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족, 공시족들의 꿈의 메카
입시족, 공시족들의 꿈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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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학원열풍

[시사포커스=조은위 기자]대입 입시는 대치동, 공시는 노량진, 고시는 신림동. 이들은 모두 이른바 시험의 메카들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처럼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는 특정 구역이 정해져서 학원특구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다. 예전에는 대입시험이 시험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했지만 IMF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취업불황이 겹치며 이른바 공시, 고시 시험도 덩달아 인기다. 정부는 사교육을 줄이고자 ‘학파라치제도’까지 만들었지만 대치동 주변 학원가는 방학 때마다 지방에서 학원수강을 하러 오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또한 노량진은 경기불황으로 취업이 힘든 20대 청년들부터 30대 직장인들까지 대거 몰리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지금 ‘시험 공화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각종 시험 열풍으로 들끓고 있다.
지난 19일 본지 기자는 학원특구라 불리는 대치동 일대와 노량진역 부근을 찾아가 학원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대치동 학원가 풍경
620여 여개의 학원들이 밀집된 이른바 ‘특구 중의 특구’라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
그만큼 사람들은 서울 시내에서 사설학원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으로 대치동을 꼽는다. 지난 19일 본지 기자가 찾아간 대치역 주변은 소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은마아파트 입구 주변부터 학원의 간판들이 건물 벽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었다. 대치동에 가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간판이 ‘OO학원’이라고 하더니 그 정도로 각양각색의 학원 간판이 흔하게 눈에 띈다. 대치역에서 내려 기자가 지나가는 아저씨께 학원가를 여쭤보니 “어디가 딱히 학원가라고 볼 수 없고 대치동 주변이 다 학원가야”라며 “오후 4시 넘어가면 학생들로 만원이야”라고 말했다.


‘교육특구’로 불리는 대치동

지난해 서울 각 지역교육청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교육특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지역 학원의 25%가 집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이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학원가가 생겨나게 되면서 학원을 찾는 전국의 학생들이 서울 강남으로, 그것도 대치동으로 몰려들고 있다. 심지어 서울에 살면서도 자식들이 중학생이 될 무렵이면 대치동 쪽으로 이사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의사, 변호사,사업가 등 이른바 고소득 계층은 단순히 이사를 고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결행하는 경우가 많다. 대치동 쪽으로 이사하는 목적은 단 한 가지, 오직 자식 교육을 위해서다. 대치동이 명문학교가 몰려 있는 8학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근에 다종다양한 학원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찾아간 이날 대치동에서 만난 A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18)양은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수능준비를 하기 위해 대치동 학원을 선택했다”며 “유명하기도 하고 대치동 학원 하면 사람들이 알아주니까 그런 것 같다”고 대치동 학원을 선택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또 D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17)군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오는 곳은 지하철 3호선 대치역이다. 지난 9월부터 이곳 어학원에서 영어강좌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김군이 살고 있는 곳은 대치역에서 왕복 4시간 정도가 걸리는 경기도 일산이다. 먼 거리지만 김군이 굳이 이곳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간단했다.
“부족한 게 영어 회화와 듣기인데 이쪽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학원이 있기 때문이다”고 대답했다.
이어 기자가 만난 중학생 강모(14)군은 대치동에서 살기 때문이 좋다고 했다
굳이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바로 집 앞에 즐비한 학원을 선택해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가끔 부러움을 산다고 했다.
또한 기자가 지방 학생들이 대치동까지 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강군은 “그건 당연하다.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지방에서라도 오는 것 아니겠느냐”며 “대치동이 그만큼 유명해진 증거라 볼 수 있고 오히려 대치동을 알리는 것이라 생각해 좋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사교육특구라는 오명도 있어

이처럼 대치동이 ‘교육특구’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사교육 특구’라는 오명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소위 강남 8학군이 밀집된 지역의 특성과 맞물려 사교육 열풍을 조장한다는 일각의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대치동 C보습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L교사는 “이곳 학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들처럼 사회의 엘리트 계층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욕구가 크다”며 “그래서 사교육에 쏟아 붓는 돈도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의 대표적인 학원밀집 지역을 중점관리구역으로 지정해 집중 관리한다고 밝혔다. 중점관리구역에는 서울 대치동을 비롯한 전국 7개 지역의 이른바 사교육 특구다.
교과부 관계자는 "집중 지도단속과 동시에 학원수, 수강생수, 학원비 등의 증감 현황을 적시에 분석해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처럼 정부에서 사교육을 관리 감독한다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좀처럼 학원가 열풍은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유는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입학사정관제 때문이다.
입시학원 통계에 따르면 2011학년도 입학사정관 전형의 74.1%가 기존 수시모집 전형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무늬만 사정관제'를 실시하는 대학들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벌써부터 일부 학부모들은 입학사정관의 `입맛'에 맞는 `스펙'을 쌓기 위한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서 사설학원업체의 설명회에 쫓아다니기 급급해 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입학사정관제로 인해 사교육 열풍이 오히려 더 심각해 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취업준비도 아니고 대입을 위해 ‘스펙쌓기’에 올인 하는 우리 교육 현실의 웃지 못할 자화상인 것이다.

‘공시족 메카’로 떠오르는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유명했던 노량진이 지금은 공시족의 메카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재수학원이 밀집했던 노량진이었지만 높은 청년 실업률과 여성들의 출산ㆍ육아 부담에 공시족들이 늘며 노량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늘고 있다.
특히 노량진은 종로의 어학원, 강남의 대치동 등 사교육 경쟁지와 달리 철저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불안정한 고용이 계속되면서 공무원의 인기도가 높아지자 노량진 학원가에는 자연스럽게 공시족이 등장했다. 교사직의 선호도가 높아지며 임용시험 준비생들이 몰려들었고, 유례없는 취업난에 각종 자격증 취득을 위한 스펙족들도 만만치 않게 수를 확장했다.
최근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노량진녀’가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며 노량진 공시학원가는 또 한 번 유명세를 탔다.
이번에 화제가 된 ‘노량진녀’는 임용고시 준비생 차영란 씨. 차 씨는 지난달 교과부의 임용계획을 보고 좌절에 빠졌다. 시험을 한 달 여 앞두고 자신이 공부하던 공통사회 과목에서 임용계획이 없다는 공고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차 씨는 홀로 ‘임용계획 사전 예고제’촉구 서명운동을 벌이며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등 제도 개선을 요구 하고 나서기도 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차 씨의 활동에 네티즌들과 임용준비생들은 ‘노량진녀’라는 별칭을 붙여 그녀를 지지했고, 결국 교과부 장관으로부터 제도 개선 약속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일부 네티즌들은 차 씨에게 “이런 ‘개념녀’라면 언제든 환영한다”, “개인의 힘으로도 제도를 바꿀 수 있다”,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는 반응을 보였다.
차 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내년 임용계획 발표가 날 때까지 계속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노량진에는 차 씨 말고도 수많은 공시족이 자신의 꿈을 향해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노량진에서 꿈을 꾸다

노량진에 가면 ‘노량진녀’ 못지않게 열의가 넘치는 공시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노량진역을 나오자마자 기자를 맞은 것은 학원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줌마부대였다. 그리고 즐비한 고시학원 간판이 뒤를 따랐다. 공시학원으로 한번쯤 들어 봄직한 학원들부터 시작해 자신의 이름을 단 단과반 학원까지.
취재차 기자가 찾아간 노량진에서 만난 안 모씨(29)는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와 많이 초조하다는 안 씨는 “이번이 3년째인데 많이 불안하다. 요즘에는 임용고시 제도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이 많아서 더 그렇다”고 말했다.
안 씨는 학부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교육대학원에 입학해 교사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교사를 꿈꾸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노량진을 찾은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시험응시생들에게 노량진이 가장 유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원에서는 과목별로 학생에게 상담을 통해 맞춤 수업을 선택해 준다는 것.
그는 “제가 응시하는 과목에 맞게 학원에서 패키지로 잘 묶어 알려준다. 또한 시험에 관련된 각종 정보를 학원 홈페이지를 통해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다”며 “노량진 학원들은 이런 노하우를 잘 쌓고 있어서 시험응시생들이 많이 몰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한 안 씨에 따르면 노량진은 공무원 시험학원 말고도 각종 자격증과 관련된 학원들이 많아 주변에서도 학원하면 노량진을 제일 먼저 꼽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 또한 3년째 임용고시를 준비하지만 쉽게 포기 못하는 이유는 이번에는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며 “항상 시험볼 때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지만 매번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고 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또한 최근에 화제가 된 노량진녀의 심정이 이해 간다고 덧붙였다. 대게 임용고시가 일요일에 치러지는 것과는 다르게 이번 임용고시는 오는 23일 토요일에 치러진다.
이에 그녀는 “하루가 앞당겨진 것 또 한 공시족에는 부담감으로 작용되는 것인데 하물며 자기가 보려던 응시과목이 축소됐다는 것은 시험응시생에게는 큰 좌절로 다가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녀는 “그래도 노량진에는 나와 같은 고민과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경쟁도 하고 위안도 삼으며 공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과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뛰고 있다. 좀 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 한국 청년들은 학원의 메카들로 모여들고 있다. 그러나 대치동의 입시족이나 노량진의 공시족 인구는 불안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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