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의 해안사구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 골프장 건설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이에 환경단체들이 극심한 반대를 펼치고 있어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문제가 된 모래언덕은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431호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다.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는 특히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사구 형성과 옛 환경을 밝히는데 있어 학술 가치가 대단히 큰 곳이다.
천혜환경 위협하는 골프장 건설
그런데 충남 태안군과 문화재청에 따르면 태안군 원북면 황촌리 일대 75만여㎡ 터에 사업비 1300억원 규모로 27홀(정규 18홀, 대중 9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사업자인 태안기업과 한국건설산업진흥은 지난 6월 태안군에 주민제안서를 제출한 뒤 본격적으로 골프장 건설에 나섰다.
문제는 이 골프장 예정지가 신두리 해안사구와 직선거리로 불과 120m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생태계·환경영향 조사도 없이 골프장이 들어서면 환경오염은 물론 사구 훼손도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태안기업의 골프장 건설에 대한 야망은 길고도 집요했다. 태안기업은 염전·양식장 자리였던 이곳에 2003년부터 골프장 건설을 꾸준히 추진했다. 처음에는 충청남도의 국토이용계획 변경 신청 반려로 계획이 좌절된 적도 있다. 2005년 당시 태안기업은 충남도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벌였으나 패소했다.
하지만 올해 4월 골프장 예정 부지가 체육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관리지역으로 변경되면서 골프장 사업은 다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한편 현재 태안군은 “지역경제 활성화로 주민 소득 증대를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골프장 건설에 대한 주민 공람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장 건설 움직임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즉시 반발하고 나섰다. “골프장 예정지와 해안사구 보호구역의 경계 지역에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어 이를 통해 토양 오염이 우려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골프장 건설을 위해 매립 공사를 실시하면 불가피하게 외부 토양이 유입된다. 이 과정에서 해안사구에 점토 지대가 생긴다. 이 때문에 사구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천연기념물이 온전한 모습을 지탱하지 못한다는 우려인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환경단체 및 전문가들은 “골프장에 농약이 살포되면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인 표범장지뱁을 위시한 양서류·파충류가 피부호흡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렇게 해안사구에 대해 안팎으로 문제가 제기되면 마땅히 문화재청이 대응해야 하는데 소홀하다는 비판도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5년 태안기업은 문화재청을 상대로 국가지정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 신청을 냈다. 당시 문화재청은 “해안사구와 골프장의 거리가 최소 120m여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달아 허가했던 전력이 있다.
지난 9월 태안기업은 다시 문화재청에 접수를 시켰다. 문화재청은 이번 신청에 대해서도 ‘사업기간 연장 성격’이라는 이유로 무사통과 시켰다. 현장 조사는커녕 서면 심사만 가지고 종전과 다름없이 통과시킨 것이다.
전국 해안사구 상당수가 ‘파괴’
환경단체들은 문화재청의 처사에 대해 하나같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골프장 사업 규모가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 재조사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이번에 건설될 골프 코스는 5년 전 신청 때에 비해 24홀에서 27홀로 규모가 커졌다”며 “아울러 도로·주차장 등 공공시설이 3만6665㎡에서 9만4984㎡로 2배 이상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개발 면적이 확대되는 반면 녹지 면적은 34만3840㎡에서 30만6747㎡로 오히려 10%가량 줄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지적이다.
문제는 환경 훼손뿐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골프장이 들어서면 사구뿐 아니라 어업을 생계로 하는 지역 주민들도 커다란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마을 전체가 복구하기 어려운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태안군은 지난 2007년 기름 유출 사고로 커다란 타격을 입은 바 있다. 해안사구의 생태계는 이러한 재앙을 극복하고 차츰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골프장 건설을 다시 추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안팎으로 강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 태안군은 다음 달 초 군 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충남도의 심의·의결을 요청할 계획이다
해안사구가 겪는 ‘수난’은 비단 충남 태안군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10월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해안사구 3곳 중 1곳은 해안도로와 방파제 설치 등 난개발로 침식 또는 파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9년 국립환경과학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안사구 142곳 중 36%인 51곳이 난개발과 골재 채취로 훼손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공원·수산자원보호구역 등 보호지역에 포함된 사구 39곳 가운데 천리포, 모항·장선·낙산·경포대 등 10곳(25.6%)이 침식이나 파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인공구조물 설치와 모래 채취 등으로 해안 침식이 가속화돼 국내 해안선의 길이는 1910년 7560㎞에서 2009년 5620㎞으로 1940㎞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침식도가 ‘양호’ 또는 ‘보통’으로 조사된 지역의 훼손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주 의원은 “광승·명사십리(이상 전북 고창)·운여·꽃지·신합(이상 충남 태안)·사탄동(인천 옹진) 등의 사구도 해안도로 건설과 방파제, 옹벽 건설 등으로 훼손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해안사구가 하루가 다르게 심각한 훼손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 동안 자연환경보
전법에 의해 생태경관보존지구로 지정된 사구는 충남 보령의 소황사구와 강원 강릉의 안인사구 등 고작 두 곳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호영 의원은 “해안 침식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난개발은 현행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만으로 예방하기 어렵다”며 “해안의 자연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