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진단기 제조업체로 유명한 메디슨(주)의 새로운 주인이 삼성전자로 결정됐다. 이번에 진행된 인수·합병은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어 전광석화로 이루어져 재계를 놀라게 했다. 이로 인해 최근 삼성전자가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헬스케어 사업’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12월 14일 삼성전자와 칸서스자산운용은 메디슨의 지분 43.5%와 초음파 기기의 탐촉자(프로브) 개발 협력사인 프로소닉의 지분 100%에 대한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메디슨(주)은 홍천에 본사를 둔 초음파 진단기기 전문 업체. 초음파 진단기 분야에서 국내 최대 의료기기 전문업체다. 국내 1세대 벤처기업인인 이민화 씨가 1985년 설립, 세계 시장의 7%를 차지해 GE, 필립스·지멘스·도시바에 이어 이 분야에서 5위에 올라 있다.
SK의 인수포기 왜?
이번 인수합병은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초스피드로 이루어졌다. 지난달 26일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SK 모두 메디슨 인수를 위해 칸서스자산운용과 적극적으로 접촉했다. 하지만 26일 이후 두 기업 태도가 확연히 바뀌었다.
삼성전자와 함께 메디슨(주)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SK(주)는 메디슨 내부의 문제로 매각할 수 있는 지분이 40%를 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여 지난주 제안서를 전격 철회한 바 있다.
SK(주) 측은 메디슨이 지닌 ‘하자’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SK 관계자는 "사외이사 입김이 센 지배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처분 소송이 걸린 이번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SK(주)가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데에는 SK(주)가 지주회사인 이유도 작용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 지분을 40% 이상 보유해야 한다. 따라서 SK(주)가 가처분 소송이 걸린 물량(15.19%)을 취득하지 못하면 메디슨 인수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승패는 법률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갈린 것이다.
이러한 법률 리스크는 삼성전자에게도 심각하게 다가왔다. 삼성전자는 인수·합병팀을 뒤로 물리고 대신 법무팀을 전면에 내세웠다고 한다. ‘구원투수’로 나선 법무팀은 박모 변호사가 제기한 가처분 소송 내용을 검토했고 "가처분 소송이 법원에서 인용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삼성전자 법무팀은 “이 같은 소송이 가격을 낮춰 메디슨을 살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해 협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했다. 삼성전자 법무팀은 지난 11월 하순부터 칸서스자산운용과 직접 대화에 나섰고 이 과정은 매각 자문사인 우리투자증권도 몰랐다.
결국 삼성전자와 칸서스자산운용의 주식양수도계약은 현재 진행 중인 주식매각금지 가처분소송 해결을 전제로 체결됐다. 매각 가격은 3,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6일 박모 변호사 등은 지난 2005년 메디슨 주식(15.19%)을 칸서스자산운용에 매각하면서 이사선임, 매각과정 등의 참여를 약속 받았다.
다만 이 사항이 지켜지지 않아 최근 가처분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오는 16일 첫 심문이 열렸다. 만약 가처분 외에 본안 소송까지 이어지면 매각 자체가 결렬될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헬스케어’에 목숨 걸었나?
한편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를 성공적으로 이뤄 세계 최고 수준의 IT 사업역량을 초음파 진단기 분야에 접목할 수 있게 됐다. 삼성 측은 앞으로 영상의학장비 부문에 진출, 신성장 동력인 헬스케어사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기회로 삼을 예정으로 보인다.
삼성은 지난해 ‘비전2020’을 발표하며 전자 산업과 타 사업간 융합을 통해 5~10년 후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바이오·의료기기·u-헬스 등 신사업을 집중 발굴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즉 이 분야에 1조2000억 원을 투자, 연매출 10조원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이번 메디슨 인수를 통해 기존 바이오시밀러·혈액진단기·진단영상기·의료정보·분자진단에 이어 진단영상의학의 중심인 초음파 진단기를 포함하게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메디슨의 전문 인재와 경험 및 고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삼성이 지닌 기술력·브랜드력·글로벌 경영능력을 융합해 의료기기 분야를 글로벌 사업으로 적극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삼성전자 외에 계열사들도 각각 바이오헬스 분야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삼성전기는 해외 제약업체와 나노리터급 약물토출시스템과 독성검출용세포칩 등 바이오부품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엑스선 영상을 디지털 영상정보로 전송해주는 포터블 엑스선 디텍터 양산 체제를 갖췄다. 삼성SDS는 삼성의료원과 함께 EMR(전자의무기록) 등 의료정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고, 삼성테크윈은 유전자 및 분자진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가 이번 메디슨 인수 효과를 통해 GE나 필립스 등 세계적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초음파기기 시장을 어떻게 선점할 수 있을지 업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헬스케어 업체 관계자는 “메디슨의 초음파기기는 산부인과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GE, 필립스 등의 기기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삼성의 기술력이 어떻게 융합되느냐에 따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인수합병이 삼성그룹에 있어 의미가 남다른 것은 출범된 지 얼마 안 된 이재용 사장과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체제 아래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첫 번째 딜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인수·합병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전자는 인수합병 시장에서 한 번도 좋은 결과를 거둔 적이 없었다”며 “소송까지 얽혀 있는 중소기업을 인수·합병 한 것은 삼성에게 있어 경제적 실리 이상으로 의미가 깊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김순택 부회장은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으로 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사업을 삼성의 차세대 먹을거리로 선정한 바 있다. 이번 매각 협상 진행 과정에 개입한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의료사업과 관련하여 이미 태스크포스 팀을 갖추고 있었다”라며 “이번에 인수한 메디슨과 기존 태스크포스 팀 간을 연계하여, 합병을 통해 의료사업의 도약을 꾀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메디슨(주)의 우리사주조합측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1대 주주 지분이 삼성전자로 넘어가더라도 홍천공장 이전 금지, 기업공개(상장) 추진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