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양민제 기자] 작년 한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신종플루’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신종플루 유행이 가장 왕성했던 10~11월의 시기가 돌아오면서 건조하고 찬 날씨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 이와 더불어 타미플루 등에 대한 내성을 지닌 ‘변종 바이러스’도 발생하면서 신종플루 보다 더 독하고 전염성이 빠르다는 일명 ‘킬러플루’, ‘슈퍼플루’ 등에 대한 우려도 관측되고 있다.
약에 대한 내성이 가져오는 문제는 ‘신종플루’만이 아니다. 최근 의료당국을 긴장케 만든 장본인인 ‘슈퍼 박테리아’가 바로 그것. 슈퍼박테리아는 항생제에 대한 강력한 내성이 생겨 말 그대로 어떤 약을 먹어도 치료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균’이다. 슈퍼박테리아 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항생제 남용’이 지적된 가운데, 한 의료관계자가 ‘국내 항생제 오남용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슈퍼박테리아 등의 질병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내에 만연한 ‘항생제 남용 실태’에 대해 알아보았다.

슈퍼 박테리아, ‘항생제 천국’에 상륙
슈퍼 박테리아는 지난해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로 급속히 퍼져나가 동남아시아, 유럽 등지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이웃나라 일본에 상륙해 15명을 사망에 이르게 해 국내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로 감염된 상처나 의료행위 등으로 전염될 수 있는 ‘슈퍼 박테리아’는 항생제에 대한 높은 내성률이 발생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슈퍼 박테리아’로 인한 감염사망자 또한 전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다. 처음 발견된 인도 등지에서는 이미 180여명이 감염됐던 사실이 알려졌고, 호주나 미국, 스웨덴 등 복지국가 등에서도 감염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또 현재까지 유럽에서만 150여 명이 슈퍼 박테리아로 인해 숨졌고, 일본에서도 19명이 사망했다.
이는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은 지난 8일 “최근 일본 사망자에게서 검출된 ‘아시네토박터균’이라는 슈퍼 박테리아가 국내에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며 검출되고 있다”고 전한 것. 이어 손 의원은 “현재까지 국내에서 슈퍼박테리아로 사망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공식 발표됐지만, 폐결핵으로 사망한 매년 2000여 명의 사망자 중 슈퍼박테리아로 인한 경우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언급하며 한국인의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로 본지의 지난 제490호 취재와 관련, 질병관리본부 약제내성과 김화수 연구사는 본지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일각에서는 슈퍼박테리아를 감염되자마자 죽는 것처럼 과장되게 알고 있다”며 “면역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지만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위험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돼 사망할 경우 사인은 ‘세균성 폐렴’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슈퍼박테리아에 의한 사망이 확인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그의 덧붙인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국내에서도 이미 수많은 슈퍼박테리아가 검출됐기 때문에 이로 인한 사망 사례가 여럿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한국, ‘감기, 맹장수술, 소아과 진료 등 항생제 남용 심각’
슈퍼 박테리아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항생제에 대한 높은 내성률’이며 이를 야기하는 것은 단연 ‘항생제 남용’이다. 앞서 슈퍼박테리아로 사망한 일본인들에게서 검출된 균에 대한 조사 결과, 균은 항생제에 대한 높은 내성을 갖고 있어 그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관련 의료계의 주장이다.
문제는 국내 항생제 내성률이 여타의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지난 달 연세대 의대 측은 “(약물에 대한) 일본의 내성률이 3%인 것에 반해 한국의 내성률은 51%를 넘는 수준”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서도 지난해 하반기동안 일반적인 감기에도 불필요한 항생제를 처방한 비율이 무려 51%에 달한다는 결과가 도출되면서 국내 항생제 남용 실태가 지적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8일 “현재 국내 슈퍼 박테리아균들에 대한 내성률이 증가추세다”고 전제하고 “MRAB 균에 대한 내성률은 지난 ’05년 18%에서 ’09년 51%로 2.8배 증가했다. 또한 MRSA 균의 내성률은 ’05년 65%에서 ’09년 75%로, VRE 균도 ’05년 29%에서 ’09년 37%로 각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이처럼 항생제에 대한 내성률이 높아지면 치료가 쉽지 않고, 병원 감염률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항생제에 대한 높은 내성률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또한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은 “지난 2005년 WHO 자료에 따르면 한국 병원 내에서 MRSA균이 검출되는 비율이 65~70%였다”면서 “미국 55%, 영국 40%, 스페인 28%, 호주 8%, 스웨덴 0.6% 등과 비교할 때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고 평했다. 이어 그는 “같은 황색포도상구균 감염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외국에서는 ‘메치실린’이란 약한 항생제를 사용해도 되는 것에 반해, 한국에서는 ‘바노마이신’과 같이 강력하고 새로운 항생제를 써야만 치료가 가능하다는 얘기”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이처럼 병원에서 강력 항생제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 몸에 내성균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결국 항생제의 사용증가는 결국 또 다른 내성균의 출현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원 의원은 또 “균의 내성 정도에 따라 1~3차 항생제가 분류돼 있다(1차: 별도 규제 없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사용가능 / 2차: 광범위한 사용은 피해야하고, 1차 항생제에 대한 부작용이 있을 경우 사용가능 / 3차: 사용이 엄격히 제한돼야할 항생제)”고 전제하고 최근 서울대병원의 항생제 처방량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2차 항생제’ 처방량은 지난 ’05년에 비해 4년 새 25.6%의 증가율을 보였고, 같은 기간 동안 ‘3차 항생제’ 처방량은 2.1배로 증가하면서 연평균 21%의 빠른 증가율을 보였다고. 이어 그는 “특히 ‘3차 항생제’는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방량이 증가했다”면서 “이러다간 향후 ‘3차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있는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항생제 남용 실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원 의원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절반 이상에서 ‘2차 항생제’를 처방했고, 감기 등 간단한 병을 진료해주는 의원에서도 ‘2차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었다. 또 맹장수술과 같은 간단한 수술에서도 ‘3차 항생제’를 사용하는 등 국내의 항생제 내성에 대한 심각성을 내비췄다. 더불어 민주당 주승용 의원도 비슷한 사례를 보고한 바 있다. 주 의원은 “소아청소년과의 항생제 처방률이 평균 56%로 전체 처방률보다 26%p 높다”고 밝힌 것. 특히 그는 “10번 내원할 경우 8~9번 항생제를 처방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항생제 남용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항생제 남용 문제 해결 위해 ‘보건 당국의 대책 마련’ 시급
이 같은 정황을 종합해보면 항생제 남용이 높은 수준인 한국 또한 슈퍼 박테리아 등의 질병에 대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의료계 일각에서는 슈퍼 박테리아 등 질병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항생제 남용을 줄이는 것을 우선책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이를 위해 무엇보다 보건당국과 정부 차원의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항생제 내성을 감소시키고, 새로운 내성균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현재 수행하고 있는 항생제 내성 모니터링을 더욱 확대하여 지속적인 감시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는 대형병원 중심으로 감시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데 감염관리가 취약한 요양병원 등 중소병원까지도 감시를 강화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원희목 의원 또한 “국가차원의 항생제 처방률 관리와 병원감염관리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스웨덴에서 MRSA 검출률이 낮은 이유는 항생제 내성균 감염 환자를 ‘격리’시키고 중환자실도 1인실로 운영하면서 철저히 병원감염 관리를 하기 때문”이라며 “병원은 면역기능이 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대부분의 내성균은 병원에서 감염이 시작돼 사회로 전파되는 것”이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어 그는 “현재 의료기관의 항생제 적정 처방방안개발이나 감염환자에 대한 격리병실 운영 정책이 없는 상태고, 내성환자 규모나 격리병실 수급현황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조차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이를 고쳐나갈 것을 당부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양승조 의원도 “질병관리본부는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실질적 관리를 맡아야하는 기관이지만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병원감염 중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균에 대한 병원감염은 사망에 이르는 등의 치명적 결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방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러기 위해 질병관리본부는 병원감염에 대한 정확한 보고체계를 갖추어 국가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