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법은 있는데...” 줄지 않는 성폭행 범죄
[진단] “법은 있는데...” 줄지 않는 성폭행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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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성폭행 범죄만 무려 ‘1만8천건’....법은 무용지물?

성폭력범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분석 이뤄져야
예방부터 사고시 대처까지 체계적인 시스템 필요해

[시사포커스=이태진 기자] 지난 2008년 12월경에 있은 조두순 사건과 올해 2월 있은 김길태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 사건을 계기고 우리 사회는 성폭력 범죄에 대해 재인식하는 계기가 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를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성매매 행위에 대해 단속을 강화한 후로 성폭행 범죄가 더욱 늘었다고 보는 분석과 인터넷 통신의 발달과 보편화로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서 생산된 포르노 영상물들이 인터넷을 통해 쉽게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데 성폭행 범죄가 늘었다고 보는 학계의 분석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폭행으로부터 보다 안전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돼 가는 가운데 정부와 국회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성폭력에 대응할지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줄지 않는 성폭행범죄

지난달 23일 장애인복지관에서 지체장애여성 D(21)씨를 알게 된 A(32)씨는 몇 차례 만남이 있은 후 인천 연수구에 소재한 한 음식점에서 D씨와 함께 술을 마시고 모텔로 유인했다. A씨는 D씨가 성관계를 갖는 데 반항하자 주먹으로 때려 제압한 뒤 성폭행했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지난달 25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A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주에 살고 있는 K(29)씨는 지난 2003년 7월말경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사촌 동생 J양을 성폭행했다. 이후 2008년 1월까지 J양에게 총 8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저질렀다. 전주지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백웅철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6년간 자신의 사촌 여동생을 성폭행한 K씨에 대해 징력 2년 6월을 선고했다.

Q(30)씨는 지난 8월 28일 오전 10시경 광주 서구 화정동의 한 원룸에 침입,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던 C(23)양과 후배 P(22)양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뒤 현금 15만원을 빼앗았다. Q씨는 서구와 광산구 일대의 원룸촌에서 3차례에 걸쳐 성폭행과 금품을 갈취했다. 경찰은 원룸침입 강·절도범 230여명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인 끝에 Q씨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9일 밤 10시 30분경 부산 진구 범전동 송공교차로에서는 G(19)양이 몰던 승용차가 들이 받혔다. W(40)씨는 다른 일당과 함께 여대생 운전자를 상대로 고의로 추돌사고를 내고 “변상해 주겠다”는 말로 피해자를 도로변으로 유인,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위협해 G양의 승용차를 타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G양에게서 현금카드를 뺐어 인근 모 은행에서 64만원을 갈취하고, 이후 G양을 모처로 끌고가 성폭행했다. 경찰은 이들을 공개수배 했고 버스에서 W씨를 봤다는 한 시민의 제보로 부산 중구 충무동 새벽시장 인근에서 W씨를 검거했다.

지난 2009년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는 18,351건으로, 2008년 17,178건에 비해 6.8%(1,173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부의 자료에 따르면 친족간 성폭행의 경우 2007년 120건, 2008년 240건, 2009년 352건으로 지난 3년간 3배 증가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사건은 6세 이하 122건, 7세 이상 12세 이하 895건 등 총 1,017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7년 1,081건과 2008년 1,220건에 비해 다소 줄었으나 하루에 12세 이하 아동 2.78명이 성폭행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처벌에만 치중된 성폭력방지대책

지난 2008년 12월 8세 여아를 성폭행해 항문과 생식기를 영구 파괴시킨 조두순(58) 사건, 올해 2월 24일 여중생을 납치해 인근 무속인 집에서 성폭행 후 살해하고 시신을 인근 주택 물탱크에 유기한 김길태(33)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 일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각성하는 계기가 돼 성폭력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대책이 마련됐지만 성폭행 사건은 줄어들 기미조차 없어 보인다.

성폭행은 상대방의 동의여부 또는 의사와 상관없이 물리적 폭력 또는 협박을 가해 상대방의 성기, 항문, 신체 등에 자신의 성기나 손가락 등을 삽입해 자신의 성적 만족을 취하거나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불법적 범죄행위다. 일반적으로 성폭행은 남성이 여성을 가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그 반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하고 있는 성폭행 범죄에 대한 처벌, 방지, 전과자 관리 등을 위해 마련된 대책으로 2010년 4월 15일에 제정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피법)’과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특법)’, 2010년 7월 23일에 제정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하 성약법), 2007년 4월 15일에 제정한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개정2010.4.15, 이하 전부법)’이 있다.

‘성피법’은 상담소,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보호시설의 설치·운영해 성폭력을 예방하고 성폭력피해자들을 보호·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법이다.

‘성특법’은 성폭력범죄의 처벌과 그 절차를 범행 대상, 다른 범죄와의 연계여부, 미수여부, 상해여부, 살인 또는 치사여부 등에 따라 차등적으로 규정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법이다.

‘성약법’은 16세 미만의 사람에 대해 성폭력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높은 성도착증 환자에게 성충동 약물치료를 실시하기 위해 마련한 법으로 약물치료를 위한 요건과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전부법’은 특정 범죄자의 재범 방지와 성행교정을 통해 재사회화를 시키고 이들 범죄자들의 행적과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전자장치를 신체에 부착해 특정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려고 마련한 법으로 전자장치 부착을 위한 절차, 피부착자의 의무, 보호관찰관의 임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조두순, 김길태 사건 후 국회는 기승을 부리는 성폭행범죄와 관련한 대책으로 이 같은 법들이 제정·개정해 시행하고 있지만 큰 실효성이 없는 실정이다.

◆ 정윤경 “CCTV가 성폭력예방책의 모든 것 아냐”

한국생활안전연합의 정윤경 정책개발국장은 본기자와 한 서면인터뷰에서 “현재 정부는 성폭력범죄 대책으로 성충동 약물치료, 양형기준강화, CCTV 설치확대, 전자발찌 적용확대 등을 제시했지만, 대부분의 대책들이 사후 처벌에만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한 뒤 “면밀한 검토없이 성급히 추진·시행되고 있는 그같은 강경대책들이 성폭력 예방 및 근절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구조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없이 처벌에 치중한 그러한 대책들이 과연 실질적인 예방책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현재 시행하고 있는 성폭력방지 대책들을 비판했다. 그는 이어 “CCTV 설치가 마치 예방책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보다 실질적으로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성폭력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분석과 대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 국장은 “국가차원의 정책으로 예방부터 사고발생 시 대처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고, 시민단체와 협력해 성범죄사고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및 각종 홍보자료를 개발해 일반시민, 학부모, 학교를 대상으로 성폭력예방교육과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설명하며 현재 시행중인 성폭력방지 대책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사전예방을 위해 범죄 취약지역, 취약대상에 대한 사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자에 대해선 교정프로그램을 강화하는 한편 보다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도록 이들에 대한 사후관리 또한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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