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사건 처리 불복해 고소했다가 ‘무고’로 1심서 유죄…항소심 '무죄'

H(75)씨는 2003년 12월 오락기 임대사업자금 121만원을 납입하면 수개월 내에 30회에 걸쳐 15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다단계판매회사 N사 측의 권유로 당일 121만 원을 냈다.
그런데 N사의 대표이사 최OO씨는 이후 다른 회사를 설립해 엘지텔레콤과 무선재판매 사업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뒤, N사 회원들에게 휴대폰 단말기를 판매했고 H씨도 N사로부터 부인 명의로 핸드폰을 샀다.
이후 H씨는 N사로부터 2004년 2월부터 4월까지 65만 원을 받았으나, 나머지 85만 원은 최씨가 N사를 폐쇄하고 잠적하는 바람에 받지 못했다.
이에 H씨는 최씨가 N사 회원들의 투자금을 편취했으며, 엘지텔레콤 대표이사 남OO씨도 최씨의 편취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생각해 2005년 1월 서울남부지검에 최씨와 남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한편 최씨는 N사 회원들에게 수익금을 줄 수 없는 형편이었음에도 회원들을 속여 돈을 가로챘다는 내용의 사기죄 등으로 2004년 12월 대전지법에 이미 기소된 상태였고, 이후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이 확정됐다.
그런데 H씨의 고소사건은 담당검사의 수사지휘 하에 서울강서경찰서에서 진행됐는데, 수사지휘서에는 H씨가 제출한 고소장과 다른 내용의 고소요지가 적혀 있었다.
또 경찰서에서 4차례나 조사를 받은 H씨는 “수사관들이 엘지텔레콤 대표이사에 대한 고소취하를 종용하는 등 유전무죄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수사관들에 대해 기피신청을 했다.
이후 고소사건의 담당검사가 바뀌었으나, 바뀐 검사는 남씨에 대한 아무런 조사 없이 2005년 3월 N사 대표인 최씨의 주거지 관할인 대전지검으로 고소사건을 송치했고, 대전지검은 엘지텔레콤 대표이사 남씨에 대한 고소를 무혐의 처리했다.
이에 H씨는 항고 및 재항고를 했으나 모두 혐의 없음 내지 각하 처분을 받고 다시 재정신청까지 했지만 기각됐다.
그러자 H씨는 2005년 3월 서울남부지검에 “재벌 총수인 남OO을 무혐의 처리하기 위해 유전무죄의 목적 수사를 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취지로 이 사건을 처리했던 검사들과 수사관들을 고소했다.
하지만 이 고소는 2005년 4월 ‘혐의 없음’이 명백하다는 이유로 각하됐고, 이에 H씨가 재정신청을 했으나 기각됐다.
아울러 H씨는 엘지텔레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올라가며 판단을 받았으나 결국 패소했다.
화가 난 H씨는 자신이 고소한 사건의 판결이나 처분에 관련된 대법관, 판사, 검사, 검찰 수사관, 경찰관 등 78명을 상대로 직무유기나 직권남용 등으로 계속해서 고소했다. 그러나 위 고소사건들은 특별한 추가 조사 없이 모두 각하됐다.
그러자 검찰은 “H씨가 엘지텔레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자 앙심을 품고 자신이 고소한 사건의 판결이나 처분에 관련된 대법관, 판사, 검사, 검찰 수사관, 경찰관 등 78명을 상대로 직무유기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으로 계속해서 고소하면서 괴롭히고 있다”며 2007년 2월 H씨를 기소했다.
1심인 서울남부지법은 2008년 7월 ‘무고’ 혐의로 기소된 H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인 서울남부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손왕석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자신이 고소한 사건의 판결이나 처분에 관련된 판ㆍ검사와 경찰관 등 78명이 직무유기나 직권남용을 했다고 허위 주장한 혐의(무고)로 기소된 H씨에게 유죄를 인정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지난 7월30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H씨가 N사로 인해 재산적 피해를 입었고, 엘지텔레콤 대표이사 남씨가 N사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해 고소했는데, 담당검사의 수사지휘서에 첨부된 고소장에는 자신의 고소취지와 다른 내용이 기재돼 있었으며, 여기에 담당수사관들은 고소취하를 종용했고, 또 남씨에 대한 조사 없이 사건을 대전지검으로 이송했기에 법률지식이 없었던 H씨로서는 남씨가 재벌 총수이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H씨의 반복되는 고소는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하기는 할지언정 국가형벌권이 잘못 발동되게 할 위험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H씨에게 무고의 범의가 있거나 H씨의 고소가 수사권 또는 징계권 발동을 촉구할 정도의 고소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취재/조은위 기자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