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설을 맞아 사회 각계 주요 인사와 사회적 배려계층 등에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이번에 보내는 선물상자에는 쌀국수와 잡곡세트 등 전국 각지의 농수산물이 골고루 담겼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명절 선물을 했을까. 대통령마다 가지각색으로 준비된 선물상자들은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보낼지, 그 숨은 뜻조차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의 올해 설 선물이 공개됐다. 오는 22일부터 사회 각계 주요 인사와 사회적 배려계층 등 6000여 명에게 전해질 선물이 베일을 벗은 것.
‘봉황인삼’서 ‘쌀’까지…
이번에 이 대통령이 선택한 명절 선물은 충남 부여산 ‘쌀국수’다. 여기에 검은콩(전남 보성), 찰흑미(경남 함양), 찰현미(강원 영월), 팥(충북 충주), 김가루(전북 부안) 등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잡곡세트를 더했다.
이 대통령의 명절 선물에는 유난히 쌀로 만든 식품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09년 설에는 대구 달성에서 생산된 4색 떡이 포함됐고, 추석에는 사회적 배려계층 및 각계 주요 인사 7000명에게 햅쌀과 쌀국수를 선물로 보냈다.
또한 지난해 설에는 충남 아산에서 생산한 쌀로 만든 떡국 떡과 멸치세트 등 지역 특산물을 선물상자에 담겼다. 소년소녀가장에게는 전자사전이, 불교계 인사에게는 떡국 떡과 표고버섯 세트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쌀 사랑’은 쌀 소비 감소 및 쌀 풍작에 따른 쌀값 급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한 데서 비롯됐다. 또한 유난히 떡을 좋아하는 이 대통령의 개인적인 입맛(?)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화합’도 이 대통령의 명절 선물 선택 기준이다. 지난해 설에는 경남 사천과 전북 군산에서 각각 생산한 멸치를 함께 담아, 같은 해 추석에는 경북의 된장, 전북의 고추장, 경기의 참깨, 충북의 참기름, 충남의 들기름, 제주의 고사리, 경남의 취나물, 강원의 건호박, 전남의 표고버섯 등 전국 각지의 농산물 9종 세트를, 올해 설에는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잡곡세트를 설 선물에 포함해 지역화합의 의미를 담았다는 것.
다양한 의미를 담은 이 대통령의 선물상자는 전직 대통령, 5부요인, 국회의원, 장·차관, 종교계, 언론계, 여성계, 교육계, 과학기술계, 문화예술계, 노동계, 농어민단체, 시민단체 등 사회 각계각층 주요 인사들에게 보내질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환경미화원, 자원봉사자, 의사 상자, 국가유공자, 독도의용수비대, 순직소방·경찰 등 사회적 배려계층에게도 전해진다.
특히 이번 명절 선물은 서해교전·천안함 및 연평도 포격 희생자 유가족들에게도 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쌀’을 명절 선물로 선택하거나 ‘지역화합’의 의미를 전했던 것은 아니다. 시대마다 대통령들의 선물도, 그것에 숨은 의미도 모습을 달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봉황문양이 새겨진 인삼과 수삼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봉황문양이 새겨진 인삼을 명절 선물로 택했다. 인삼을 담은 상자에 봉황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봉황 인삼’이라 불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떡값’을 챙겼다. “명절인데 떡이라 사시라”며 ‘돈’을 건넨 것. 명절만 되면 국회의원에게는 100~200만원, 주요 인사들에게는 1000만원이 넘는 격려금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200만원이 웬만한 집 한 채 값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떡값’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정권마저 바뀌자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던 대통령들은 철퇴를 맞았고, 통치자금에 대한 잣대도 엄격해졌다.
때문에 이후 정권을 잡은 대통령들의 선물은 한결 소박해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각 멸치와 김을 명절 선물 단골 목록에 올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멸치’는 그가 정계 입문 때부터 빼놓지 않았던 선물이기도 하다. 부친인 고 김홍조옹이 고향 거제도산 멸치를 보내줬기 때문이다. 야당 시절 ‘YS 멸치’로 불리며 명절마다 3000상자, 여당을 맡고 나서는 5000상자 이상 각계에 선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 외에도 한과, 녹차, 도자기 찻잔 세트와 장식용 옹기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다양했다. 그러나 취임 후 2003년 추석에는 복분자주와 한과, 2004년 설에는 국화주와 잣·은행·곶감·호두, 추석에는 소곡주, 2005년 설에는 이강주, 추석에는 전통 민속주인 문배주와 독도산 오징어, 남해 죽방멸치, 강원 홍천산 잣, 2006년 설에는 가야곡왕주, 2007년 설에는 송화백일주, 추석에는 이강주, 2008년 설에는 문배술 등 매년 선물상자에 ‘전통주’가 빠지지 않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복분자주를 시작으로 국화주, 소곡주, 이강주, 문배술, 가야곡 왕주, 송화백일주 등 전통 민속주를 선물로 보냈다”며 “이 전통주들은 각 지역의 대표 민속주이기도 해 ‘지역간 화합’을 바라는 마음도 깃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잘못 보내 죄송”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의 명절 선물을 보면 당시 시대상황과 대통령이 강조하고자 한 정치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잘못 보낸 선물상자는 화가 돼 돌아오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추석 때 집중호우 피해자와 소년소녀가장에게 ‘국민 화합’의 의미로 9개도에서 생산되는 대표차와 다기 세트를 선물해 뭇매를 맞았다. 이에 청와대는 서둘러 쌀 등 다른 선물을 추가로 보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