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필사적인 정치적 대결을 펼쳐왔던 ‘이명박-박근혜’ 사이에서 최근에 무슨 있었을까? 18대 총선 공천, 친박 복당문제, 법안처리 문제를 비롯해 ‘세종시’로 인한 대립까지 양측은 줄곧 평행선만을 그어왔다. 양측의 갈등을 ‘두나라당’ ‘여당내 야당’이라는 상황 표현은 무리도 아니었다. 급기야 차기 대선과정에서 양측은 결국 결별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8.21청와대 회동’ 기점으로 양측간 분위기는 틀려졌다. 특히 박 전 대표는 당내 친이계 의원들과 연일 회동을 갖는가 하면 대국민 스킨쉽을 늘려가는 등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라고 까지 말한다. 물론 이를 두고 차기 대선을 향한 대권행보로 해석하고 있지만 어찌됐건 박 전 대표의 급작스런 변화에 대한 정치권은 놀라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 1일 청와대 만찬에서 박 전 대표의 건배사다. 박 전 대표는 “길게 말씀 안 드려도 우리 마음을 서로 잘 아니까 짧게 하겠다”라며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성공과 18대 국회의 성공을 위해 이 뜻을 잔에 담아 건배를 제의하겠다”고 건배사를 외쳤다. 그간 양측간 극한의 대립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지난 대선 경선 직후 벌어졌던 당내 분열양상이 봉합되는 듯한 모습은 분명하다. 비밀리에 추진된 ‘8.21청와대 회동’을 시작으로 특히 박 전 대표가 뚜렷한 변화의 모습에 정치권 안팎으로 각종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실정.
그러나 정치권 내부에서는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관측이 많다. 친이-친박계 모두 화해무드가 무르익었다는 말로 애써 감정을 감추고 있지만 다시한번 양진영간 대결 전선이 마련될 경우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40일 만에 재회한 ‘이명박-박근혜’
朴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건배”
8.21회동 직후 변화한 박 전 대표의 모습에 ‘이명박-박근혜’ 밀약설이 제기된 바 있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청문회에서 낙마하면서 또다시 ‘박근혜 총리론’이 거론됐고, ‘박근혜 특사론’ 등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차기 대권주자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추측과 동시에 이 대통령이 차기 대권 경선에서의 ‘중립’ 약속 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기도 했다. 이를 두고 친박계에서는 ‘어불성설’이라며 밀약설을 부인하고는 있지만 정치권 안팎으로 쏟아지는 의혹의 시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일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의원들간 만찬 자리는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한 자리에서다. 2008년 18대 총선 직후인 4월 22일 당선자 환영행사를 연 이래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청와대의 초청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최근 당청 소통이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의원 모두가 함께 자리를 해서인지 2시간 15분 동안 진행된 만찬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박 전 대표가 앉도록 배려했다. 특히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만남은 8월 21일 청와대 회동 이후 40여일 만이다. 박 전 대표는 2008년 당선자 환영행사 때는 ‘공천파동’을 이유로 불참했다. 이날 헤드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정옥임 원내 대변인이 ‘마주 보는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뜻이라며 ‘마당발’이라는 건배 구호를 외치자 두 사람은 웃으며 막걸리 잔을 마주 댔다. 이 대통령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설명하자 박 전 대표는 “참 보람 되시겠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사회자인 김학용 의원이 즉석에서 건배사를 요청하자 “길게 말씀 안 드리고 우리 마음을 서로 아니까 짧게 이야기하겠다”며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성공과 18대 국회의 성공을 위하여 건배하겠다. 이 뜻을 잔에 담아 건배!”라고까지 했다.ㅣ
◆이명박-박근혜, 관계회복 본궤도 올랐나
이날 박 전 대표의 건배사는 당 소속의원들이 보는 공개석상 앞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는 8.21 청와대 회동 이후 이 대통령에 싸였던 앙금이 상당부분 해소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킨다.
이 대통령은 3년여 전 이미 박 전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천명한 바 있다. 박 전 대표는 2007년 경선 패배시 결과에 승복한 뒤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 대통령에 대한 지원유세에 나섰고, 이 후보는 박 전 대표를 ‘정치적 파트너 및 소중한 동반자’로 규정하며 화답했다.
그렇지만 친박(친박근혜)계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왔다. 대선 승리 4개월여만에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 공천 당시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탈락하자 박 전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직접 이 대통령을 겨냥해 칼날을 세웠다. 이후 이들의 관계는 줄곧 평행선을 그어왔다. 그러면서 당내는 ‘화합’이 크게 대두됐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친이-친박계는 물밑 접촉을 갖고 화합분위기 조성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친이-친박이 정치현안을 놓고 대립하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갔다.
최대 위기는 세종시 문제였다. ‘분당’, ‘결별’이라는 용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간 관계는 깨지기 일보직전의 살얼음판이었다.
그러나 지난 6월29일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본회의 부결과 6.2 지방선거 대패 등을 계기로 당 안팎에서는 `이명박-박근혜간 화합'을 거세게 요구했고, 이어 성사된 8.21 회동에서 두 사람은 "역대 가장 성공한 회동"이라는 평과 함께 관계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했었다.
이런 흐름에서 박 전 대표가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 그것도 공개석상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공개 천명함으로써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관계회복의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와 동시에 신중론도 많다.
◆한계 부딪친 친이계, 朴 미래권력으로 ‘인정’?
하지만 이러한 배경을 두고 정치권 안팎으로 각종 설들이 나돌고 있다. 우선 박 전 대표로의 ‘힘쏠림’ 현상을 주목해 볼만하다. 지난 1일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청와대 만찬에서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왼편에 자리하게 했다.
통상 당 대표가 대통령의 왼편에 앉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날은 안상수 대표가 우측에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의 왼편에 자리 한 것. 이는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아서면서 여권 내 힘의 균형이 친이에서 친박계로 쏠리고 있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나 친이계가 현재로선 지지율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했다가 야권 대선주자로 나선 민주당 손학규 전 고문이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야권 대선주자 입지를 공고히 한 점에서 여권의 수도권 지역 의원들은 긴장할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을 기반하고 있는 손 대표가 이 대통령의 정치적 지기기반이었던 수도권 표심을 갈라놓을 경우 차기 대선에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더욱이 김문수 경기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을 대선주자로 점찍고는 있지만 현재로선 ‘박근혜 대항마’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상태에서, 앞으로도 이를 장담할 수도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때문에 친이계 내부에선 ‘미래권력은 박근혜’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추측이다. 최근 친이계 의원들이 잇따라 박 전 대표와 회동을 갖는 것도 이같은 맥락 아니냐는 것이다.
◆대권주자 朴, 당내 화합은 ‘선택 아닌 필수’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 입장으로선 당내 ‘화합’을 필수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산이다.
첨예하게 맞붙던 세종시 문제로 당내 화합 필요성이 절실히 대두되면서 당시 화합과 포용의 한계를 드러낸 박 전 대표의 이미지에 적잖이 상처가 났다. 세종시 논란 당시 박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도 일부 이를 방증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경선에서 수도권 표심으로 확보하지 못해 본선티켓을 따내지 못한 뼈아픈 경험을 되짚어보면 수도권 지역에 포진된 ‘친이계 끌어안기’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때문에 이 대통령과의 화해와 친이계 포용의 모습은 대선주자의 ‘액션’일 뿐이라는 것, 즉 대권행보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즉 친이계의 '박근혜 비토론'을 잠재우고 대신 포용·소통의 리더십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아직 완전한 화합을 말하기에는 어려운 상태아니냐”며 “지난 총선 공천과정에서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회동을 가진 바 있지만 결국 중요한 시점에서 그 약속이 깨지지 않았지 않는가”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 전 대표의 ‘친이 끌어안기’에 친이계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친이계 의원들은 “박 전 대표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큰 꿈이 이뤄지길 기원한다”는 등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박 전 대표가 거침없이 친이계 만나기에 나서면서 정가에서는 ‘대세론’에 시동을 건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차기 대선후보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는 있는 이 때 친이계 포용을 통해 대세론을 확산시키려는 의지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친박계는 이를 경계하고 있다. 친박계는 “세종시 문제가 일단락되는 등 여건이 좋아진 만큼 이전에 약속이 됐거나 만남을 희망하는 의원들을 만나는 것”이라며 “차기 대권과 연관지어 확대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지뢰밭 수두룩...발화점은 어디?
개헌 군불지피는 친이,,,과연 박근혜는
3년여만에 화합무드가 조성됐지만 차기 대선까지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당장 엄청난 인화성을 지닌 개헌 논의가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이계는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개헌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와는 달리 박 전 대표는 개헌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다만 박 전 대표가 4년 대통령 중임제를 찬성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간 친이계측에서 종종 ‘개헌카드’를 꺼내들었다. 여기에 현 정부 실세로 꼽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은 지난 6일 관훈토론에서 “현 체제로는 국민통합이 어렵다는 국민적 판단이 있고, 2012년 4월에는 19대 총선, 12월 대선이 있어서 내년이 되면 모든 의원이 개헌을 논의할 여유가 없게 된다”며 올해가 개헌의 적기임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개헌’ 불씨를 지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개헌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섰던 시절, 당내 경선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했다”며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을 위해 정치권력의 분산이 필요하다"고 권력분점 개헌을 주장했다. 이 대통령의 의중까지 언급한 이 장관의 발언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 대통령도 지난 8.15경축사에서 국회에 개헌 논의를 주문하기도 하는 등 이 대통령의 ‘개헌’ 의지는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러한 개헌 주장에 대해 친박계는 “여권 주류가 권력분점을 통해 차기 대통령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며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정략적 개헌 가능성을 우려하는 박 전 대표가 개헌 논의에 응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게 친박 인사들의 시각이다.
이러한 개헌에 대한 입장차로 결국 어느 시점에서 양측간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관측이다. 물론 개헌 뿐 아니더라도 차기 대권경선 경쟁을 놓고 어떤 형태로든 ‘이명박-박근혜’ 양측간 균열이 생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박 전 대표를 향한 이 대통령과 친이계의 최근의 움직임 이면에는 이러한 개헌을 통해 권력을 이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즉 권력분점을 통해 ‘박근혜는 대통령’, ‘친이는 총리’를 만들려는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친이계가 요구하는 개헌을 박 전 대표가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또한 개헌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 일단 권력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헌의 성공 여부는 현 권력과 미래 권력인 잠룡들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미래권력은 복잡한 각종 경쟁구도에 개헌논의까지 더해지면서 ‘게임의 룰’이 요동치는 것을 반기기 어렵다.
박 전 대표가 ‘4년 중임제’ 개헌에 쏠려있는 가운데 만약 이 대통령도 집권 후반기 ‘개헌카드’를 꺼내들 경우 어렵사리 조성된 ‘화합’은 무산될 수 없다는 관측이다. 게다가 역풍인해 양측간 완전한 분열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권 한 관계자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개헌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만큼 개헌문제는 완전한 분열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