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너무 다른 ‘재래시장vs백화점’
‘한 지붕 두 가족’, 너무 다른 ‘재래시장vs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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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VIP 1년에 ‘1억’ 소비 vs 재래시장 하루에 ‘1만원’ 지출도 힘들어

[시사포커스=양민제 기자] 지난 달, 비슷한 시기에 ‘4억 명품녀’와 ‘용광로 청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4억 명품녀’는 한 케이블방송에 출연한 김 모(24)씨가 출연당시 총 4억 원어치의 의상을 입고 나왔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됐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용광로 위에서 쇳물을 녹이는 직업을 가졌던 김 모(29)씨가 발을 헛디뎌 용광로에 빠져 숨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용광로 청년’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당시 일부 네티즌 등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두 20대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된다”며 안타까움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 사례로 끝날 해프닝만은 아니다. 현재 사회 전반적으로도 국내 ‘소비의 양극화’ 현상은 수년째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독했던 경제 불황에도 백화점의 명품 매장에서는 지속적인 판매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에 반해, 경제 불황이 풀려가는 현재까지도 재래시장 등을 찾는 서민들의 지갑은 열릴 줄 모르고 있어, ‘소비의 양극화’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에 본지는 계속되는 ‘소비의 양극화’의 원인과 실태 등에 대해 알아봤다.

 

본지 기자는 지난 12일(화)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재래시장과 백화점을 각각 들러 둘러봤다. 백화점 건물과 재래시장으로의 입구가 맞닿아 있을 만큼, 그 둘의 물리적 거리는 매우 가까웠으나 두 곳으로부터 오는 이질감은 매우 컸다.

‘100만원’짜리 가방이 ‘지영이백’…명품 구매자 연령층 낮아져

“프랑스에서 이번에 새로 출시한 핸드백이에요. 원래 시중판매는 3개월 뒤지만, 이번에 특별히 아시아 중 한국에 먼저 몇 개만 들어온 겁니다. 지금 사시면 3개월 동안 아시아에서 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극소수의 분이 되시는 거죠. 가격은 400만 원대입니다.”

지난 봄,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A 백화점의 명품 매장 직원이 손님에게 여성용 가방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이곳은 매장 크기에 비해 찾는 손님이 많아 확장공사를 통해 1,2층을 선점한 브랜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장 밖으로는 매장에 들어서기 위해 긴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모습이 늘 펼쳐져있다.

한동안 국내에서는 이 브랜드의 특정 가방이 ‘지영이백’으로 불린 적이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다보니, 길거리를 지나가다 3초에 한 번씩 눈에 보이는 백이라 하여 ‘3초백’, 혹은 그만큼 흔하다는 뜻으로, 아주 흔한 여자이름의 ‘지영’이란 이름을 빗댄 ‘지영이백’으로 불린 것이었다. ‘지영이백’으로 불린 이 가방의 가격은 100만 원대의 낮지 않은 가격대임에도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많은 구매를 자랑한 물품이었다.

이 브랜드에 대한 구매력과 관심도는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 변하지 않았다. 기자가 지난 12일, A 백화점을 찾아 이 브랜드 매장에 들어서려고 하자 이미 3,4그룹의 사람들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약 10분쯤 대기해야했다. 이후 매장에 들어서자 고객 한 그룹당 직원이 하나씩 배정돼 자세히 설명해주거나 쇼핑을 돕는 모습이었다. 매장 안의 대부분은 젊은 층이었고, 50대 부부 등이 간혹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날 기자가 들린 여섯 곳의 명품 매장 등에서도 발견됐다. 실제로 명품 매장 관계자 P씨는 기자에게 “다양한 나이대의 고객들이 매장을 찾긴 하나, 갈수록 구매자의 연령층이 어려지고 있다”면서 “주로 여성고객이 많으며 최근에는 남자친구나 남편이 결제하고 (여성들이) 선물을 받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 백화점 1층에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모여 있다.
한편 이날 백화점 내에는 명품 매장 외에도 많은 고객들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평일 오후 시간대였음에도 일부 매장은 한참을 기다려야 물건을 계산하거나 안내를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백화점에서 구매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A 백화점을 비롯한 많은 백화점들은 구매가 많은 ‘VIP고객’을 따로 지정해두곤 한다. 이와 관련 A 백화점 마케팅 부서의 한 관계자는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VIP 고객들을 구매액에 따라 등급을 나눠 각각에 대해 대우를 달리 한다”며 “현재 우리 백화점은 크게 트리니티(trinity), 퍼스트프라임(first prime), 퍼스트(first) 등 VIP 등급을 나누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다수의 백화점들이 VIP고객을 세분화해 관리하는 것은 이들이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기준 금액을 넘는 고객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
또한 그는 “최고 등급은 상위 999등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들은 ‘전국 A백화점 발렛파킹 종일 무료’가 가능하고, 이 등급을 위한 라운지가 따로 마련된다. 또한 항시 A백화점 모든 물품에 대한 5% 할인이 가능하고 여타 이벤트 등도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상위 1위로 기록된 사람의 전년도 구매액을 물어보자 “구체적으로 설명 드릴 수 없다”면서 “다만 최고등급으로 들어오기 위한 최소 구매액은 7천400만원”이라고 말해 그 등급에서 1위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억대의 금액을 썼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만원짜리 티셔츠’도 팔기 힘든 재래시장…외국인들의 ‘구매’ 아닌 ‘구경’ 뿐

‘소비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기존의 일부언론에 따르면, 재래시장은 백화점과는 달리 간간히 문을 닫은 가게들이 존재하거나, 손님은 전혀 없는 다소 ‘흉물스런(?)’ 장소였다. 또한 손님의 자취는 찾기 힘들고 몇몇 안 되는 상인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실제로 12일 기자가 재래시장을 찾았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장을 찾은 모습이었다. 시장에 들어서는 입구 부근 등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지나가기조차 힘들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 등을 통해 기자는 기존 언론 등에서 쏟아냈던 ‘소비 양극화’ 양상이 줄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시장을 두어 시간쯤 둘러보자 곳곳에서 상인들의 토로가 이어졌다.

▲ 재래시장의 일부 가게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 상인들만 앉아 있다.
ㄷ남성복 매장 주인은 “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다”고 전제하고 “그렇기 때문에 한복을 입혀놓은 장난감 매장이나 버섯, 인삼 등 특산품 매장에는 ‘구매자’가 아닌 외국인 ‘구경꾼’들이 찾는 편이며, 나 같은 (국내 소비자 대상의 물품을 취급하는) 매장은 하루벌이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는 건너편 ㅇ상가의 잠옷 매장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동안 한류로 일본 관광객이 많이 왔었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시들하다. 요즘은 중국 사람들이 찾곤 하는데 물품을 사는 것보다 구경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 시장에서는 무조건 깎아야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무조건 흥정부터 하는 경우도 대다수”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그나마 그들에게라도 팔기 위해 김 등 특산물을 파는 매장은 직접 거리로 김을 들고 나와 중국어 등으로 그들에게 직접 판매를 요청하기까지 한다”며 “(시장 소비가) 정말 많이 힘들다”고 호소했다.

▲ 재래시장에는 ‘1,000원’이라는 특가 가판대 등에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실제로 기자가 시장을 취재하는 동안 ‘1만 원 이상의’ 옷가게에는 손님이 매우 드물었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집에만 외국인 몇몇이 구경하고 있었다. 또한 취재 도중, 이례적으로 한 가판대에서 구름떼 같이 모여든 사람들이 옷을 사려는 모습을 보고 들어서봤더니 ‘오늘 하루 1,000원’이라는 팻말을 세워두고 모든 옷을 1천원에 판매하는 소위 ‘특가 상품’ 매장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여파는 시장 내 식당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기자가 한 식당가 골목으로 들어서자 그나마 외국인 등의 일부 사람들도 찾기 힘들었다. 그 중 한 식당에 들어선 기자가 식당 직원에게 시장경기를 묻자 “보통 점심때는 사람들이 찾아오긴 하나 일반 시민들보다는 여기서 장사를 하는 이들에게 배달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차피 점심이 하루 수입의 대부분이니 늦은 오후인 3~4시까지만 장사를 하고 그 이후는 문을 닫는 게 이득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과시 소비’가 만연한 現 경제사회…소비행동 가치를 높이는 자세 필요

취재 결과 ‘4억 명품녀’와 ‘용광로 청년’이 그러했듯이, 백화점과 재래시장도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물품을 쉽게 사는 계층과 만 원짜리의 물품도 부담을 느끼는 계층이 불과 100m 안에 함께 존재했다. 이러한 ‘소비의 양극화’에 대해 충북대 소비자학과 이희숙 교수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소득의 양극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제하고 “‘베블렌’이라는 학자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富)를 과시할 수 있는 방법은 ‘과시소비’이기 때문에 소득수준에 따른 소비의 양극화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결국 고소득계층과 저소득계층 간의 차이로부터 비롯된 소비행태는 단연 비교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고소득층은 외제차, 해외골프여행, 명품소비에 대해 경제적 부담이 전혀 없지만 저소득층은 기초적 생활영위조차 어려운 셈. 즉 ‘소득’이라는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에 ‘소비’의 결과점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교수는 재래시장에서의 소비가 백화점의 그것과 극명히 비교되면서 감소 추세를 보이는 원인에 대해 “쇼핑도 하나의 레저처럼 쾌적성이 요구되고 있는 경향”이라고 말하고 “주차 공간, 한곳에서의 쇼핑가능성, AS 등에 대한 소비자 요구를 재래시장이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백화점에서의 소비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교수는 ‘소비의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국내명품소비 행태에 대한 지적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소위 명품들은 대부분 수입품이기 때문에 로열티와 세금 등이 부가되고, 대부분 백화점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고가의 유통비용이 부가된다”면서 “그로인해 품질보다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부족하고, 오히려 ‘베블렌 효과’와 같이 가격이 높을수록 이를 소비하는 소비자만족도 또한 높아진다는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명품은 그 제품의 품질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경제적 실체를 교육시키는 것이 ‘과도한 명품 소비 문제’에 대한 대안 중 하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앞으로 ‘소비의 양극화’ 추세를 줄이기 위해서는 건전한 소비문화를 비롯해 기부문화 정착, 나아가 이웃을 배려하는 소비행동의 가치가 우리나라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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