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의 이목이 연평도 사건으로 쏠리면서 야권을 대표해야 할 손 대표의 책임도 무거워지고 있다. 당 대표에 취임한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에서 정국을 강타하는 대형 이슈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손 대표의 운영에 따라 위기를 맞을 수도 기회를 얻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준비했던 광화문 1인 시위와 장외투쟁 등은 연평도 포격으로 한방에 정리됐다. 본격적으로 정치적 현안에 뛰어들면서 야권의 힘을 결집하기도 전에 대형 이슈가 터져버린 것이다. 이는 아직 북한에 대한 정치적 노선이 준비되지 않은 민주당과 손 대표에게 악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손학규 리더십 시험대에 올라
그동안 민주당은 북한에 대해 ‘평화체제구축’을 주장해왔다. 지난 10년간 집권하면서 내세운 ‘햇볕정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민주당은 ‘햇볕정책’을 바탕으로 남북정상회담 개최,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활성화 등 다수의 성과를 거뒀다.
이때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중요 가치에는 화해를 바탕으로 한 남북관계가 자리 잡게 됐다. 이는 대다수의 진보진영이 내세우는 가치로 그 동안 보수 진영의 공격에도 과거의 성과를 바탕으로 설득을 펼칠 수 있었다.
천안함 사건으로 여권이 공격을 펼칠 때에도 ‘전쟁과 평화’의 논리를 내세워 북풍을 차단했었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은 기존의 무력 도발과 비교했을 때 그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은 민간인 사망 소식에 분노하고 있고 국가안보 강화에 의문을 품고 있다. 강도 높은 북한의 공격에 대한민국에도 평화가 아닌 전쟁이 현실로 부각된 것이다.
전쟁이 현실로 부각되면서 민주당도 더 이상 일방적인 평화만을 주장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렇듯 민주당이 곤혹스러운 상태에서 직접 진두지휘를 맡은 손 대표의 심정은 착잡하다. 아직 의견을 정리 못한 야권과는 달리 보수층은 연평도 사건으로 급격히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권의 대선 주자들이 북한에 대해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손 대표가 선택한 것은 기존 민주당의 체제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손 대표는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 불안만 가중시키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돼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여당이 정치적 악용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남북 모두 불필요하게 서로 자극하거나 과잉대응하지 않아야 한다”며 “대화를 통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편 가르기에 나서거나 네 탓, 내 탓 하는 소모적 논쟁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며 “전쟁의 유혹이 아무리 크더라도 평화를 이기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손 대표는 과거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햇볕정책을 지지해왔다. 북한에 대해 평화와 대화로 이끌어야한다는 기존 입장을 이어나감과 동시에 민주당의 가치관도 살린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연평도 타격으로 여론의 분위기가 무거운 이때 대화와 타협만 강조하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이번 사태는 사실상의 국지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번 포격으로 사망한 국군장병에게 삼가 조의를 표하고 유족들에게도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특히 손 대표는 북한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도발은 용납될 수 없다”며 “평화로 해결하려는 남녘 동포의 선의를 배신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손 대표의 발언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실리를 챙길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발언으로 보인다.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서는 비판의 입장을 보이면서 민주당의 기존 입장은 견지한다는 것은 1차적인 대처로서 가장 분란이 적은 선택이다.
민주, 北에 대한 교통정리 필요
손 대표가 1차적으로 당의 입장을 표명했지만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북한에 대한 대응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당 내 중도성향 의원들로부터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 25일 오전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반영됐다. 대북 결의안에 채택을 승인하면서 당 내에서도 “햇볕정책을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의 정체성으로 불리는 대북 정책의 변화가 제기된 원인은 이번 북한의 강도 높은 공격에 있다.
민간인까지 무차별 포격을 당했는데 지원과 대화를 통한 평화유지라는 논리를 더 이상 고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중도성향의 의원들은 기존의 정책을 유지하면서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추가사항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또 다른 목소리는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등 서로 의견이 나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북한 도발의 책임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있으며 햇볕정책을 수정한다는 것은 현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등식 때문이다.
한 의원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건드리는 순간 당은 심각한 논쟁과 내부 갈등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했다.
손 대표가 해결해야할 최우선의 과제는 당내 의견 통합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은 손 대표가 당의 기본 정체성을 지키는 선택을 했지만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만큼 화합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당의 다른 목소리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이끌어나간다면 앞으로의 행보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북한의 도발이 다시 한 번 이어질 경우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민주당은 심각한 분열을 겪을 수도 있다. 서둘러 북한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평도 사건으로 정치권 판도가 변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손 대표는 대포폰 정국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이번 연평도 포격으로 여권에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번 연평도 사태는 손 대표가 준비한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의식한 듯 손 대표는 “안보와 민주주의 문제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연평도 사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 ‘대포폰 게이트’가 언젠가 다시 가시화 될 거라는 경고였다.
한편 연평도 사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조율하는 손 대표와 달리 박지원 원내 대표는 정부의 대처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MB 대북강경책이 원인?
박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권이 강경한 대북정책을 쓴다면서 강경도 못했다”며 “정부는 북한이 발포하면 발포지를 완전 박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13분 있다가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비판했다. 이어 “제2차는 14분 있다가 대응했고, 발포지역을 박살내기는커녕 우리만 많은 희생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군대 막사에 포격을 가했다고 한다. 이것은 있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유연한 정책을 썼던 과거 민주정부 10년간 이런 불상사는 없었다”며 “강경한 대북정책을 쓴다는 이명박 정부에서 강경하지도 못하다”며 거듭 현 정부를 힐난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확전 방지’ 논란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발표를 우리 국민은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된다. 청와대에서는 분명히 ‘확전 자제하라’고 발표했고, 국방부장관도 국회에 와서 그렇게 얘기했다. 그런데 이제 ‘아니다. 배로 대응하라고 했다’고 한다”며 말 바꾸기를 꼬집었다.
그는 “도대체 병역미필 정권이 언제까지 이렇게 허울 좋은 안보를 내세울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진실게임으로 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분명한 책임을 져야한다”며 엄중한 문책을 요구했다.
정부의 허술한 대응과 안보 불안에 대한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평화와 대화를 주장하는 손 대표와는 다른 모습으로서 천안함 사건 때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부분이다. 민주당은 천안함 사건 때도 군의 허술한 대응을 지적하며 정부를 압박했었다.
이 대통령은 군의 허술한 대응에 대해서 발 빠르게 김태영 국방장관을 경질시키며 무마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군 기강 쇄신 차원에서도 이루어진 일이겠지만 북한의 민간인 공격에 대한 이슈가 다른 쪽으로 번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평화민주당의 한화갑 대표 역시 대북정책의 변화를 요구했다. 한 대표는 “그동안 화해협력정책을 펴왔는데 이렇게 죽음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북한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달래고 관리할 대상이기 때문에 너 죽고 나 죽자고 나오면 대결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대북정책을 국가적 차원이 아닌 정권 차원의 문제로 생각하고 차별화해서 이 같은 사태가 비롯됐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정책 일관성 결여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생각하고 대북정책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국민과 세계 여론을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대북정책을 창안하기 위해 전 국민적 지혜가 요구되는 때”라며 “북한은 더 이상 너 죽고 나 죽자는 정책으로 나올 게 아니라 개혁·개방을 서둘러 민족 활로를 공동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야권 내부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추세이다. 손 대표가 당을 이끄는 이래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위기를 잘 넘기고 남북관계의 문제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면 새로운 야권의 구심점을 확보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