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상권을 둘러싸고 중소상인들과 홈플러스, 이마트 등 거대 유통회사들 간에 분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형유통회사들이 편법 가맹점 SSM(기업형 수퍼마켓) 출점을 강행하고 있어 상인들의 고통과 절규가 더해가고 있다. 여기에 인천시와 경남도가 각각 지난 3일과 8일, 가맹점SSM에 대해서도 사업일시정지권고를 내렸지만, 서울시를 비롯한 다른 지자체들은 가맹점SSM에 대한 사업조정 적용을 미루고 있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상인들의 저항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급기야 7일에는 염창동의 한 상인이 자신의 차량에 불을 지르며 SSM으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린 중소상인들의 절박함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에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이하 상인네트워크)를 비롯한 중소상인·시민사회단체는 지난 9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가 가맹점SSM에 대해 즉시 사업일시정지를 권고하라고 촉구했다.
중소상인들이 가맹점 SSM으로 생존권 문제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과 거대 유통회사들의 SSM진출이 어디까지 이뤄지고 있는지 집중 취재해 봤다.
중소상인살리기 전국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 연말부터 대형유통회사들은 사업조정제도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직영점으로 추진하던 SSM을 가맹점 형태로 전환하여 전국 곳곳에 속속 입점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국회에 문제를 제기했고, 지난 7일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들은 10월25일 국회 본회의에서 SSM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최근 중소기업청장도 지침변경을 통해 가맹점SSM을 사업조정대상에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혀왔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여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행동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상인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헌법 제123조는 국가의 책무로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헌법의 정신을 유린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들은 “이명박 대통령은 연일 ‘친서민정책’과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고 있지만, 수년째 SSM법안의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정부와 여당을 보면 이러한 발언은 누가보아도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며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이에 대해 대오각성하여, 지난 4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대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에관한법률 개정안을 하루속히 동시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대형유통기업들은 관련 법안의 통과가 지연되자 이 기회를 틈타 엄청난 속도로 SSM을 출점하고 있다”며 “최근 대형유통기업들은 사업조정제도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맹점 방식의 SSM 출점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어, 상인들의 고통과 절규가 더해가고 있다”며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불과 6개월 동안 새로 문을 연 SSM은 가맹점SSM 23개를 포함하여 총114개”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오세훈 시장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중소상인들은 이미 지난 8월3일 오세훈 시장님께 가맹점SSM에 대해서도 즉시 사업일시정지를 권고해 달라고 간청한 바 있다”며 “하지만 시장님께서는 지금까지 어떠한 조치도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 이상 서울시의 책임회피로 중소상인들의 고통이 가중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세훈 시장님께서는 지금 당장 가맹점 형태로 개점을 준비하고 있는 상계6동, 염창동, 화곡동 등의 SSM에 대해 사업일시정지를 권고해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SSM를 확대하려는 기업들의 경우 온갖 편법을 동원해 영토 확장에만 힘쓰고 있어 SSM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SSM 신규 출점을 거의 중단하다시피했던 신세계 이마트의 행보는 이런 시점에서 눈에 띈다. 한동안 SSM 개점을 자제했던 신세계가 최근 다시 SSM 출점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슈퍼마켓 '이마트 에브리데이' 성남 판교점을 개점한데 이어 6월에는 인천 송도점, 지난 8월에는 서울 화곡점을 잇달아 개점했다. 한 달에 한 개꼴로 출점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현재 이마트 에브리데이 점포는 14개로 늘어나 중소상인들의 긴장감을 더욱 높였다. 신세계의 SSM 출점은 지난해 11월 김포시 풍무동에 11호점을 연 이후 6개월만에 재개된 것이라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반면 홈플러스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이후부터 익스프레스 신규 개설이 지지부진했다. 그리고 영세상인들이 익스프레스 오픈을 막아 달라며 중소기업청에 낸 사업조정 신청 건수는 무려 74건에 달한다. 즉 오픈을 계획했던 74개의 점포가 문을 열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에서는 SSM 확장에 어려움을 겪어온 홈플러스가 영업 확장 방편으로 인수라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7월 기업형 슈퍼마켓을 추진했지만, 중소상인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지난해 9월 이후 잠정 중단한 상태다. 대형유통업체들의 SSM 사업 확대가 골목 상권을 침해한다는 상인들의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전국 SSM 진출을 막아 달라는 상인들의 사업조정신청에 따라 영업정지권고를 받게 되면서 자사의 기업형 슈퍼마켓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 가맹점 체제 도입을 추구하게 됐다.
이 때문에 잠잠하던 상인들과 홈플러스간에 갈등이 다시 점화됐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경우 지난 8월 말 가맹점 형태로 개점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가맹점의 경우 사업조정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직영점에서 가맹점으로 영업형태를 전환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방화시위가 벌어졌다. 9월7일 새벽 60대 상인이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방화시위를 벌이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서울 남서부슈퍼마켓 조합 소속 이 모(62)씨는 이 날 새벽 0시 45분쯤 자신의 스타렉스 차량으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 정문을 막고 불을 내 중소상인들의 극한 심정을 고스란히 전했다.
이에대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방화사건이 있었지만 그 가맹점은 오픈일이 남아 있고 공사중인 상황”이라며 “우리는 주변 상인들을 대상으로 상생프렌차이즈라는 모델을 통해 가맹점주를 모집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갈등을 낮추기 위해 노력을 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한편 SSM 때문에 동네 영세 상인들의 피해가 적지 않는 가운데 그 실태가 어느 정도인지 보고서를 통해 드러나기도 해 충격을 줬다. 한 방송사가 입수한 중소상인 피해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청이 지난 6월 서울, 인천, 청주 세 지역의 동네 가게 452곳을 조사한 결과 2억 2천만 원이던 가게 당 연평균 매출액은 주변에 대형마트나 SSM이 들어온 지 3년 만에7천만 원 즉 3분의 1이나 줄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첫해 매출감소는 13%였지만 매년 갈수록 불어 회복이 어려운 상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