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다가 정치권이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와 살아있는 권력의 실체를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물론 고인의 유족이 검찰에 조 청장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만큼 추석 이후와 국감에서도 더욱 불이 붙을 전망이다. 조 청장의 차명계좌 발언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공세적 자세를 취했던 한나라당은 검찰 조사 시작과 친노진영의 반격 이후 점차 날선 손톱을 슬그머니 감추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 “재수가 할 필요도 없는 일”
차명계좌와 관련한 검찰조사도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친노 진영의 반격은 거세다. 차명계좌의 허위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신유철 부장검사)는 지난 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 조현오 경찰청장을 고소고발한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와 고소ㆍ고발 대리인인 문재인 변호사를 지난 불러 조사했다.
유족 측이 지난달 18일 사자(死者)의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등 3개 혐의로 조 청장을 고소ㆍ고발한 이후 검찰이 관련자를 소환 조사한 것은 처음이다.
검찰은 이날 고소ㆍ고발의 취지와 곽 변호사 등이 파악하고 있는 사실관계 등을 확인하고 `차명계좌' 발언에 대한 고소ㆍ고발인 측의 의견도 들었다.
검찰 조사에 앞서 문 변호사는 “조 청장은 자신의 발언이 진실이라고 믿었다면 그렇게 믿을 만한 근거를 제출해야 한다”며 “제출하지 못하면 허위사실로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라고 겨냥했다.
이어 “이 사건은 조 청장의 발언 근거가 맞는 것인지 조사하면 되는 사건”이라며 “수사를 어떻게 할지는 검찰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나 법리대로 판단할 때 조 청장이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더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차명계좌'의 존재와 `박연차 게이트' 수사기록 공개에 대해서는 "차명계좌가 없다는 사실은 검찰도 알고 있는 것인데 새삼스럽게 왜 더 조사해야 하나. 과거 수사기록의 전면 재조사는 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친노진영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조 청장의 ‘차명계좌’ 발언은 정치적 목적으로 현 정권과 한나라당이 날조해서 퍼뜨린 소문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장관은 지난 11일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조 청장 퇴진과 구속수사 촉구 경남시민대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그것 말고는 다른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추측컨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현 정권과 한나라당이 당황한 나머지 일반 사람들 사이에 그런 못된 허위소문을 조직적으로 퍼뜨렸고, 이들이 퍼뜨린 헛소문이 돌고 돌아 경찰 첩보에도 올라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조 청장을 파면할 가능성이 없는 만큼 검찰이 조 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빨리 기소하고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도록 해 경찰총수로서 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비난의 날을 한껏 세웠다. 유 전 장관은 “허위사실로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고 비하하고 공격한 사람을 경찰청장으로 임명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며 대통령의 인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친노 기세에 주춤하는 한나라
민주당과 친노진영의 강력 반발과 또 자신감을 나타내면서 한나라당은 주춤하는 모습이다.
지난 14일 국회 예결특위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당시 여야는 조 경찰청장을 둘러싸고 또다시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서갑원 의원은 “조 청장은 책임회피에 급급했고, 궤변으로 국회와 국민을 우롱했다”고 주장하며 “경찰 조직을 책임질 자격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제 제 질의 과정에서 ‘조 청장은 답변하지 마라. 결산과 관련 없는 질의다’며 막말을 했다”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인지 행정부 앞잡이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은 즉각 반발했지만 민주당의 공세에 한풀 죽어있는 모양새다. 김영우 의원은 “동료 의원에게 ‘행정부 앞잡이’라는 극언을 하는 것은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깔아뭉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해걸 의원은 “이런 게 과연 동방예의지국 국회의 모습이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거들었다.
특히 특검을 주장했던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사실 홍 최고위원의 발언이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차명계좌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홍 최고위원은 지난 30일 연찬회 뒤풀이 자리에서 “만약 특검을 해서 차명계좌가 드러나면 진보세력은 향후 10년의 권력기반을 잃을 것”이라며 “안희정, 이광재, 송영길 등 민주당 차세대 주자들의 존립 근거도 사라진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친노진영은 분개했다. 유 전 장관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홍 최고위원에 대해 “워낙 하시는 말씀에 신뢰를 부여하기 어려운 분”이라며 “이제 좀 품격과 금도를 지킬 때가 됐다. 정치적으로 보면 `철없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비난했다.
차명계좌 특검 요구에 대해서도 “제가 만약 ‘홍 최고위원이 조폭들과 연계돼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있지만, 지금은 근거를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해 야당이 특검을 하자고 요구한다면 홍 최고위원이 이를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천호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도 라디오에 출연해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정권 차원의 의도를 간파해 앞장서서 동조하고 박수치고 나서는 정말 나쁜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박지원 비대위 대표도 “국민을 무시하고, 민주당을 짓밟고, 서거하신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로 우리는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다”면서 “특검이 아니라 별검을 수행해서라도 진상이 밝혀져 명예회복에 민주당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준표 “난 차명계좌 말하지 않았다”
야권의 집중 포화를 맞은 홍 최고위원은 “내가 (차명계좌가) 있다, 없다를 말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등 꼬리는 내렸다.
홍 최고위원은 지난 15일 ㅌ자신의 여의도 사무소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같이 말하며 “조 청장 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기자들이 물어보니까 ‘청와대가 차명계좌 존부에 대해 자신이 있나 보지요’라고 그 말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는 “그런데 그걸 갖다가 친노진영의 정치권 인사들이 방송에 나와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했다”며 “나는 대답을 안했다. 차명계좌가 있다고 말한 사실이 단 한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심지어 어느분은 변호사가 확인해봤는데 차명계좌가 없었다고 했는데 그 기록이 법원에 제출되지도 않았고 담당검사외에는 아무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봤다는 말인가?”라며 “왜 그런 거짓말까지 하면서 방송에 나오나? 변호인이 어떻게 수사기록을 보나? 변호인은 법원에 제출된 수사기록만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차명계좌 특검을 하면 그 존부가 바로 드러난다”며 “특검을 하면 기록 전체가 인계가 되기 때문에 바로 드러난다”고 특검을 거듭 주장했다.
홍 최고위원 뿐 아니라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차명계좌 언급을 삼가고 있다. 친노진영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반격을 하는 상황인 만큼 자칫 차명계좌가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여권에는 치명타다. 더욱이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명계좌의 실체 여부 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만큼 여야 정치권은 일단 검찰 조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 한편으론 오는 10월 경 열린 국정감사에서 또다시 이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돼, 차명계좌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