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과세요건 재검토해
“OECD조세협약에 따르면 명백하게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수익자가 별도 존재한다면 과세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세무조사 배경은 일단 대대적인 조사과정에서 외국계펀드의 회계장부를 확보, 향후 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세청이 사상 최초로 국내에서 영업중인 외국계투자펀드에 대해 일제 세무조사에 착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국세청과 금융권에 따르면 국세청은 뉴브리지캐피탈·칼라일·GIC(싱가포르투자청)·씨티그룹·론스타 등 7개 외국계펀드에 대해 지난 12일부터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이번 세무조사에서는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외국계펀드의 거래행태와 국내 자본의 해외유출 등에 대한 조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반증하듯 지난 13일 국세청은 강남 스타타워에 있는 론스타에 조사직원을 파견, 밤샘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파악되며 조사결과 발표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주성 국세청장은 지난달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외국계 투기자본의 조세회피에 대해 면밀히 검토함은 물론 과세성립 요건까지 재검토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외국계펀드 운용사의 경우 현재까지 불법행위나 명백한 세금탈루를 자행한 적이 없어 탈세혐의 포착을 위한 세무조사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심지어 정부가 외국계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회계장부를 입수해 미흡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국내제도의 정비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세청이 외국계펀드에 대한 일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론스타를 필두로 뉴브리지캐피탈·씨티그룹·칼라일 등 7개 외국계펀드 운용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착수돼 11개에 달하는 대규모 거래자료가 압수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이번 세무조사는 은행 이사진에서 외국인 이사수 제한 및 각종 외국계펀드 규제에 대한 해외언론의 비판이 이어지는 민감한 시점에서 실시되는 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가 2중과세 방지협정을 맺고 있는 국가가 60여개에 달하고 국부유출 논란에 대해 외국정부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일방적인 외국계펀드에 대한 세무조사가 부담스럽기는 정부도 마찬가지이지만 해외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편법적 투자행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의 필요성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 편법 투자행태에 초점
국세청은 일단 조세피난처(tax haven)를 이용한 편법적인 투자와 그동안 외국자본 유치에 만 급급했던 국내실정에 따라 완화된 규제를 악용, 탈세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기업과 달리 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외국계펀드의 특성상 해외조사의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으며 외국정부나 해외언론의 비판의 강도도 점차 거세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외국계펀드의 조사과정에서 불가피한 해외현지 세무조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오히려 역공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에 대한 경계를 주문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 잇따라 대형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며 편법·탈법적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는 점에서 이번 세무조사의 강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리스크를 부담한 합법적인 투자를 통해 얻은 외국자본의 차익은 인정해야 한다”고 발언, 논란을 촉발시키고 있다. 특히 외국자본의 국내규제가 일방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주장과 해외언론의 공세는 물론 국부유출 논쟁이 최근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민감한 쟁점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전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외국계펀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면 외국자본의 불만은 물론 국제화·외자유치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 1조원 차익…뉴브리지 타깃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세무조사가 최근 핫이슈로 급부상한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매각차익 1조원에 대한 과세여부 판단에 일단 초점이 맞춰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1조원이 넘는 매각차익에 대한 과세여부 검토과정에서 외국계펀드를 일제 조사, 투자자간 형평성논란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세무조사 배경은 일단 대대적인 조사과정에서 외국계펀드의 회계장부를 확보, 향후 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 따르면 뉴브리지캐피탈의 경우 최근 제일은행 지분을 매각하면서 1조원이 넘는 차익을 얻었으며 이에 대한 조세피난처를 이용, 세금을 전혀 납부하지 않아 물의를 빚고 있다.
당초 뉴브리지캐피탈은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만든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워 제일은행을 인수한 바 있는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권한이 없어서 과세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국세청은 외국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실제 수익자가 별도로 존재할 경우 탈세혐의가 있을 것으로 판단, 말레이시아 정부와 협의를 통해 과세근거를 명확히 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세정가 관계자는 “OECD조세협약에 따르면 명백하게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수익자가 별도 존재한다면 과세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탈세시도 또는 탈세혐의가 있을 경우 조세협약 상대국가와 협의를 거쳐 과세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조세협약 규정과 과세근거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일단 우리정부가 조세회피혐의에 과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 해당정부 동의를 전제로 한 만큼 결국 과세가 어려울 것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론스타의 경우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 편법적인 거래의혹이 제기됐으며 강남 스타타워 매각과 동아건설 채권입찰 등으로 꾸준하게 불공정 편법거래 및 세금탈루 의혹을 받아왔다.
이를 반증하듯 론스타는 지난해말 서울 강남소재 스타타워를 싱가폴투자청에 매각해 2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지만 벨기에 현지법인을 활용, 차익에 대한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았다. 더욱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동아건설 채권매각입찰에 참여를 시도,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국내은행 대주주인 외국계펀드의 금융시장 교란행위에 대한 비난여론을 촉발시켰었다.
칼라일의 경우 지난 2000년 한미은행 인수과정에서 외국인이 금융기관의 지분 10%이상을 보유하려면 반드시 금융회사나 금융지주회사로 제한한다는 은행법 때문에 실패에 직면했다. 당시 정부에서 현행법률상 문제를 들어 인수반대 입장을 천명하자 칼라일은 JP모건을 대주주로 한 컨소시엄을 구성, 한미은행 인수에 성공했으나 뒤늦게 편법인수 의혹이 제기돼왔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인수에 참여한 외국계펀드 대부분이 칼라일이 지배하는 가운데 한미은행 인수과정에서 편법으로 대주주적격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 세무조사 근거취약 우려
따라서 국세청은 이들 거래가 대부분 해외 페이퍼컴퍼니인 국내 투자주체의 실체와 근거지 등을 확인해 우리정부의 과세권 행사가 가능한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재경부와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에서 회계장부를 입수, 이들의 투자행태 및 투자자의 실체 등을 파악하는데 역량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미흡한 규제정책을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들 외국계펀드 운용사들이 오랜 기간 해외투자를 해왔던 만큼 명백한 불법행위나 세금탈루행위를 자행, 제재를 받은 경우가 없는 만큼 세무조사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그간 외국계펀드 투자와 경영행태를 감안하면 명백한 불법행위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세무조사에서 탈세혐의를 포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벌이는 것은 탈세혐의를 적발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계펀드의 교묘한 차익추구에 미흡한 규제정비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이주성 국세청장이 “현행 관련법률과 제도상 문제점 등으로 인해 외국계펀드의 투자차익에 대한 과세가 어려울 수 있다”고 토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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