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양민제 기자] 지난 4일 오전 2시, 24세의 여성이 광주 동구에 위치한 자신의 원룸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일주일도 안 된 8일 오전 4시, 동구의 또 다른 원룸에서 23세의 여성이 원룸에 침입한 괴한에 의해 성폭행 당한 사건이 터졌다. 최근 원룸에 사는 여성 등을 노린 ‘원룸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경찰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대학가에 주로 위치해 대학생들을 비롯한 20~30대의 젊은 층이 혼자 사는 경우가 많은 ‘원룸’. 과연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시사신문>은 원룸에서의 실생활을 파헤쳐봤다.
지난 10일, 일명 ‘제주도 발바리’로 불리는 송 모(31) 씨가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송 씨는 지난해 7월부터 약 1년간 주택가와 원룸 등을 돌며 6차례에 걸쳐 성폭행과 추행을 일삼은 것. 특히 대학가 원룸 등지에서는 젊은 층의 여성들이 혼자 거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송 씨와 같은 범죄자에게 손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지난달 ○○포털 사이트에는 한 여대생이 쓴 글이 게재되면서 네티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게재된 글에 따르면 그가 원룸에서 거주할 당시 실제 일어났던 사건 정황이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어 비안전지대인 ‘원룸’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낸 것이었다.
손쉬운 주거침입, 강간 미수…다시 찾아오는 대범함까지
서울의 ○○여대를 갓 졸업한 A씨(24)는 재학 중 두 곳의 원룸에서 거주했었다. A씨에 의하면 그가 거주했던 두 곳의 원룸에서 모두 주거 침입을 당했고, 한 곳에서는 강간 미수 사건까지 발생했다.
스무 살이었던 A씨가 거주했던 첫 번째 원룸은 성북구에 위치한 지하 1층의 자그마한 방이었다. 당시 거주하던 집은 창문 밖이 차고였으며, 차고 문은 리모컨 키로만 열리는 자동문이었다. A씨에 의하면 매일 저녁 집주인이 차고 문을 닫았고, 그날 역시 주인이 문을 닫은 것을 확인했다는 것. 몇 시간 후, 그는 무심코 쳐다본 창문에서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주인이 차고 문을 닫기 전에 들어와 차고 문이 닫힐 때까지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놀란 A씨는 그 남자가 창문에서 사라지고 난 후 시간이 흘러도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자 그 남자가 여전히 차고 안에 있을 것으로 판단, 결국 주인집에 연락해 숨어들어온 사람을 찾아내고자 했다.
결국 주인집과 함께 밖으로 나가 차고 문 리모컨을 눌렀고, 문이 반쯤 열렸을 때 차고 안에서 갑자기 스패너 등의 연장이 날아오기 시작했다고. 정체를 들킨 그 남자는 주인집 아들의 머리를 연장으로 내리치고 그대로 도주해버렸다.
일 년 후, 그는 성동구의 한 원룸으로 이사를 갔지만 그곳에서도 끔찍한 기억을 겪었다.
원룸에서 창문을 열고 잠든 사이 괴한이 침입한 것. 곧바로 칼을 들이밀고 협박하는 괴한에 의해 강간당할 상황까지 됐지만, 범인이 옷을 벗기 위해 잠시 칼을 내려놓은 틈을 타 필사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A씨는 "도망가던 당시 복도로 뛰어나가 '살려주세요'를 잇따라 외쳤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1층까지 뛰어내려갔지만 경비원도 없는 원룸 건물에서 괴한을 피해 안전하게 대피할 곳이 전무했다"고 토로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후, A씨는 인터폰이 울려 현관 밖을 봤다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며 강간을 하려고 했던 괴한이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의 원룸을 다시 찾은 것. 다시 A씨를 찾아온 괴한은 다시 한 번 성폭행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A씨의 신고로 도착한 경찰로 인해 사라졌다.
그 후, 경찰 수사를 시작한지 며칠 후 다른 주택에 침입하여 범죄를 저지르려던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고. A씨에 따르면 범인은 불과 2번지 떨어진 곳에 거주하던 30대 남성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강간미수 사건이 벌어지기 전 몇 개월 동안 A양을 매일같이 지켜봤으며, 사건당일 A양이 전부 소등한 것을 확인하고 A씨 원룸의 방충망을 뜯고 침입한 것이었다.
경비원 없어 손쉬운 진입경로…건장한 20대 남성도 두려운 ‘원룸 생활’
원룸의 안전 문제는 비단 A씨와 같은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취재 결과 나타났다. 실제 <시사신문>에 제보해온 B(27)씨는 관악구에 소재한 한 원룸에서 약 6개월간 지내고 있는 직장인이다. 그는 “학생은 아니지만 회사가 대학가에 위치하고 있어 대학가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한 번도 편하게 지낸 적이 없다”며 원룸의 안전시설 미흡 문제를 꼽았다.
B씨는 “내가 살고 있는 원룸을 포함해 근처 대부분의 원룸에는 경비원이 없고 항시 원룸 건물의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건물 안으로의 진입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범죄자가 (범죄를) 마음먹고 원룸 건물에 들어온다면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게다가 차후의 대안책인 CCTV조차 부재한 원룸 건물이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우선 범죄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그들을 철벽 수비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서 “실제로 안전에 대한 걱정으로 현관문에만 네 개의 잠금장치를 해 놨다. 그러나 열린 창문을 통해 침입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이에 B씨는 한여름의 대낮에도 창문은 절대 열어놓지 않는다고. B씨는 또 “창문을 잠가놓는다고 해도 뜯어내버리면 그만일 만큼 (창문이) 허술하게 장치돼있어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B씨의 원룸에 대한 불안한 주거 생활은 이뿐만 아니다. 그는 “일반 아파트처럼 원룸 복도는 늦은 밤, 자동 센서로 불이 켜지는 일은 절대 없다. 날이 어둑해지면 깜깜해져버리는 원룸 내 복도는 가장 으스스한 장소”라면서 “회식 등으로 늦게 귀가하는 날 이외에는 퇴근 후 일찍 집에 들어와 웬만하면 외출을 금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언젠가 새벽에 늦게 귀가하던 날 원룸 복도에서 수상한 자를 발견했다. 노숙자로 추정이 된 사람이었는데 경비원 없는 원룸 건물에 밤늦게 들어와 복도에서 잠을 청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해가 진 이후 복도로의 출입은 삼간다"고 말했다.
또한 B씨는 ‘공동체 의식 부재’를 불안한 원룸 생활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반상회 등이 존재하지 않아 주민들 서로의 얼굴조차 모른다. 또한 시시때때로 거주자가 바뀌기 때문에 같은 원룸건물에 살면서도 각자 살뿐 공동체의식은 없다”고 전제하고 “이웃과의 소원한 관계까지 더해지면서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실제로 원룸 내에 생활하면서 복도에서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려도 서로 무섭거나 귀찮아서 나가보지 않는다는 것. 그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원룸 거주자들은 ‘나만 괜찮으면 됐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서로 함께 안전하게 지내야지’라는 공동체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안전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범죄를 맞닥뜨렸을 경우) 내가 해결하지 못하면 그대로 피해자가 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B씨가 주장한 ‘공동체 의식 부재’는 이웃주민과의 문제도 야기한다. 그는 “약 두 달 전, 옆집 거주자의 친구들이 놀러와 술을 먹고 소란을 피워도 안면도 없는 사이에 따질 수 없어 참기만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한 번은 아래층의 한 여성은 옆집 주민이 술을 먹고 자신의 현관문을 발로 차는 등 행패를 부리자 그것을 따지려다가 오히려 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공동체 의식이 없어 인근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에서 이를 제지해줄 수 있는 경비원 등이 부재한 원룸은 늘 잠재적 위험에 도사리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밖에도 소음 문제도 존재한다"면서 "옆방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까지 내 방에서 들린다. 사생활이 존재할 수없는 곳"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몇 주전 옆방 사람이 지방에 다녀오느라고 5~6일간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놓고 간 시계 알람이 매일 아침마다 시끄럽게 울려 소음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불만을 토했다.
안전 문제, 집주인의 횡포…‘점입가경’ 원룸 실태
한편 서울 광진구의 한 원룸에 거주하고 있는 C군(24)은 집주인과의 갈등에 시달리는 경우를 제보했다. 그는 “넉넉하지 못한 경제적 형편으로 저렴한 조건의 원룸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0만원이라는 싼값에 이 원룸을 선택했다”면서 “반 지하층에 위치한 방이었지만 제습기, 정수기, 침대, 에어컨까지 모두 제공된다는 옵션에 당장 계약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안락하리라 기대했던 원룸 생활의 위기는 곧 불어 닥쳤다. C군은 “거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과의 갈등이 이어졌다”면서 “설치해줬던 정수기는 이내 고장 났지만 몇 달째 수리를 해주지 않고, 반지하층이기 때문에 제습기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집주인이) 금세 뺏어갔다. 결국 집안이 온통 곰팡이로 뒤덮였다”고 토로했다.
결국 C군은 한겨울에도 곰팡이를 제거하기 위해 에어컨을 틀어 습기를 제거하곤 했다고. 그러나 이내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는 것이 C군의 설명이었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집주인이 아무렇지 않게 내 방에 출입을 했다. 주로 내가 학교 갔을 때 들어와 켜놓은 에어컨을 꺼버리거나 전기 콘센트를 다 빼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C군은 “집주인의 잦은 출입은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면서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어느새 집주인이 방에 들어와 전기 콘센트를 뽑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따졌더니 ‘집주인’이기 때문에 출입자격이 있다며 오히려 나에게 화를 냈다”고 하소연했다.
C군은 “원룸의 반 지하층은 에어컨이나 제습기 등이 꼭 필요한 곳이다. 만약 이것들이 없다면 살 수조차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은 계약 후 일방적으로 횡포를 부린다”면서 “싼값에 겨우 방을 구한 대학생들은 또 다른 방을 구할 때까지 주인의 횡포를 묵묵히 받아내야한다”고 토로했다. 또한 그는 “그래도 근처 원룸에 사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보다 더 열악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대학가에서 싼값에 원룸을 구해야하는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많지 않아 살아가는 데에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