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화났다!...누구든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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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방치된 부적응자들의 ‘묻지마 살인’ 급증,...목적도 대상도 없는 충동범죄

[시사포커스=조은위 기자]“집안에서 행복한 웃음소리가 나는 게 싫었다.” 지난 11일 검거된 서울 신정동 살인사건 피의자 윤 모(33)씨의 살인 동기였다. 최근 이처럼 뚜렷한 동기도 없이 사회 불만이나 홧김에 타인을 살해하는 이른바 ‘묻지마 살인’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경찰청의 ‘전국 살인 피의자 현황’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로 꼽히는 ‘우발적 또는 현실불만으로 인한 살인’은 2007년 366건,2008년 454건, 지난해 572건으로 2년 새 56%나 폭증했다. 올해도 4월 기준 165건으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본지는 최근 날로 증가하고 있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저질러지는 ‘묻지마 범죄’에 대한 실태와 원인을 진단해 봤다.

▲ 신정동 옥탑방 살인사건 현장검증에서 재연하고 있는 피의자 윤모씨
지난 8월 7일, 단란한 저녁식사 준비를 하던 옥탑방 가정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피의자 윤 모(33)씨는 사건 발생 36일 만에 경찰에 의해 검거 됐다.
피의자 윤 씨는 사건 당일 옥탑방에 침입해 둔기로 부인 장 모(42)씨에게 상해를 입히고, 이를 말리던 남편 임모(42)씨의 옆구리를 흉기로 찔러 무참하게 살해했다. 그러나 피의자 윤 씨가 잡힌 뒤에 한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윤 씨는 집안에서 행복한 웃음소리가 나는 게 싫어서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자백했다.
지금까지 일어난 살인사건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채무관계에 따른 갈등, 그리고 남녀 간의 치정관계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였다.
그러나 최근 윤 씨의 범행처럼 일반적인 살인 동기와는 상관없이 전혀 일면식도 없는 남을 상대로 ‘묻지마 범죄’가 만연해 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앞서 지난 7월에 발생한 ‘부산 도끼사건’도 윤 씨의 살인 사건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부산 도끼사건’은 지난 7월 30일 오후 조 모(41)씨가 부산 사상구에 있는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14세의 여중생을 성폭행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오빠와 아버지 등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 참혹한 사건이다.
범인은 일가족을 2시간가량 감금하고 일방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붙잡힌 조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중생의 고모인 A씨와 동거를 했던 내연관계로 드러나 시민들을 경악케 했다.
피의자 조 씨는 진술에서 내연녀인 A씨를 찾던 중이었으며 가족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의자 윤 씨와 조 씨처럼 우발적이며 순간적인 홧김에 저지르게 되는 범죄는 뚜렷한 목적이 없기 때문에 범행을 예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이런 ‘묻지마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피해가 크고 참혹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지난 23일 부산에서 30대 정신병력 노숙인이 80대 노파를 살해한 사건은 우리사회가 더 이상 ‘충동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취약계층일수록 충동범죄율 높아

‘신정동 옥탑방 살인사건’을 저지른 윤 씨는 장기간 복역 출소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윤 씨와 같이 장기 복역 출소자나 정신병력자, 노숙인 등 사회 취약계층의 삐뚤어진 충동이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들 취약계층 범죄 중 살인 등의 강력범죄는 대부분 ‘충동적’ 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사회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순식간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충동적인 ‘묻지마 범죄’는 윤 씨 같은 장기 복역 출소자 이외에도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연결된다.
지난 7월 23일 사하구 감천 2동 태극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피의자 윤 모(30)씨는 어머니를 폭행하려는 등 이상행동으로 2개월간 정신병원 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다. 또한 같은 날 인근 다대포 해수욕장 낙조분수대에서 공공근로 중인 박 모(55)씨에게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두른 오 모(52)씨도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이에 앞서 2008년 8월 부산 동구 초량동의 한 주택에서 이 모(47)씨가 옆에서 잠자던 어머니 박 모(85)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씨는 잠을 자다 깬 뒤 갑자기 어머니의 목을 조르다 부엌에 있던 흉기를 갖고 와 어머니를 두 차례 찔렀다. 그 당시 이 씨는 “내가 출세하는데 어머니가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10여 년 전부터 과대망상과 정신분열증을 앓아왔으며 어머니를 살해하기 앞서 1998년에는 자신의 2살짜리 아들도 살해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밖에도 같은 강원 양구군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30대 남성은 “세상이 싫어 아무나 죽이고 싶다”며 둔치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여고생을 살해해 충격을 줬다.

목적도 대상도 없는 ‘충동범죄’

늘어나는 취약계층 충동범죄의 가장 큰 위험은 누구나 범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3일 양 모(89) 할머니를 흉기로 찌른 윤 씨는 경찰 조사 결과 “찌르고 싶은 충동 때문에 그랬다”고 밝혔다. 만약 윤 씨 앞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더라도 윤 씨는 무차별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윤 씨가 있던 곳이 산복마을 정자가 아니라 행인으로 붐비는 공공장소였다면 상황은 훨씬 심각해졌을 수 있다.
공공근로 여성을 살해하려 했던 오 씨도 미리 흉기를 구입해 들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든 피해자가 생길 수 있었지만 그는 “누군가를 죽이고 교도소에 가겠다”며 버젓이 거리를 활보했다. 오 씨가 박 씨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했던 말은 “뭐하는 거야, 죽을래”였다. 범죄와 피해자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잠재된 불만이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되는 일명 ‘묻지마 범죄’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이며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범죄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전과자· 정신장애 등 취약계층 사후관리 필요

윤 씨는 장기간 복역을 하고 세상에 나왔지만 어떠한 사회 적응 프로그램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양천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윤 씨는 출소 이후 상담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고 취업을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윤 씨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홀로서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윤 씨가 자신의 처지와는 너무나 상반된 옥탑방의 단란한 가정의 웃음소리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윤 씨가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만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더라면 이번 살해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필요성이 제기 되고 있다.
윤 씨는 출소하기 직전 ㅅ교도소에서 3일 동안 만기교육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기간 동안 주민등록번호 말소 여부를 상담하고 국민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는지, 취업과 관련해 고용지원센터 이용 방법을 알려주는 실무적인 조치들이 대부분이었다.
윤 씨가 교도소 안에서 인성교육을 받고 단순 작업에도 참여했다지만 실재 윤 씨가 교도소를 나와 사회에서 생활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윤 씨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먹고 사는’ 문제였다고 한다. 윤 씨는 경찰 조사에서 “취직이 되지 않아 살기가 어려웠다”고 진술했다.
출소 이후 윤 씨는 택배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전과자라는 사실 때문에 취직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과’기록이 있어도 할 수 있었던 건설 현장에 나가 하루하루 일당을 받는 철거 작업을 나가게 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 거리를 배회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사건 당일도 일을 하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다 막걸리를 마신 이후 주택가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나는 세상을 어렵게 살고 방황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게 산다”고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윤 씨가 장기간 교도소 생활을 하다 보니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충동범죄가 예전에는 극소수로 일어났다면 요즘에는 일반화 되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충동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전과자나 정신장애가 있는 범죄자들을 사회에서 사후관리할 법적 제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다음 이들에 대한 책임이 종결되는 것으로 생각해 사후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며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위한 특별한 교화 프로그램이 마땅히 없다는 것 또한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이러한 충동적인 범죄가 우리사회의 가족해체문제와도 직결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예전에는 대가족이 생활하면서 서로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가정보다 결손가정이 많기 때문에 1인 1가구 체제도 많아 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결손가정의 출소자 같은 경우 출소한 뒤 숙식부터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됨으로 해서 사회 적응이 더뎌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교수는 전과기록이 있거나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구금을 통해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법무부에서는 ‘보호감호’를 추진하고 있지만 인간은 어차피 사회적 기능을 배워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보호감호는 오히려 이들이 사회로 다시 나올 수 없게 만들 수 있으며, 국가의 부담이 더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전과자이면서 정신장애가 있는 범죄자 같은 경우 구금을 통해서 증세가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교수는 현재 보안 위주의 현행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인권’이라는 부분만 강조되어 출소 이후 범죄자의 개인정보에 대한 공개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며 “출소자 중 정신적 불안이나 문제가 있는 범죄자 같이 출소 이후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주의가 필요한 출소자 같은 경우에는 전자 팔찌나 신상공개를 통한 검찰의 관리 의무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전과자에 대한 교화프로그램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충원하는 것도 보안되어야 충동범죄에 대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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