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그룹은 지난 12월 17일 정기인사를 가졌다. 임원 인사에서는 앞서 수장이 바뀐 LG전자를 제외한 LG디스플레이ㆍLG이노텍ㆍLG화학 등 주요 계열사 CEO들이 대부분 유임됐다.
이에따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체제는 당분간 변함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LG그룹 측은 “구 과장의 경우 내년 3월 직원 및 간부 인사 때 승진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구 과장은 후계자로서 당분간 후계자 훈련 및 검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이날 23개 계열사에서 사장 승진 2명, 부사장 승진 1명, 전무 승진 24명, 상무 승진 87명 등 총 114명에 대한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LG그룹은 이번 인사에 대해 구 회장의 ‘LG 식’ 인사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성과가 있는 최고경영자(CEO)는 교체하지 않는 등 급격한 변화 보다는 ‘조직 안정’을 우선시하는 구 회장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 과장에 대한 인사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구 과장의 인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후계자 작업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구 과장의 경우 다른 재벌 3세와 달리 알려진 바가 거의 없을 정도로 아직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구 과장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큰 아버지인 구 회장에게 양자로 입양됐다. 구 과장은 로체스터 공대를 졸업한 지난 2006년 LG전자 재정부문 대리로 입사했다.
이어 휴직하고 지난 2007년부터 2년간 미국 스탠포드에서 MBA 과정을 밟았고, 지난해 8월에 학업을 마치고, LG전자 과장으로 복직했다. 그해 9월 결혼과 함께 국내에서 잠시 체류하다가 지난해 11월 초 LG전자 재경부문 과장으로 복직해 현재 LG전자 뉴저지법인에서 근무 중이다.
구 과장(4.72%)은 구 회장(10.71%)과 구 부회장(7.63%), 구 희성그룹 회장(5.04%)에 이어 LG의 지주회사인 (주)LG의 4대주주에 올라가 있다.
위기의 LG, 구본준 회장 체제 계속 유지
유교적 문화를 강조하는 LG 그룹에서는 구 과장에 대한 빠른 승진보다는 단계를 밟아가며 승진시키겠다는 분위기다. 또한 아직 구 회장이 건재한데다 구 부회장이 LG 경영에 직접 관여하고 있고 경영권 승계 등 일련의 작업도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점도 LG그룹에서는 당장 구 과장에 대한 승진을 서둘러 진행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재계는 분석하고 있다.
특히 구 부회장은 LG그룹이 스마트폰 등 삼성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LG그룹과 전자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점도 당분간 구 부회장의 체제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LG그룹 내부에서는 구 부 회장의 그룹 회장 등극 가능성도 항상 거론돼 왔다.
지난 19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구 현 회장이 LG그룹 3세 그룹회장으로 취임한 뒤인 지난 2005년에도 구 부회장 승계설이 불거진 적이 있다. 당시는 LG카드 유동성 위기가 한창이던 때이다. 하지만 LG가는 유독 ‘장자 승계’ 전통이 강해 구 부회장 승계 시나리오는 위기 때마다 한번 씩 터져 나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경영권 승계는 이르지만 물밑 작업은 계속
이런 가운데 구 과장의 경영권 승계는 천천히 가되 물밑 작업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재계는 구 회장의 나이나 건강 등을 고려할 때 당장 후계구도를 논할 시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분구조상으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준비가 물밑에서 차분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작업은 특수관계인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됐다.
LG와 재계에 따르면 지난 2003년 3월 LG가 지주회사로 전환했을 때 11.68%였던 구자경 명예회장 장남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3남), 그리고 구본능(차남) 희성그룹 회장 및 구본무 회장의 장남 구 과장의 지분이 올 11월에는 28.10%로 증가했다. 더욱이 LG 지분을 가진 특수관계인의 수는 2003년 말 94명에서 꾸준히 줄어 올 6월에는 40명으로 급감했다.
즉 LG그룹에서 지주회사를 설립한 지 7년여만에 특수관계인(친인척)들의 수를 절반 이상 줄이며 후계구도 구축을 위한 초석다지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구 과장 지분도 꾸준히 늘어나 최근 5%에 육박하고 있다.
장자승계원칙이 철저한 LG가에서 구 과장이 경영승계훈련을 거치는 동안 지분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LG그룹은 “그룹 안정적 경영권 유지를 위해 특수관계인 중 불가피하게 지분을 정리해야 할 경우 구 회장 등이 이를 매입하고 있어 외형상 지분이 늘어난 것처럼 보일 뿐이며 당장 후계구도와는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LG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구 과장에 대해 LG가의 후계자 양성과 지분이 늘어나는 것은 상관없으며 당장 그룹이나 계열사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은 없다”며 “다만 구 회장의 장남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짧은 근무기간도 승진의 걸림돌
구 부회장의 나이가 아직은 60세로 한창 일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도 아직까지는 구 부회장의 체제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다소 짧은 근무기간도 아직까지는 구 과장에게는 임원급 승진에 걸림돌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 회장은 예전 럭키(LG화학) 과장에서 금성사(LG전자) 이사로 승진하기까지 6년이 걸렸다. 이때문에 4년차인 구 과장이 LG그룹의 수장으로 올라가기 까지는 당분간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오너 3세들이 30대 중반에는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최근 행태를 보면 2~3년 내에는 구 과장의 경영참여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재계 관계자는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 등 3대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봤을 때 구광모 과장 역시 당분간은 능력검증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