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조직 위계질서 해쳤어도 ‘해임’은 가혹”
“경찰조직 위계질서 해쳤어도 ‘해임’은 가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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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법 “20년 이상 봉직해 왔는데 경찰직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지나쳐”

근무태만은 물론 경찰 내부통신망에 지휘부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글뿐만 아니라 상사와 동료를 저속하게 비방ㆍ모욕하는 글(댓글)을 수십 회 올려 ‘해임’ 처분된 경찰관이 법원에서 구제받았다.
비록 공무원으로서의 성실의무와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징계사유는 인정되더라도, 20년 이상 봉직해 온 경찰직을 완전히 박탈하는 징계는 가혹해 위법하다는 판단이었다.

◈ 근무도 하지 않으며 어떤 비위 저질렀나?
청주지법에 따르면 1984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J 씨는 2009년 7월19일부터 9월14일 사이 야간 112 순찰 및 거점근무를 6회(42시간)에 걸쳐 하지 않았다.
또한 2009년 3월부터 9월 사이 경찰청 내부전산망 게시판에 40회에 걸쳐 댓글을 달면서 경찰시책을 비방하거나 상사와 동료를 비방했고, 2007년 11월부터 2009년 9월 사이에는 사이버경찰청 경찰발전 제언방에 조직을 비하하거나 상사와 동료를 비방하는 글(댓글)을 18회 올렸다.
뿐만 아니라 J 씨는 동료의 아이디를 이용해 자신이 작성한 글에 동조하는 댓글을 달거나, 동료를 저속하게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
심지어 2009년 7월 술에 취해 이임발령이 난 경찰서장에게 동료 직원들 앞에서 “우유부단하고 리더십도 없다”며 비방ㆍ모욕하기도 했고,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에게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욕설과 막말을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파면처분을 받자, J 씨는 불복해 소청심사를 청구했고, 소청심사위원회는 지난 3월 비위사실이 인정되고 중하나, 대외적으로 물의를 야기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해임으로 변경했다.

◈ 해임 경찰관 “순찰근무 소홀한 것 맞지만 그 정도는 관행”
그러자 J 씨는 “순찰 및 거점근무를 다소 소홀히 한 것은 맞지만 근무지역을 이탈하지는 않은 채 항상 출동태세로 대기했고, 통상 그 정도의 근무소홀은 관행적인 업무행태를 넘어선 것이 아니다”며 또 “감찰조사를 하면서 경찰관서에 설치된 CCTV를 이용한 것은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하므로 징계의 근거자료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경찰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린 것은 진지하게 치안시책의 발전방향을 고민하면서 충언과 직언을 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비록 다소 거친 표현이 있었더라도 전체적인 글의 맥락에서 이해해야지 일부 문단 또는 단어만 발췌해 문제를 삼는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비례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항변했다.
아울러 “당시 경찰서장이 전보발령 난 것에 대해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표시하는 과정에서 평소 동료들이 언급한 서장의 업무방식에 대한 평가를 앞으로 참고하라는 취지로 순수하게 전달한 것이지 상사를 모욕하거나 비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신임 경찰서장에게도 다소 격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비방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J 씨는 특히 “24년간 성실히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공로를 인정받아 15회에 걸쳐 표창을 받았고, 일부 신중하지 못한 언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해임 징계처분은 너무 무거워서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 “경찰조직 내부의 위계질서를 심하게 해치는 나쁜 행위”
이에 대해 청주지법 행정부(재판장 황성주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J 씨가 충북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비위정도가 중한 징계사유라면서도 징계정도가 지나치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지난 8월24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순찰차량을 이용해 관할지역에 대한 범죄예방 순찰, 거점 및 검문검색 등 현장치안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112순찰요원의 기본적인 근무사항임에도, 원고는 이런 정상적인 업무활동을 하지 않고 지구대 내에 머물면서 지속적, 반복적으로 업무와 무관한 딴 짓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근무를 다소 소홀히 한 정도를 훨씬 넘어서 거의 순찰요원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수준에 달했으므로 이를 가리켜 관할구역을 벗어나지 않은 대기근무라거나 또는 관행화된 근무행태라고 교묘히 변명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그리고 형사재판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증거법칙은 공무원에 대한 징계절차에는 적용이 없으므로 원고의 비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치안센터에 설치된 CCTV 녹화영상을 이용했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 “원고가 경찰 내부전산망에 게시한 글의 의도가 비록 경찰조직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더라도 자신의 글을 비판하는 동료 경찰관에 대해 ‘역적, 살살이, 예스맨, 개도 안 물어 가는 깡통 계급장, 미친개, 쓰레기’ 등의 모욕적인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은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져버리고 조직의 단합과 인화를 저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더욱이 그런 적대적인 내용과 저속한 표현을 사용한 글의 작성자로 다른 동료의 아이디를 도용한 것은 그 사람이 조직의 다른 동료들로부터 중대한 오해를 살 수 있게 만드는 비겁한 행동”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경찰조직은 업무의 특성상 조직의 위계질서와 단합된 자세가 특히 중요하다”며 “원고가 전출하는 경찰서장에게 동료들 앞에서 모욕적인 발언을 반복하고 특히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에게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야간에 전화를 걸어 다른 상사에 대한 심한 욕설과 함께 반말을 한 것은 단순히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할 뿐만 아니라 경찰조직 내부의 위계질서를 심하게 해치는 나쁜 행위”라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위와 같은 원고의 제반 비위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의무), 제63조(품위유지의무)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이 사건 징계사유는 모두 충분히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 “20년 이상 봉직해 온 경찰직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지나쳐”
재판부는 그러나 해임처분은 과하다고 판단했다. “원고가 24년간 경찰공무원으로 봉직하면서 별다른 징계전력이 없고 오히려 여러 차례 표창을 받은 경력이 인정되면, 인터넷에 게재한 글도 동료들에 대한 공격이 지나치기는 했지만 원래의 의도는 경찰시책에 관해 강하게 나름의 입장표명을 하려는 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것이 외부에 공표돼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으며, 타인의 아이디를 도용한 것도 단발성이 그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인터넷에서 정제되지 않은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것과 상사에게 무례한 언동을 한 것을 뉘우치면서 깊이 반성하는 점 등을 종합할 때 비록 원고가 저지른 비위의 정도가 무거워 상당한 중징계를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처분처럼 20년 이상 봉직해 온 원고의 경찰직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징계사유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운 것으로 징계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에 해당해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취재/조은위 기자
akali8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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