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에 대해 <시사신문>은 Y대학병원의 임상센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이소희(가명, 30)씨를 만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실험실 보조연구원의 실태에 대해 들어보았다.
서울의 모대학병원의 임상센터에서 보조연구원으로 일했던 이소희 씨는 말만 보조일 뿐 실험에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주도해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3년 동안 근무했던 실험실을 마지못해 퇴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3년이 넘게 실험실에서 일했지만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실험이 좋고 논문보고 연구하는 게 마냥 좋았다. 사실 지금도 논문만 봐도 설레인다”고 연구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이 씨에 따르면 근무했던 실험실은 실험기자재부터 잘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열악한 연구 환경 속에서도 그는 연구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실험하기위한 기자재가 갖추어져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며 “그래도 내 실험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최선을 다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씨는 자신을 고용한 실험실의 교수는 이러한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기 보다는 연구성과에만 집착하고 괜한 트집 잡기가 일쑤였다고 고백했다.
이 씨는 “말이 보조연구원이지 실질적인 실험은 모두 내가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가 있던 실험실에 사람이 10명이 넘게 바뀌었다”고 말하며 “끝까지 좋게 퇴사한 경우가 없었다. 퇴사하는 사람들이 교수와 트러블이 있어서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실험실의 속사정을 털어놨다.
이름만 보조 연구원일 뿐 하는 일은 연구개발의 주체
낮은 처우와 불안정한 신분으로 멍드는 이공계 비정규직
이 씨에 따르면 보통 생명과학계통의 실험실은 사람들이 자주 바뀐다고 한다. 그 이유가 열악한 근무환경도 있고 실험실 안에서 연구원들 간의 안 보이는 텃새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 씨가 실험실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부당한 교수의 태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교수는 나를 연구원으로 대우해주기는 커녕 나의 신변잡기에만 관심있었다”고 부당한 처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에 따르면 처음에는 출퇴근이 정해져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출퇴근이 무의미해졌다고 말했다. 또 교수가 자신을 학부생처럼 부려먹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교수가 진행하는 실험을 이 씨 자신과 또 한명의 보조연구원이 함께 진행해 가는 방식이었지만 점점 자신이 실험해 나가는 비중이 켜지게 됐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교수는 이 씨에게 논문을 쓰게 했다. 기존에는 실험한 데이터만 교수에게 넘기면 됐었는데 나중에는 이 씨가 직접 논문을 쓰게 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이 씨는 “논문을 주도해서 쓰기 시작하면서 내 개인적인 삶은 온통 실험에만 쏠리게 됐다”며 “밤을 지새울 때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내 논문이라고 생각하니까 절로 힘이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이 씨는 “오죽하면 옆 실험실의 연구원이 나에게 ‘선생님은 학부생 같아’라고 말했을 정도였다”며 “그 정도로 대학원생 못지않은 열정을 실험에 쏟았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교수는 이 씨에게 논문의 제 1저자로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또한 교수는 이 씨에게 ‘이 선생님은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며 ‘대학원도 진학하게 도와주겠다’고 말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 씨는 어느 순간부터 교수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이 씨에 따르면 “논문이 다 써지고 마지막 교정만 남겨놓은 상태인데 교수는 나에게 냉랭했다”고 말하며 “심지어 어디에 논문을 낼 것인지도 가르쳐 주지 않고 계속 형식만 이렇게 저렇게 바꾸라고 지시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이 씨에 따르면 교수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루는 랩 미팅을 하는데 끝나고 실험실 노트를 세게 닫았다고 꼬투리를 잡았다. 또 실험할 때 쓰는 캠코더를 고치지 않았다고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이렇게 트집만 잡던 게 급기야는 급여를 중단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 씨는 “저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교수가 저한테 준 벌이 급여를 중단시키는 거였다”라고 말하며 “나는 교수를 무시한적도 없는데 돈을 미끼로 나를 좌지우지 하려는 교수의 태도가 지금도 어이없다”고 분통터져 했다.
결국 이 씨는 한 달 동안 급여를 못 받게 되자 1년 동안 힘들게 써왔던 논문도 포기하고 실험실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 씨는 한 달 급여를 받기 위해서 교수와 몇 번의 이메일로 입씨름을 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 씨에 따르면 “교수에게 한 달 급여를 요구하니까 그동안 썼던 연구기자재에 대한 사용비를 내놓으라고 했다”며 “어떤 연구원도 자신이 쓴 기자재비를 내놓지는 않는다”라고 교수의 부당한 대우에 일침을 가했다.
또한 이 씨는 결국 교수에게 노동청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는 마지막 일했던 15일의 급여는 끝내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3년이 넘게 실험실의 자질구레한 일까지 도맡아 했던 이 씨는 “결국에는 나에게 아무것도 돌아온 게 없다”고 한탄했다.
이 씨에 따르면 자신이 1년간 썼던 논문도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씨는 교수가 자신에게 통보도 해주지 않아서 아마도 자신의 이름이 빠져서 발표됐을 거라고 말했다.
이 씨는 “1년 동안 열정을 쏟아서 했던 실험이었는데 논문에 대해서 알아볼려면 알아볼 수는 있겠지만 내 이름이 논문에서 빠졌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이 씨는 “고소도 해볼까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이 바닥에서 다시 공부하거나 일 할려면 하지 말라고 권유했다”며 “실험실에서 근무하면서 부당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이 열심히 일했는데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해고 아닌 해고가 돼버렸다”고 억울해 했다.
이 씨에 따르면 모든 실험실이 이 씨 같은 부당한 대우를 당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의 실험실이 열악하다고 한다. 또한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4대 보험, 법정퇴직금 등은 꿈도 생각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실험실의 보조연구원이 하는 일은 단순한 보조가 아니라 연구개발의 핵심주체로 떠올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가 다녔던 임상센터에도 대학원진학을 이유로, 또는 전문 연구원을 꿈꾸고 들어오는 보조연구원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들은 일일노동근로자와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씨는 “보조연구원은 연구원이라는 허울만 좋을 뿐이지 안으로 들어와 보면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상태다”라고 열악한 보조연구원들의 삶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