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이 시위해산용으로 지향성음향장비로 알려진 ‘음향대포’를 도입한다고 해 한동안 논란거리가 됐다.
지난달 28일 경찰이 입법예고한 ‘경찰 장비의 사용 기준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에는 ‘음향대포’로 불리는 지향성 음향장비가 진압 장비에 추가된다는 것이 발단이 됐다. 이어 경찰은 이번 장비 도입을 G20 정상회담 반대시위나 인질범 체포, 대테러작전 등에 쓰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1일 경찰은 서울기동본부에서 안정성에 대한 불신을 종식시키기 위해 취재진을 모아놓고 음향대포 시연회를 열고 이 장비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시연이 거듭될수록 일부 시민들은 “거듭된 소음에 몸이 두들겨 맞은 것 마냥 노곤해지고 불쾌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렸다”고 전했다.
또한 방송을 멈추면 귀가 먹먹한 증상이 바로 멈춘다는 경찰 보도자료와는 달리 귓가를 울리는 소음은 멈출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경찰 관계자는 “오케스트라 맨 앞좌석에 앉아 있는 정도의 소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녹색 귀마개를 낀 경찰이 시연이 끝나고 “아무렇지도 않죠?”라고 되묻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음향대포, 살인적인 음압…美에선 테러리스트 제압 무기"
이날 시연된 음향대포는 가로세로 91x91㎝인 둥그런 방송 촬영용 반사판처럼 생겼지만 최고 150㏈의 소음을 3㎞까지 전달할 수 있는 위험한 장비다.
이날 경찰 관계자는 음향대포의 위해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위해가 없으면 해산하겠냐"며 "힘들면 현장에서 피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즉답을 피했다.
이번 논란에 앞서 ‘음향대포’는 우리나라에서는 헐리우드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친숙하다. 영화에서 미군이 동원한 음향대포는 엄청난 고음을 집중시켜 사방팔방 날뛰던 헐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비 살상용이면서도 상대를 완벽히 제압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음향무기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무기 가운데 하나다.
폭동진압이나 대 테러용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통신용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미국 ATC 사(社)가 개발에 성공해 분쟁지역 등을 중심으로 각종 음향무기 수출에 나서고 있다.
음향대포는 지난 2005년 11월5일 소말리아 해역에서 발생한 무장 해적의 크루즈선 납치시도 때 해적들을 격퇴하는데 일등공신이 돼 일약 유명세를 탔다.
당시 크루즈선에 탑재된 음향대포는 근접하는 해적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해 신뢰도를 인정받았다.
경찰이 이번에 도입을 추진하려고 했던 음향대포는 레이저 빔처럼 좁은 영역을 향해 소리를 발사하고 고음으로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152dB까지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음향대호 안전성 검사를 했다는 것에 의로 받은 전문가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서 논란은 더 커졌다.
지난 8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음향대포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성굉모 서울대학교 뉴미디어통신공동 연구소 소장은 조 청장이 말한 것처럼 음향대포의 안전성을 검사한 게 아니라 "두 종류의 음향장비 성능을 비교 분석하는 측정 검사를 했다"고 밝혔다.
또한 성 소장은 “그동안 미국에서 생산해 여러 곳에서 쓰였지만 피해 규모가 어떠했다는 내용의 자료는 보지 못했다”며 “이 장비에 대한 안전성 검사가 필요 없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적을 대상으로 한 무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 소장은 “테러리스트나 소말리아 해적 등 적을 대상으로 발사하면서 적의 안전성까지 생각 하겠는가”라며 “퇴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 피해와 관련된 자료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전성도 점검되지 않은 ‘무기’ 도입하려는 경찰
연일 논란이 됐던 음향대포 논란은 결국 안전성 문제로 청와대가 유보하기로 했다.
또한 조현오 경찰청장은 안전성 논란을 빚고 있는 음향대포를 이번 G20정상회의 기간에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지난 11일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조 청장은 이날 오전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G20 종합치안대책' 브리핑을 열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음향대포 사용을 보류하겠다"면서 "음향대포 대신 물포를 사용할 예정이며 물포로 진압이 안 될 경우에는 경찰이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동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음향대포 논란에 앞서 2008년 경찰의 물포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인체에 심각한 해를 입힐 수 있다”고 제한적 사용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조 청장은 지난 3월 일선 경찰관 강연에서 “물포 맞고 죽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여름철에는 물포에 최루액을 섞어서 쏘면 겨울철 못지 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등의 물포 예찬론을 개진하며 입장을 달리했다.
물포에 이은 이번 음향대포 논란으로 경찰의 의식이 어떤지를 미뤄 짐작해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천안함 유족 비하 발언으로 사퇴압박을 받다 우여곡절 끝에 경찰총수 자리에 오른 조현오 경찰청장이기에 이번 음향대포 도입은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다.
물론 국가적 중대사를 앞두고 집회·시위와 효과적인 경비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경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안전성도 점검되지 않은 무기를 도입한다는 것은 무리수임에 틀림없다.
경찰이 지향성 음향장비 도입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탓에, 인권위는 물론이고 관련 전문가들도 안전성을 검증할 시간과 자료가 부족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장의 피해보다 후유증 때문에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교수는 “국제적인 과학잡지 <네이처>에 최근 발표된 논문을 보면, 해안으로 뛰쳐나와 자살하는 고래 떼를 분석해보니 모두 청각이 파괴돼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이는 잠수함을 찾아내려고 선박들이 쏘아대는 150데시벨의 음파를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