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시장 재건축, 누구를 위한 시장정비사업인가
삼양시장 재건축, 누구를 위한 시장정비사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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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새로 개정된 ‘유통법’ 전혀 도움 안 돼

상인측 “삼양사의 재래시장 살린다는 말에 속았다”
L마트 “입점 노력중... 상인측과 성심껏 협의할 의사 있다”

[시사포커스=이태진 기자] 삼양시장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은 (주)삼양이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건물을 재건축한다는 말을 믿고 시장에서 나왔다. 상인들은 건물주가 재정비사업을 통해 삼양시장을 현대화해 새로이 단장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지난 9월 마지막 공사가 한창인 재건축 건물의 가림막을 벗겨지자 상인들은 경악했다. 누가 봐도 대형마트인 L마트를 위한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옛 삼양시장과 인근골목 상인들과 수유시장 상인들은 이에 반발해 L마트의 입점을 저지하기 건물 근처에서 생존을 위한 L마트입점규탄대회와 1인시위를 계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 [삼양상인협의회 제공] 삼양시장 재건축 건물에 L마트가 명시된 매장입구안내판이 설치된 모습. 현재는 떼어내서 없다.

◆ 상인측, 전특법에 따라 삼양시장 현대화하는 줄 알아

(주)삼양시장(이하 삼양사)이 시장에 들어와 있는 상인들을 상대로 재건축을 할테니 시장에서 나가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때는 2009년 4월경이다. ‘삼양상인협의회의’의 조규흥 회장에 따르면 삼양사측은 상인들한테 “예정된 시공날짜까지 나가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는 말로 압박하며 시장에서 퇴거를 종용했다. 지난 해 4월부터 3개월간 진행된 삼양사측의 퇴거요구에 상인들은 모두 삼양시장에서 나갔고, 7월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모 은행이 최종적으로 나가면서 삼양시장을 완전히 비웠다.

삼양시장에서 장사했던 한 상인에 따르면 삼양사는 작년 4월부터 상인들한테 퇴거요구를 시작할 때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재건축을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상인들은 공사하는 동안 잠시 인근 골목에서 장사를 하다가 재건축 건물이 완공되면 다시 들어와 장사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삼양시장에서 나온 상인들과 인근 상인들은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전특법)을 바탕으로 낡고 오래된 재래시장을 현대화하려는가 보구나하고 생각했다. 삼양시장을 위한 재건축 건물을 짓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던 퇴거 상인들과 인근 상인들은 지난 9월 삼양시장 재건축 건물의 가림막이 벗겨지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건축된 건물은 삼양시장을 위한 건물이 아니었다.

주차장을 포함한 약 2,500평 규모의 이 건물은 누가 봐도 대형마트를 위한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작년 8월경부터 시작된 삼양시장 재건축 공사는 약 1년 동안 진행됐지만, 상인들은 옛 삼양시장 부지에 SSM(Super Supermarket: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L마트가 들어설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 지난 22일 한 상인이 재건축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손 씨 “무식하게 목숨걸고 L마트 입점 막을 것”

지난 16일 오전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소재한 옛 삼양시장 자리에 재건축된 건물 현장 앞에는 200여 명의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옛 삼양시장 상인들과 수유시장에서 현재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들이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L마트의 입점을 막기 위해 재건축 건물 주변 바닥에 모여 앉아 플래카드를 저마다 들고 L마트 입점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수유시장도 문제의 L마트로부터 1km도 채 안되는 거리에 떨어져 있어 남의 일이 아닌 만큼 시장 내 500여 점포의 문을 전부 닫고 시위에 동참했다.

작년 8월부터 시작된 옛 삼양시장 위에 세위진 재건축 건물은 현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삼양시장에서 장사했던 상인들은 삼양사가 시장정비사업으로 건물을 철거한다고 하자 장사를 정리하고 나와 인근 시장에 자리를 잡은 상인들도 있는가 하면 일부는 이곳을 아예 떠난 상인들도 있다.

문제의 그 재건축 건물은 다른 대형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 2층과 지상 5층의 규모에 계산대 시설과 마트용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고, L마트의 상징인 누르스름한 건물외벽과 건물내 곳곳에 빨간색 내장재로 치장돼 있다. L마트가 재건축한 이 건물에 입점하게 되면 옛 삼양시장에서 장사했던 상인들은 기대한 것과 달리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장사할 수 없게 된다.

삼양사측이 삼양시장 건물을 철거한다고 해 뜻하지 않게 삼양시장 인근 골목에 ‘손시민의 반찬가계’를 다시 차려 운영하고 있는 윤순심(57)씨는 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쩔 수 없이 쫓겨나와 이곳에서 장사하게 됐다. 지난 1년여 동안 L마트 건물을 짓느라고 공사 차량들이 골목길을 막아 장사를 방해한 데다 삼양시장이 없어지면서 이곳에서 시장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겨 장사가 통 안 된다”며 “이곳 영세상인들은 다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며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또 “지금 이곳으로 쫓겨나오면서부터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며 “현재 죽고 싶은 심정”이라 말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어 그는 “우리는 무식한 만큼 무식한 방법으로 어떻게든 L마트의 입점을 목숨 걸고 저지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 삼양상인협의회 조규흥 회장

‘삼양상인협의회’의 조 회장은 본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삼양시장은 50여 년 된 시장이다”라며 “기업형 슈퍼마켓인 L마트가 삼양시장에 들어와 사례로 남게 되면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사례 자체를 남기지 않기 위해 반드시 L마트의 입점을 막을 것”이라고 강조해 말했다.

지난 10일 국회를 통과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하 유통법)도 L마트 입점을 저지하려는 옛 삼양시장 상인들과 인근 상인들한테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이번 유통법(개정2010.11.24) 제13조의3(전통상업보전구역의 지정)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등록·인정하고 있는 전통시장(재래시장)과 중소기업청장이 정하는 전통상점가의 경계로부터 반경 500m 이내는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기업형 슈퍼마켓이 입점하려 할 경우 이를 지자체가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L마트가 입점하려는 옛 삼양시장 부지에서부터 수유시장까지 거리는 약 700m, 동북시장까지는 약 600m로, 이들 두 시장은 유통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옛 삼양시장 상인들은 이 법과 아무 관련이 없어 이들 또한 유통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 삼양사, 무엇을 목적으로 시장정비사업을 했나

현재 삼양시장은 전통시장으로 강북구청에 ‘등록시장’으로 정식 등록돼 있다. 그러나 삼양사는 재건축 건물이 완공돼 시장정비사업이 끝나면 이 건물을 ‘전통시장 및 상점과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전특법) 제44조와 유통법 제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바에 따라 ‘대규모점포’ 개설등록을 해당 시장·군수·구청장에게 해야 한다. ‘유통법 시행령(개정 2009.10.1) 부칙 별표1’에서는 대규모점포를 대형마트, 전문점,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 그 밖의 대규모점포, 이들 6가지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2006년 6월 22일 전까지는 시행령 부칙 별표1 5호에서 대규모점포의 한 종류로 ‘시장’을 명시했었으나, 이날 유통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이 부분이 삭제됐다. 그러므로 이날부터 과거 시장법(1981년 12월 31일 폐지)에 따라 지방자시단체장(서울특별시장·직할시장 또는 도지사)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등록 혹은 인정된 재리시장은 이제 ‘그 밖의 대규모점포’에 해당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초 삼양사가 강북구청으로부터 시장정비사업에 대한 인가를 받을 때 사업계획서에 어떤 종류의 대규모점포로 명시해 사업인가를 받았는가이다. 이것이 확인되면 옛 삼양시장 상인측과 삼양사 간의 잘잘못이 분명히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전특법은 재래시장과 상점가의 현대화와 시장 정비를 촉진해 지역상권의 활성화와 유통산업의 균형 있는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법률로 시장정비사업을 위한 자금 지원과 세제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대기업 SSM들의 입점을 돕는 새로운 편법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삼양상인협의회측의 주장이다.

◆ L마트 “상인측과 만나 성의껏 협의할 의사 있다”

한편 L마트는 상인측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삼양시장 재건축 건물에 입점할 계획이 있는지 해당 마트의 한 관계자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해봤다. 이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현재 옛 삼양시장에 세워진 재건축 건물로 입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계약이 맺어진 상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삼양사측과 최종적으로 계약이 맺어져 입점이 확정되면 사업조정과정이 있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상인측과 만나 성심성의껏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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