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담론보다 신랄한 고백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그 어떤 담론보다 신랄한 고백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은 ‘책에 관한 책’이지만 ‘책에 관한 책’이 아니기도 하다. 제목만 보면 저자가 방대한 독서 편력을 자랑할 것 같고, 신종 독서법을 알려주겠다고 목에 힘을 줄 것 같지만 의외로 평범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외로 평범한 책중독자이다.  
 

전직 체육 선생님,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찰스 디킨스, 가끔 막말과 독설도 서슴지 않는 수다쟁이, 책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책중독자. 요약하자면, 전혀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독자다. 하지만 이 사람, 굉장히 정이 간다. 위트 넘치는 촌철살인 글쓰기로 숨은 팬을 여럿 거느리고 있을 법한 인터넷 서평꾼, 동네 헌책방에서 수십 번 스친 마을 주민, 만원 버스에서도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익명의 시민, 요약하자면, 애서가와 생활인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평범한 책중독자의 액면 그대로의 고백.
 

저자 톰 라비가 일상에서 포착한, 책 사랑에 관한 생활 밀착형 만담쇼다. 스스로를 ‘책중독자’라고 밝히는 톰 라비는 처절한 자기 고백에서 출발하여, 주변 책중독자들의 경험과 전설적인 책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두루 섞어낸다.
 

이 책은 ‘마음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이끌어내는 자기계발서 형식을 재기 넘치게 패러디하고 있다. 실상 이 책은 자기계발서와 치유 서사에 비판적이다. 아니, 이에 염증을 느끼지만, 정색하는 대신 자기계발서의 논리를 유쾌하게 비꼬는 방식을 택한다. 그 논리란 평범한 인생을 고통의 기억으로 재구성해 그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명령을 부과하는 것이며, 모든 문제의 책임을 사회가 아닌 자아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톰 라비는 책중독이 개인적인 문제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타고난 유전병이라는 사실을 조속히 밝혀달라고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는 책중독자가 ‘되는’ 게 아니라 책중독자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문제화된 고통이 개인 정체성의 핵심이 되고 심리치료‧치유 산업이 확장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고통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과연 책중독만 문제일까?
 

톰 라비는, 책이 아니더라도 마약, 알코올, 니코틴, 도박, 폭식증, 거식증, 쇼핑, 좀도둑질, 섹스, 초콜릿, 일, 텔레비전 시청, 피트니스, 종교, 사랑 등 우리가 걱정해야 할 중독증은 끝이 없다는 말로, 중독 담론을 조롱한다.
 

이 투덜이 책중독자의 불붙은 화살이 향하는 곳은 자기계발서만이 아니다. 톰 라비는 책을 둘러싼 공간과 독서 문화, 출판 산업 전반을 구석구석 물어뜯는다. 팔푼이 책중독자인 자기 자신부터 다이어트 책과 심리치유서의 유행, 출판 마케팅 자본, 대형 슈퍼마켓 같은 서점과 책도 파는 슈퍼마켓, 책으로 젠체하는 속물들과 미련한 수집광들, 책 읽을 시간을 주지 않는 직장 문화, 책을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는 작자들까지, 이에 대한 논평은 자조와 가벼운 빈정거림, 살의殺意 등 다양한 감정들을 뿜어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