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재협상 ‘득과 실’
한미 FTA 재협상 ‘득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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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 국회, 다음 수순은 한미 FTA 비준안?

2007년을 시작으로 3년 이상 비준이 지연돼왔던 한미 FTA가 재협상을 거치면서 수많은 논란 끝에 지난 3일 타결, 국회 비준을 남겨두고 있다.

타결 직후에도 쇠고기와 자동차 시장의 추가 개방문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야권에서는 협상 결과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한 굴욕 협상에 비준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협상 결과를 두둔하면서 비준을 서두르고 있다.

한미 FTA를 두고 연일 쏟아지는 여야 간의 충돌 양상은 그렇지 않아도 대치를 거듭하는 정치권에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지난 8일 다수 여당인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처리에 난장판이 된 국회 상황이 한미 FTA로 다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미 한미 FTA도 여당 단독으로 강행처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에 야권은 파행에 아수라장이 된 현 국회의 상황에서 여당이 한미 FTA 마저 이와 같이 처리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일단 양국은 재협상을 통해 자동차 분야의 관세 철폐 기간 연장과 환경·안전 기준 등을 조율했고 돼지고기 관세 철폐 연장과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의무 이행 유예, 기업 내 전근자 비자 연장 등에 합의했다.

미국 측은 오바마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자동차 분야에 한국으로의 수출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이번 협상 결과를 반기는 분위기이고 한국 측은 자동차 시장을 내주는 대신 돼지고기 품목과 의약품, 기업 내 전근자 비자 유효기간 연장 등으로 최소한의 이익균형점을 챙겼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준 것에 비해 받은 것은 지극히 적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한미 동맹’을 빌미로 우리 측에서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청와대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인정한 부분이다. 또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좋지 않은 ‘선례’로 관련 협상국들이 이번 협상과 비슷한 수준의 합의를 요구할 수 있어 차후 발생될 수 있는 추가 양보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유럽연합 쪽에서는 한미 FTA의 재협상 결과에 자극받아 환경·안전 기준에 대한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고 나섰다. 최석영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 교섭대표는 지난 8일 이 부분에 대해 인정했고 “곧 환경규제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이번 협상에서 우리가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냈다고 주장하는 돼지고기와 의약품 분야는 그 효과가 미미해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애초 미국산 냉동 돼지고기의 관세 철폐는 2014년으로 예정됐지만 이번 협상에서 2년을 연장해 2016년에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이 또한 이 기간 동안 기존의 관세율 25%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단계별로 줄여 2014년 완전히 철폐할 예정이라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크게 이익될 게 없다는 분석이다.

의약품의 허가·특허 연계 의무 이행을 3년 유예한 것도 우리 측에 유리할 게 없다는 분석이다. 의약품의 허가·특허 연계란 약품의 판매에 있어 특허권자와 제약사 간의 중재와 관련된 조항으로 제약사가 약품을 판매할 때 정부를 통해 특허권자의 허가를 받아야하고 만약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제약사는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약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된다.

복제약을 주로 생산·판매하고 있는 국내 업계에 큰 피해가 우려되는 조항이지만 이번 협상에서 단순히 이행을 3년 유예하는 수준에 머물러 성과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우리 업체의 미국 내 파견 근로자에 대한 비자의 유효기간은 신규 지사는 1년에서 5년, 기존 지사는 3년에서 5년으로 각각 연장됐지만 경제적 효과로 보기에는 차원이 멀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미국으로의 수출량이 상당한 자동차 분야의 기대이익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게 사실이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07년 협정 당시 수출의 경우 2.5%의 관세가 철폐되면 우리는 1조원에 가까운 이익을 얻게 된다.

이번 재협상으로 양국 간에 5년 동안 관세 철폐가 연장된다면 수출량이 적은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미국으로의 수출이 많은 우리 측이 불리한 셈이다.

특히 관세 인하나 철폐로 인한 수입 급증이 당사국의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될 경우 수입을 제한하겠다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규정은 자동차 수출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한국 측에 불리하게 작용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타결 이후 쇠고기 시장은?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8일 보도했던 기사 내용에는 협상 당시의 정황이 잘 묘사돼있다. 신문은 “지난 금요일, 한국 협상단은 미국 자동차 관세를 없애는 것에 대한 5년 유예안 동의했다”면서 “이는 서울에선 논의조차 될 수 없었던 기간보다도 더 연장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더불어 한국으로 수출하는 미국산 자동차에 적용하던 안전 기준을 완화하는 것에도 동의했다”며 “미국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미국산 쇠고기 개방 압력을 누그러뜨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마지막에 “미국산 쇠고기 개방이 한국의 지도자들이 양보를 한다면 가장 폭발적인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는 안건이었다”고 덧붙였다.

기사의 내용을 보면 일단 우리 측이 자동차를 대폭 양보함으로써 쇠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은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 4일 미국의 통상전문지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Inside US Trade)>는 미 무역대표부 관계자의 말을 빌어 “월령에 상관없이 수주, 수일 내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는 이번에 미국 측이 자동차 분야의 양보를 받아 쇠고기 문제를 덮어놨을지라도 차후 언제든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또 재협상 기간 중 미육류업체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고를 각 매체에 대대적으로 내보내 이 같은 우려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넘어 미 육류수출협회는 내년 3월까지 매체 광고를 늘려 지속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미국산 쇠고기 추가 개방 문제가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이번 협상에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분위기이면서도 쇠고기 문제에 욕심을 내는 모습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재협상 타결 직후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 한국과 계속 논의해 나갈 뜻이 있음을 내비친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EU도 재협상 요구


EU는 우리가 미국 측과 한미 FTA 재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큰 관심을 보였고 결국 자동차의 환경·안전 기준에 대한 협의를 요구하고 나섰다. EU가 한미 FTA의 결과에 따라 ‘동등 대우’를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곧바로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관세만큼이나 제반 여건과 환경에 신경을 쓰는 유럽의 관련 업계가 한미 FTA에서 한국이 환경·안전 기준을 대폭 완화함에 따라 이에 자극을 받아 경쟁력 확보에 나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5년까지 10인 이하 승용차의 경우 1l당 17km, 배출가스는 1km당 140g 이하로 강화할 방침이지만 미국 측의 요구로 19%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기로 합의된 상태다.

안전기준 또한 대폭 완화됐다.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 시장으로 수출될 때 한국의 기준을 따를 필요가 없는 물량이 기존의 6,500대에서 거의 4배 증가한 2만 5천대까지 상향 조정됐다. 이로써 미국산 자동차는 미국의 안전기준을 충족할 경우, 자가 인증만 하면 된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7일 KBS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 온실가스 배출량과 연료효율과 관련해 “미국 수입차의 경우, 19%의 에누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EU가 똑같이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러한 가능성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같은 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FTA 결과가 한EU FTA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한EU FTA 협정문에 ‘동등 대우’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한EU FTA는 아직 발효되지 않아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부속 합의서와 비준


재협상이 타결되면서 양국은 국회 비준만을 남겨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 헌법 60조 규정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15일 이내에 조약 체결권자인 대통령이 최종 협정문에 서명하게 되고 이후 발효된다.

미국은 FTA 이행법률안이 하원과 상원을 통과해 대통령에게 전달되면 대통령이 이의 제기 없이 서명하고 법률로 확정된다.

양국이 모두 비준동의 절차를 마치면 서로 이행에 대한 국내 절차를 완료했다는 확인 서한을 교환하게 되는데 이 과정까지 마치게 되면 60일이 지난 후 각각 FTA가 발효된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통해 “기존의 협정문은 그대로 두고 이번에 합의된 내용은 별도의 서신 교환 형식으로 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럴 경우 한미 FTA 재협상 비준동의안은 이미 2008년 10월 국회에 제출돼 2009년 4월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처리된 비준동의안과는 별도로 국회에서 심의·의결될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 의회가 기존 협정문을 수정하려면 대통령의 권한을 다시 부여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한국 또한 기존의 협정문이 이미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고 기존의 협정문에 추가된 부분으로 전체를 수정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야권에서는 이러한 부속서 형태의 별도 합의문에 문제를 제기하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8일 이를 두고 “미국 의회의 FTA 비준 편의를 위해 또 다시 우리 국회의 비준 권한은 물론 국민을 무시한 통상독재의 전형”이라면서 “이는 국민이 국회에게 부여한 외국과의 통상협정에 대한 비준권한을 전적으로 침해하는 것이자,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통상폭거”라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재협상 내용 중 자동차 관세 철폐 시기 변경 등은 기존 한-미 FTA 협정문에 수정을 해야 하는 부분이고 국회에서 기존 협정문과 추가된 협정문을 비교 분석해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부속합의서만 심사할 경우 국회는 단순한 찬반 여부만 선택할 수 있을 뿐이라며 “비준절차 또한 미국 의회의 편의를 맞춰주고, 끝까지 국회와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게 편법 비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여기에 야권은 ‘원천무효’, ‘협정문 폐기’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비준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지난 9일 민주노동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계속되는 거짓말 끝에 나온 협상 결과는 너무나 참담하다”며 “자동차 관세철폐 시기 유예로 FTA 발효 이후 예상되는 실익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관세 철폐 이후에도 언제든지 이를 역진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와 스냅 백 등 독소조항만을 수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의회폭거에 국민적 충격이 어마어마한 상황”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행여라도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시도한다면, 그 순간이 정권의 무덤을 파는 첫 삽질이 될 것임을 경고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국민참여당도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미국에 대한 일방적 퍼주기로 ‘새로운 도전을 향한 희망’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고 평가한 뒤 “국민참여당은 현 정권이 망쳐 놓은 한미 FTA 재협상 결과에 대한 국회 비준을 반대한다. 국민과 야4당, 시민사회와 함께 비준 저지를 위해 연대 투쟁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지난 5일 긴급의원총회를 열어 “국익에 큰 손실을 가져오고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국가적 체면과 자존심을 짓밟는 한미 FTA,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한미 FTA 협상안은 인준절차고 뭐고 폐기되어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얼마 전 여당이 예산안 심의를 강행 처리하면서 국회가 파행을 겪은 상황에서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은 어떻게 처리할지 ‘제2의 충돌’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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