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12월에 미국에서 전격 판매될 최고급 세단 에쿠스의 가격을 탁송료를 포함해 기본형인 ‘시그너처’가 5만8천900달러(약 6천640만원), 고급형인 ‘얼티미트’가 6만5천400달러(약 7천260만원)로 최종 결정됐다. 미국에 판매될 에쿠스는 4.6리터 모델이다. 국내에서는 3.8리터 모델이 옵션에 따라 6622만~1억300만원이며, 4.6리터 프레스티지 모델은 1억900만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수입 에쿠스가 국내 차보다 더 저렴?’
그렇기 때문에 미국서 판매될 에쿠스는 국내 3.8리터 에쿠스에 대비하면 3000만원, 4.6리터로 비교하면 3500만 원 이상 싼 셈이다. 때문에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선 싸게 팔고, 그 손
해를 국내 소비자들한테 비싼 가격으로 전가하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현대자동차 측은 이러한 소비자의 항의에 대해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현대자동차 측은 “단순히 소비자 가격으로만 비교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미국에서는 차량 가격에 부과되는 별도 세금이 없지만, 국내는 배기량 2000㏄ 이상의 경우 특소세와 부가세 등 24.3%의 세금이 부과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 판매 모델이 4.6리터 급 엔진을 장착한 것은 맞지만 국내는 4.6리터 옵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3.8리터 중 상급 옵션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에쿠스를 역수입할 경우 국내보다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역수입을 할 때 발생하는 세금과 운송료를 더할 경우 판매 가격은 비슷하다“며 ”미국 판매 차량의 가격을 싸게 한 것은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 안착을 위한 전략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에쿠스의 미국에서의 가격에 대해 한국에서의 가격 차이를 단순 비교하기 보다는 현지에서 판매되는 벤츠나 BMW, 렉서스 등의 최고급 모델과 비교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벤츠 S클래스 기본형의 경우 미국에선 9만 달러(약 1억 원)대에 팔리지만 한국에선 1억5000만~2억 원까지 판매 된다”며 “렉서스 최고급 모델인 LS의 경우 미국에서 7만 달러(7875만원)대에 판매되고 있지만, 한국에선 1억3000만원에 판매된다. 결국 한국과 미국의 가격 차이는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하여 비교해봐야 제대로 따질 수 있다”고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내수·수출 가격 차별화 정책’은 비단 에쿠스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점이 항상 비판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쏘나타·엑센트·산타페·그랜저·제네시스 등 생산차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비싸게 팔고 있다. 현대차 측이 아무리 변명해도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YF쏘나타를 선보이면서 가격을 기존 모델보다 약 200만원이나 올렸다. 반면 쏘나타 기본형의 미국 판매가격은 1999년 1만4600달러에서 2009년 1만8200달러로 약 24.7%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런데 같은 기간 쏘나타의 국내 판매가격은 1999년 951만원에서 지난해 2125만원으로 무려 123.5%나 늘어났다. 아반떼 역시 국내 판매가격이 74.4% 급등했지만 미국에서는 23% 오르는 데 그쳤다. 더구나 경쟁 자동차인 르노삼성자동차는 2010년 SM5를 새로 내놓으면서 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현대차 ‘요즘은 저가 정책 펴지 않아’
“현대자동차의 폭리는 물가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해왔다”는 게 업계 관련자들의 한결같은 비판이다. 극명한 예로 2009년 포스코는 자동차회사에 파는 자동차용 원자재(강판) 가격을 15% 가까이 내렸다.
그런데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쏘나타 베르나 아반떼 등의 판매가격을 두 차례에 걸쳐 14% 쯤 올렸다. 이는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2.3%)의 여섯 배에 이른다. 반면 이 기간 GM대우 라세티는 39만원이 내렸고 SM5는 81만원이 떨어졌다.
여러 상황을 보면 현대자동차는 해외에서의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국내 자동차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의 사업보고서 등 자료를 보면, 2009년 현대차는 국내에서는 5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다.
또한 북미에서는 2000억 원, 아시아에서는 5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유럽에서 8000억 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해외 전체로는 1000억 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자동차는 다른 나라에서 입은 손실을 우리나라 고객을 통해 메우는 정책을 실시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 대해 현대자동차 측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내놓는 비난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아울러 “해외용 현대차가 몽땅 국내용보다 싼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일례로 현대자동차는 독일 등 유럽에서의 판매 가격은 국내보다 훨씬 비싸다. 현대자동차의 i30의 경우, 독일 판매 가격은 1만514유로(2348만원)~2만410유로(3195만원)로, 국내 판매 가격에 비해 상당히 높다.
미국 시장 진출 초기, 현대자동차는 토요타와 비슷하게 내수가격과는 별도로 저가 정책을 펼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요즘에 외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올해 쏘나타도 캠리와 대등한 가격에 책정돼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는 현대차가 생산하는 신차의 품질이 대폭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미 슈퍼볼 등 거대 행사에 스포츠 광고를 대대적으로 투입, 현대의 브랜드 이미지가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대차 측이 에쿠스의 가격을 평균 6만 달러 이상으로 정한 것도 ‘현대의 자신감’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판매량을 늘리려 했다기보다는 브랜드 자존심을 더 고려한 의외의 가격”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이제는 국내소비자들도 인터넷 등으로 손쉽게 미국 가격과 사양을 조회해 볼 수 있기 때문에 현대차도 근거 없이 내수 가격과 차이를 크게 둘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