지 않는 곳도 있고 전광판에 화려한 조명을 켜놓고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 인 곳도 있었다. 클럽 앞에 나와 있는 필리핀 여성들이 간혹 눈에 띄기도 했다. 취재진이 골목에 들어서 클럽 주변사진을 찍자 클럽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엔젤의 증언에서도 대부분의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예술흥행비자(E-6)’를 받고 한국에 들어온 뒤 외국인 전용클럽에 보내진다. 처음에는 밴드의 가수로 일할 것으로 알고 입국하지만 정작 입국해서는 유흥업소 접대부 같은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엔젤 역시 필리핀에서 가수로 활동했지만 클럽에서 한일은 성매매와 술시중이었다.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지원시설 한 상담원은 “필리핀 여성들은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는 것 보다 E-6 비자로 들어오는 게 쉽다”며 “실제로 필리핀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여성들은 극소수다. 노래만 부르면 취직이 된다고 말하는 기획사가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클럽의 간판들은 미군을 상대하다보니 모두가 영어로 된 간판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외국의 관광지역을 온 듯 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클럽거리를 배회하는 학생들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클럽들이 영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문을 열어놓은 클럽 안을 살짝 엿보았다. 팬티가 보일 듯 아슬아슬한 짧은 치마에 가슴이 심하게 파인 옷을 입은 여성 5, 6명이 줄지어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클럽의 가수라기보다는 술집여성들로 보였다. 이들 중 한 필리핀 여성과 힘겹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쏘냐(31, 가명)는 어떻게 한국에 왔냐고 묻자 “가수를 하기 위해 왔다. 이 클럽에서 나는 지금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같이 있는 동료들도 가수냐고 묻자 “그렇다. 모두 가수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쏘냐는 자기가 E-6 비자로 들어왔고 2년 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쏘냐의 답변은 엔젤 등 그동안 취재해 왔던 필리핀 여성들과는 상반된 답변이었다.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지원시설 상담원에 의하면 이 여성들은 직접적으로 얼굴을 대하고 말하기 꺼려한다고 한다. 때문에 주로 전화로 많은 상담 요청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현재 경기도에 위치한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지원시설은 클럽에서 성매매와 술시중을 강요받았던 필리핀 여성들의 쉼터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이들은 의료지원, 법률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클럽에서 도망 나온 처지라 불법 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어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상담원에 따르면 상담하는 내용은 주로 임금 체불과 여권회수라고 한다. 클럽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이 성매매와 술시중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이밖에도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기 때문에 건강문제도 심각하다고.
상담원의 증언에 따르면 필리핀 여성들이 대부분이 고학력자가 아니고 집안 형편이 가난해서 돈을 벌고자 왔기 때문에 임금 체불에 대한 어려움을 많이 호소한다고 한다. 또한 기획사 측은 이 여성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여성들의 여권을 빼앗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상담원의 설명이다.
취재진이 보산역에 취재할 때도 여성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국인 남성들이 눈에 띄었다.
상담원에 따르면 “기획사들이 필리핀 여성에게 고소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고 협박한다. 심지어 비행기 표를 줄 테니 필리핀으로 돌아가라고 까지 한다”라고 말했다.
고소가 힘든 이유는 기획사의 협박이외에도 증인이 없다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성매매를 했다는 것을 이들 스스로가 입증해야 하는데 미군이 증언을 해줄리 만무한 것.
“30~40달러면 2차 가능”
밤이 깊어지자 보산역 미군전용클럽거리에는 미군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취재진이 클럽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를 했지만 제지를 당했다. 외국인남자와 동행해야 지만 클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취재진은 클럽 주변에서 미군과 함께 있는 한 한국인 여성을 통해서 클럽 안에서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미군이 클럽으로 들어가면 필리핀 여성이 접근해 온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미군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다가가기도 한다고. 이들은 얼마정도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 마음에 들면 돈을 흥정하고 2차를 간다고 했다.
소위 ‘바 파인’(일종의 성매매)이라고 하는데 30~40달러면 2차를 나갈 수 있다고 한다. 클럽 앞에서 호객행위도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취재진이 확인했을 때도 점점 거리가 어두워지자 클럽 앞에는 여성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군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클럽 앞에서는 절대 ‘바 파인’에 응하지 않는 다고 한다. 즉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는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클럽 안에서 은밀하게 서로 이야기가 오고간 후에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
또한 미군이 춤추는 것을 원하자 필리핀 여성은 즉석 해서 섹시댄스를 췄다고 한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E-6 비자는 공연활동을 위해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발급해주는 비자다. 술 판매와 성매매가 E-6 비자의 체류자격 범위에 해당하지 않을뿐더러 이를 알선하고 권유한 업주와 기획사를 성매매방지법 또는 출입국관리법으로 처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업주와 기획사는 단속을 철저히 피하며 계속해서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명백한 인신매매”라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또한 정부가 한정된 인력으로 업소들을 모두 관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말로 단속을 제대로 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현재 유엔의정서에는 인신매매를 ‘착취를 목적으로 사람을 모집, 운반, 인수하는 행위 등’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조속히 유엔의정서에 인준하여 인신매매 처벌 관련법 제정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