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개연, “회장 돈 문제 언급 못하는
지배구조에서 상생경영 물거품”
이건희 회장, 세금납부 후 남은
차명재산 규모 및 용도 밝혀야
최근 삼성전자가 발표한 1조원 규모의 협력사 지원펀드 조성에 대해 일각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특히 정부 압박과 여론에 떠밀려 내놓은 고육지책의 성격이 적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기업의 성심성 발표는 발표에만 그치는 경우가 허다해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이하 경개연)는 지난 18일 삼성전자의 ‘상생경영 7대 실천방안’을 환영한다면서도 아직은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상생협력은 거래쌍방 간 신뢰 구축이고 신뢰는 약속의 이행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룹 총수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회적으로 약속했던 것들이 대부분 불이행됐기 때문이다.
<시사신문>은 경제개혁연대가 왜 ‘회장님 돈 문제’ 언급도 할 수 없는 지배구조 하에서 상생경영은 물거품이라고 밝혔는지 그 이유를 살펴봤다.
경개연은 지난 18일 논평을 통해 “지난 16일 삼성전자가 ‘상생경영 7대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협력사의 원자재 구매를 돕는 사급제를 도입하고, 펀드를 조성해 저리로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밖에도 2~3차 협력사의 경쟁력 제고를 돕고, 협력사의 인력수급도 지원하겠다고 한다”며 “이는 좋은 일이다”고 밝혔다.
경개연 “삼성전자의 상생경영 약속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특히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원성이 높았던 대표적 기업 중의 하나가 삼성전자였던 만큼 차제에 면모를 일신하기를 기대한다”며 “문제는 삼성전자의 변화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상생협력은 거래쌍방 간의 신뢰의 구축이고, 신뢰는 약속의 이행으로부터 싹튼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건희 회장은 “조세포탈이 문제가 된 차명 계좌에 대해 실명 전환과 함께 누락된 세금을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에 경개연 측은 “이 회장이 개인 돈을 유익한 일에 쓴다면 회사 돈으로 상생경영에 나서겠다고 한 약속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더 굳어지지 않겠느냐”며 “경제개혁연대가 이 회장의 개인적 약속 이행 문제를 지적한 것은 불공정 하도급거래 문제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지배구조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건희 회장이 상생협력을 아무리 강조해도 삼성전자 내부의 인센티브 구조가 제대로 짜여져 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 경개연의 주장이다. 즉 부품구매 담당부서 임직원들이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해서라도 단기실적을 올려야만 승진과 보너스가 기대되는 경직적 조직관리 체계 하에서는 상생경영 약속도 물거품이 될 것이란 점이다.
이 단체는 이어 “회사의 단기적 이익, 심지어 총수일가의 사적인 이익에 충성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왜곡된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하도급거래의 불공정성 문제를 극복하는 출발점”이라며 “‘어떻게 회장님 개인 재산 문제를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라는 분위기가 변하지 않는 한, 지배구조 개혁도 불가능하고 상생경영도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이건희 회장은 차명재산 중 세금납부 후 남은 돈이 얼마이고, 이를 어떻게 쓸 것인지 조속히 밝히고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경개연은 주장했다.
경개연은 마지막으로 “최근 미국의 부호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자는 ‘기부서약(Giving Pledge)’운동에 최소 1,500억 달러(약 175조원)의 기부를 약속하면서 부러움을 산적이 있다. 한국의 재벌총수들이 배임?횡령?탈세의 오명을 씻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면,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함께 사회적 약속부터 철저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지난 16일 협력사들로부터 청취한 애로사항과 제안내용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강화를 위한 ‘상생경영 7대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2004년 국내 최초로 임원 단위의 상생협력 전담조직을 두어 그 동안의 협력사 지원 활동을 체계화했으며, 2008년에는‘상생협력실’을 설치하여 협력사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 보다 중장기적이고 발전적인 상생경영을 전개해 왔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2004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중소기업이 애로를 겪고 있는 설비투자, 기술 개발, 협력사 임직원 교육, 대외 기관 연계 중소기업지원을 위한 기금 출연 등에 총 1조 2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으며, 2005녀 부터는 협력사 대상 전액 현금결제를 시행함으로써 협력사의 현금 유동성 개선을 선도해 왔다.
삼성전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협력사는 물론 사회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올 6월말부터 ‘상생관련 경영진단’을 실시했으며, 80여 개에 달하는 협력사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청취하고 전사적으로 구매·상생 관련 활동을 면밀히 짚어 본 결과를 바탕으로 협력사와의 동반발전에 획기적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7가지 실천방안을 수립했다.
이번에 수립된 ‘상생경영 실천방안’은 과거의 상생활동이 1차 협력사 위주였던 점을 감안해 2·3차 협력사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상호신뢰와 성장 가능성이 큰 1차 협력사에 대해서는 글로벌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