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화상 위장’ 치료…통밀은 섬유질 풍부
‘설사 화상 위장’ 치료…통밀은 섬유질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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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근 교수의 한방클리닉 ‘소맥(밀)’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고. 어릴 적 고향에도 밀밭이 더러 있었다. 여름이 될 무렵 다 자란 밀밭 사이로 지나다 보면 바람에 밀 줄기와 잎이 흔들리면서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풍겨오는 향기가 정겨웠다.

그런데 요즘은 고향 땅에는 밀밭이 없다. 바람에 불어오는 향기도 잎과 줄기가 스치면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성경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아마도 고향 땅의 밀은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모양이다.

하긴 예전 한 톨의 식량이라도 더 많이 얻어내야 배를 주리지 않고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었던 시절에 기껏 심어봤자 몇 줌 밖에 생산이 되지 않는 밀을 심는 다는 것은 사치였을 것이다.

게다가 잘 갈아지지도 않고 껄끄러운 우리 밀에 비하여 당시 미국에서 무상으로 원조된 밀가루는 반죽도 잘 되고 거칠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밀을 뒤엎고 대신 다른 작물을 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돌고 돈다고 요즘은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이 탄력을 받고 있고 한 때 주식이었던 쌀보다도 밀의 소비가 더 많다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밀은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작물이다. 세계 곡물 생산량으로 보면 옥수수 다음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식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재배된 가장 오래된 작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석기 시대에 이미 유럽과 중국에서 널리 재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대의 여러 유적지에서 밀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면 재배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한의학에서도 밀을 식량으로서만이 아니라 소맥(小麥)이라 하여 약용으로도 활용하였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밀은 성질이 차고 맛이 달고 독이 없어서 몸의 열기를 잠재우고 갈증을 없애주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잠을 적어지게 하고 간의 기운을 많게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본초강목에서도 밀은 노인들이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하는 증상에 좋고 목에 생긴 커다란 종기를 없애는데도 활용하며 불에 덴 상처나 머리에 생긴 부스럼에도 밀을 태운 가루를 사용한다 하였다.

또한 밀에서 가루를 빼고 남은 찌꺼기인 밀기울은 여성이 출산 후에 자꾸 식은땀이 나는 것을 치료하며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얼굴에 흉터가 있거나 불에 덴 상처에 밀기울을 개서 환부에 바르면 낫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 밀가루의 성분 중의 하나에는 글루텐이 있다. 이 글루텐은 극히 일부 사람에서는 장염의 일종인 만성소화장애증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동의보감에도 밀기울은 성질이 차고 독이 없어서 위장의 기능을 돕고 열독으로 인한 종창이나 뜨거운 물에 데인 화상으로 인한 상처를 낫게 하고 타박상이나 골절도 치료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밀은 가을에 심어서 추운 겨울을 나고 여름이 되어 열매를 맺으면서 사계절의 기운을 가진 식물이다. 그러기 때문에 밀은 껍질 부분은 성질이 차고 속 열매는 성질이 오히려 따뜻하다. 따라서 속 열매를 갈아서 만든 밀가루는 따뜻한 성질을 지녔다.

그러기에 밀가루는 위장을 보하고 기운을 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기력을 높이는 효능으로 인하여 밀가루는 오장을 보하게 되어 오래 먹게 되면 사람을 튼실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여기에 밀가루를 볶아서 마시게 되면 피를 토하는 증상을 멎게 하고 매일 공복에 두 수저 정도 따뜻한 물에 개어서 마시면 이질 설사도 낫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밀가루는 목이 아파서 음식을 삼키기 어려울 때 식초와 함께 섞어 마시면 증상을 멈추게 한다. 젖몸살이나 벤 상처 또는 화상에도 밀가루를 개어 바르면 낫게 된다고 말한다.

밀을 발효시켜 만든 것이 바로 누룩이다. 누룩은 일반 가정에서는 술을 담그는데 사용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신곡(神麴)이라 하여 소화를 돕는 약으로 사용한다. 누룩은 위장의 기능을 도와 소화를 촉진하고 설사를 다스리고 배변 기능을 돕는다.

또 잘 여물지 못해서 쭉정이가 되어 물에 담갔을 때 뜨게 되는 밀을 말 그대로 부소맥(浮小麥)이라 한다. 부소맥은 심장을 튼튼하게 하고 대추와 함께 달여 마시면 식은땀이 심하게 나는 증상을 멎게 한다. 또 뼈마디가 후끈후끈 달아오르면서 아픈 증상이나 여성이 무리하게 일을 하고나면 열이 나게 되는 증상을 낫게 하는 효능이 있다.

이처럼 쓰임새가 많은 밀은 전분과 단백질 및 비타민 A와 B 그리고 비타민 E를 함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철분과 식이 섬유를 함유하고 있어서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한 곡식이다.

하지만 밀가루의 성분 중의 하나에는 글루텐이 있다. 이 글루텐은 극히 일부 사람에서는 장염의 일종인 만성소화장애증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그래서 밀가루 음식만 먹으면 배가 아프거나 설사한다는 사람은 이 성분에 과민반응을 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비교적 서양인에 비하여 동앙인들은 이 글루텐에 대하여 과민한 사람의 비율이 더 높다. 그래서 한약을 복용할 때 밀가루 음식은 주의하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탄수화물은 가공과정을 거치면 거칠수록 당지수가 높아진다. 다시 말해서 분해되어 당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서 쉽게 혈당을 높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당뇨 환자들이 곱게 빻아서 정제된 밀가루로 만들어진 빵이나 면류를 과량 섭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신 섬유질이 풍부하여 상대적으로 당지수가 낮은 통밀, 즉 거친 밀가루로 만들어진 빵이나 면류를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많이 드는 것은 비만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밀이나 통밀로 만들어진 빵이나 면류가 여러모로 건강에 좋다.

지금 중년을 훨씬 넘긴 사람들은 아마도 미국 국기를 배경으로 서로 악수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던 미국의 원조 계획에 따라 우리나라에 무상 배급되었던 밀가루 포대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굶주리던 시절 미국산 밀가루는 당시 끼니를 굶기 일쑤였던 많은 사람에게는 고마움의 상징이었다. 쌀이건 뭐건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젠 쌀이 남아돌고 어제까지 고마워했던 밀가루의 폐해를 말하면서 우리 밀을 찾는다. 그러고 보면 예전의 광고 카피처럼 항상 우리 것이 좋은 것인 모양이다.
 

* 송봉근 교수는 현재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장 겸 한의과대학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중국 중의연구원 광안문 병원 객원연구원 및 미국 테네시주립의과대학 교환교수로도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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