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하모니'의 한 장면
의처증이 심한 남편의 폭행을 참다 못 해 살인을 저지른 정혜. 강간을 하려던 양아버지를 살해한 유미. 영화 <하모니>에 등장하는 여성재소자들의 기구한 사연들이다. 이러한 여성재소자의 비극은 비단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난 2005년 법무부 의뢰로 충북대 김영희 교수팀이 청주여자교도소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형자 531명 중에서 조사에 응한 436명을 면접한 결과, 57.1%에 달하는 249명이 “남편 혹은 애인에 대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중 대다수인 82.9%는 남성으로부터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 3월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50대 여성이 폐색전증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 진상조사위원회는 교도소 내 부실한 의료와 수감자 건강관리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8일 밝힌 바에 의하면, 지모 씨는 어릴 적부터 간질을 앓아 항경련제인 페니토인을 복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약은 과량 복용하거나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서 언어장애, 기면, 의식이 희미해지거나 보행이 어려워지는 등 ‘중독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진상조사위원회는 지 씨의 경우 이미 걷지 못하고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지만 교도소 측에선 별도의 진찰 없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반복적으로 약물만 투약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지 씨의 부검 결과 밝혀진 사망원인은 폐색전증으로 하지정맥부터 혈전이 생겨 폐동맥이 막히면서 폐색전으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진상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지 씨는 교도소에 수용된 후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운동도 거의 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형법과 공무원 규정은 교도소 수용자가 일정 시간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게 하고 있다. 또 위독한 재소자들은 다른 교정 시설로 이송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돼 있다.
지 씨의 경우, 현장에서는 전혀 이러한 규정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약물중독 증상을 보이는 지 씨에 대해 최OO 신경정신과 의사는 ‘꾀병’으로 오진했으며, 지 씨가 사망하기 일주일 전 OO병원은 페니토인 중독 사실을 알고 검사를 실시했지만 그 결과 재소자나 교도소 측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변호사관계자는 의료적인 처우를 잘못한 점뿐만 아니라 수감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관리를 소홀이 하지 않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에 사망한 여성재소자 지 씨는 남편의 살해 위협을 피하는 과정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됐다고 한다. 따라서 지 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국민배심원 재판을 신청, 충주 구치소에서 청주여자교도소로 이송된 상태였다.
이와 관련해 천안 여성의전화 노은숙 소장은 <시사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처음 지 씨에 대한 사연을 접하고 법적인 도움을 주고자 면회를 갔을 때 (지 씨의) 얼굴이 많이 좋지 않았다”며 “면회를 할 때도 휠체어를 타고 나올 정도로 잘 걷지를 못했다”고 증언했다.
또 노 소장은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해진 운동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 씨의 폐색전증이 더 심해졌을 거라 본다”고 지적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국선변호사를 통해서 (지 씨의 상태를) 교도소 측에 알렸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었다”고 밝혔다.
노 소장에 따르면 교도소에 의료수준은 재소자들의 건강을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다.
노 소장은 “교도소 측이 마련하고 있는 의료수준은 보험에 들어가는 일정수준의 일차적인 진료 항목 몇 가지로 규정되어 있는 상태다”며, 교도소내의 진료체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지 씨와 같이 사회에서 폭력피해로 인한 우발적 살해를 저지르고 수감되는 여성재소자들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성 질병에 대한 관리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노 소장은 “여성재소자 중 다수가 피해자 이면서 동시에 피의자가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며 “이들 여성재소자들은 오랫동안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가 우발적으로 살해를 저지르는 경우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적 여파에 대한 부분을 재판부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도에 실시한 ‘구금시설 내 여성수용자 인권실태조사’를 보면 입소 후 건강진단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211명(42.1%)의 수용자가 ‘있다’고 했고, 279명(55.7%)은 ‘없다’고 대답했다. 정기검진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도 ‘있다’(107명, 21.4%)라는 대답이, ‘없다’(378명, 75.4%)라는 대답보다 많아 수용시설에 들어오고 난 후의 건강진단이나 정기검진을 받은 수용자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떤 수용자의 경우 ‘약품 종류가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여러 병인데도 한 가지 약을 주는 경우가 있다’라고 응답했고, 다른 여성 수용자는 ‘피부병약과 무좀약이 똑같다’라고 응답했다. 아울러 256명의 수용자 중 25명이나 ‘얘기를 했는데도 진료를 해주지 않았다’라고 응답했다.
따라서 이 조사가 시행됐던 2003년이 지난 지금도 의료 소홀로 인한 여성재소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경위를 보면 교도소 내 건강관리가 전혀 변화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도 2003년 이 후로 여성재소자에 대한 인권 실태조사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교도소 내 문제점을 진단내릴 수 있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책에 있어서도 여성재소자는 남성재소자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등교중인 8세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 살인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을 인정하여 12년형으로 감경됐다.
그러나 폭력으로 인해 우발적 살해를 저지른 여성에게는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에 대해 노 소장은 “폭력피해로 인한 우발적 살인을 한 여성재소자를 폭력 앞에 무력한 약자의 정당방위 차원으로 숙고되어 처리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여성계에서도 계속해서 ‘가정폭력 피해 여성 살인에 대한 정당방위 확대’ 등 ‘사회적 원인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성폭력 남성재소자들에게는 교화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여성재소자들에게는 어떠한 정신적 상담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됐다.
노 소장은 “교도소 담장이 아직도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며 “안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고 여성재소자들이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지난 2006년 2월 남성 교도관에게 성추행당한 여성 재소자의 자살 뒤 같은 해 5월 교정시민옴부즈만과 교정행정자문위원회, 여성 재소자 성폭력감시단을 신설했었다.
이들 위원회는 각각 교정행정 감시, 인권 침해 실태 점검, 여성 재소자에 대한 성폭력 감시를 목적으로 설치 됐었다.
그러나 현 정부로 바뀌면서 이들 3개 위원회는 교정자문위원회로 통합됐다.
시민단체들은 교정자문위원회가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교정정책 전반에 대한 정책자문을 목적으로 하는 기구로 성폭력 감시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노 소장은 “밖에서 감시하는 기관이 없다보니 교도소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재소자에 대한 인권문제가 밖으로 드러나기 힘들다”고 지적하거, “정부의 기관이든 시민단체 기관이든 교도소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감시할 단체가 조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2일 ‘35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여성 재소자의 인권은 어디에’라는 제목의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재소자의 생명권을 소홀히 한 교도소 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여성재소자 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구속수감중인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의 심리적, 신체적 질병’을 관리하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취재/조은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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