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양민제 기자] 지난 5월, 한 가정집에서 삼성전자 휴대폰에 불이 붙었다. 휴대폰 주인 이진영(28)씨는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측에서 부당한 행위를 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이 씨는 1인 시위, 편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과를 바랐지만 삼성전자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이 씨의 1인 시위가 한 달이 넘어가던 지난 9월 초, 무대응을 보였던 삼성전자가 이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개인 소비자를 고소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이는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맞고소 할 것을 결정하고 지난 9월 28일,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삼성전자 상대 맞고소’ 관련 기자회견을 가졌다. 본지는 기자 회견 등에 참석해 이 씨와 삼성 간의 법정 비화에 대해 취재해봤다.
9월 28일 오전 11시, 기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는 이진영씨를 한 달여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지난 8월, 삼성리움미술관 앞에서 1인 시위 당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이 씨는 당시 “9월 초,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법적 대응할 계획이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소송에서 청구할 액수는 단돈 ‘18원’”이라고 강조하고 “별 다른 뜻은 없는 숫자다. 단지 이번 사건을 통해 삼성에 느끼는 가치를 측정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삼성에게 ‘사과’를 바랐더니 돌아온 건 ‘고소’?

이에 대해 이 씨는 “먼저 돈을 내민 삼성전자가 ‘소비자 과실 여부를 따지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서로 언론플레이나 민형사 소송 등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합의한지 한 달 후, 갑자기 삼성전자 담당자가 ‘휴대폰 화재원인이 내부 발화는 아니다’라는 보고서가 나왔다고 주장해왔다. 그 자리에서 보고서의 겉표지만 보여주더니 이 내용에 동의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이 씨는 ‘휴대폰 폭발은 소비자 과실(외부 발화)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담당자의 사과를 받기 위해 지난 7월부터 한 달이 넘도록 1인 시위를 벌여왔다. 이 외에도 이 씨는 시민단체나 국내외 언론 등에 이를 알리거나 이건희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반면 삼성전자 측은 이 씨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8월 말, 본지와의 통화에서 삼성전자 측은 “지속적으로 1인 시위의 뜻을 밝힌 소비자(이 씨)에 대한 삼성전자 측의 공식적인 대응 방안은 딱히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9월 초, 삼성전자는 이 씨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수원남부경찰서에 고소했다. 다소 무대응을 보였던 이전의 대응방식과는 확연히 대조된다.
갑자기 대응 방안을 바꾼 이유에 대하여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 제품 자체를 의뢰했다”면서 “실험 결과 ‘발화 원인이 휴대폰 자체의 기기적인 결함이 아니다’라는 원인이 나왔기에 소비자에게 설명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에게 사고 원인을 설명하고 발화원인에 대한 향후 잘못된 제보 등을 하지 말아달라고 권고 및 부탁드렸다”며 “이에 대한 확인을 받아 사건에 대해 원만히 해결하고자 했던 것뿐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소비자는 일부 언론에 ‘제품 결함 자체로 인해 불이 났다’며 허위 내용일 수도 있는 제보를 통해 기사화했고 1인 시위 등을 통해 명예 훼손 범위의 행위를 지속했다”며 “ 더 이상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부득이 고소한 것”이라고 고소이유를 들었다.
이 씨 “나도 명예훼손 당했다” 맞고소…향후 ‘18원’짜리 민사소송도 불사
이에 이진영 씨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맞고소를 하겠다”고 대응했다. 기자 회견에 앞서 이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 전자는 이번 사건이 국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질 때에는 꿈쩍도 안 했다. 그러나 해외 언론 등에 제보를 하기 시작하니 ‘고소’라는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초 이 씨는 인천공항에서의 1인 시위도 계획했었으나 삼성측의 고소 고소에 대응하느라 늦춰졌다”고 전한 뒤 “인천공항에서의 1인 시위로 이번 사건이 외국인들에게 알려진다면 삼성전자 측은 두렵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럽게 예측하기도 했다.
또한 고소당한 경위에 대해 묻자 이 씨는 “처음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고소당했을 때는 ‘경제팀’이 담당했으나 현재 종로경찰서로 사건이 재배당되자 ‘사이버(수사)팀’으로 옮겨졌다”면서 “동일한 사건인데 담당 팀이 바뀔 수 있는가”라고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전자는 피해를 본 소비자에게 ‘외부 발화에 의한 폭발’이라고 주장 및 대응하는 것은 구색을 맞추려는 것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이 씨는 환불남, 블랙컨슈머(고의적으로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 등으로 매도당했다. 또한 삼성 측은 이에 대응한 이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기에 이 씨는 맞고소를 대응책으로 내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이진영 씨는 “삼성은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는 기업이며, 나는 정상적으로 삼성제품을 이용하다가 피해를 본 사람이다. 이에 대해 삼성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보상을 해주겠다’고 해놓고 한 달 만에 ‘제품의 결함이 아니다’(외부 발화 원인)라고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를 항의했더니 어느새 나를 ‘국민적 사기꾼’으로 만들었다”며 “약 40일간 1인 시위에 대해서 반응이 없던 삼성이 (이 사건을) 외국 언론 등에 알리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나를 고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이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국내 소비자와 외국 소비자를 차별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오늘 하려는) 삼성전자에 대한 맞고소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 이건희, 이재용, 최지성, 그 이하 실무자 등 삼성 측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맞고소 경위를 밝혔다. 또한 그는 “지난 8월부터 계획하고 있던 민사 소송도 앞으로 계획 중에 있다”면서 “‘18원’을 청구할 것이다. 이는 내가 대기업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려는 ‘블랙컨슈머’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번 사건을 통해 삼성에 대해 느끼는 가치 정도가 ‘18원’뿐이라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이날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삼성전자는 일방적으로 피해자가 먼저 합의금을 요구하였다고 주장하며, 나아가 소비자를 환불남 등으로 묘사해 악의적인 인신공격을 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에 심각한 명예훼손과 인권유린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사생활 침해를 당했다”며 “결국 정신적 육체적인 명예가 심하게 훼손돼 공개적인 사회생활마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러나 피해소비자를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은 소비자에 대한 파렴치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이 씨의 맞고소 대응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삼성전자 측의 고소도 이제 막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좀 더 지켜봐야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그는 “아직 어떠한 판결이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차후에 삼성 측의 입장이 나올 것이다. 벌써부터 미리 어떤 식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은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동자, 백혈병 관련 유족 등 삼성 관련 피해자 규탄도 이어져…
한편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는 삼성 관련 피해자들도 함께 모였다.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김승호 대표, 언론소비자주권 김성균 대표.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문계순 위원장, 백혈병 피해자 유족과 중소기업 피해자 조성구 씨 등이 바로 그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는 이 씨에 대한 고소를 즉각 취하하고 이 씨에게 사죄해야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삼성전자가 이처럼 소비자의 권리와 진정성을 외면하고 탄압으로 일관한다면 해외소비자 단체와 긴밀히 연대하여 반삼성 차원의 소비자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대표는 “이진영 씨를 격려한다”고 전제하고 “삼성은 ‘불공정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만큼 삼성의 경영 비리는 엄청나다”고 말을 시작했다. 그는 “노동자 탄압 등 삼성의 수많은 불공정 행위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삼성의 비리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일벌백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또 “삼성이 나아지면 우리 사회도 나아질 수 있다. 거대하고 막강한 힘을 가진 삼성에 감히 맞선 개인 소비자 이 씨를 격려한다”며 말을 마쳤다.
또한 김성균 언론소비자주권 대표도 동의했다. 그는 “우리 단체는 온갖 부정과 비리를 자행하고도 언론을 장악하는 기업을 지양한다. 이에 조중동 등에 광고하는 기업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삼성이 집중적으로 조중동에 광고를 공급하면서 삼성 관련 비판 기사를 막은 것으로 보았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또 “삼성은 광고를 통해 언론사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이라며 “이에 지난해 6월부터 삼성 불매운동을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제 나약한 소비자는 없다. 소비자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기업이 올바른 길을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적극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 중소기업의 대표였던 조성구 씨도 이 자리에 동참했다. 조 씨는 “좋은 제품을 만들었던 한 중소기업 대표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지난 2002년 삼성 SDS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하고 유령회사로 전락해버렸다”고 토로했다. 또한 그는 “사실 중소기업 사장으로서 삼성과 거래하면서 불공정거래 등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보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광고비 명목으로 언론을 좌지우지하고, 노조 설립을 방해하는 등 삼성의 모습을 알고 있다”며 “이처럼 삼성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쁜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조 씨는 “삼성이 달라지면 대한민국도 달라진다”고 전제하고 “삼성의 부도덕한 모습을 지적해왔지만 아직까지는 삼성의 변화가 없었다. 앞으로라도 삼성이 변화하고 달라지길 바라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