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나왔습니까?, 인기척 좀”
“李총리 나왔습니까?, 인기척 좀”
  • 김부삼
  • 승인 2005.04.18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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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인, 정화원 의원
4월 국회 대정부 질문 마지막 날인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선 시각 장애인 인 한나라당 정화원의원이 질문을 마치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야 의원들은 정 의원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김영선 의원은 “김영선!”이라고 이름을 밝히고 격려했다. 앞을 못보는 정 의원을 위해서였다.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은 “정 의원님, 그렇게 잘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헌정사상 첫 대정부 질문을 한 것을 격려하는 박수였다. 의정활동을 위한 점자 자료를 읽느라 손가락 끝이 벗겨질 정도이고, 47분 질문에 필요한 점자 원고를 모두 외워 장애를 뛰어넘은 그의 노력은 치하받을 만하다. 정 의원은 질문에 앞서 “저에게 50%의 시간을 더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점자는 분량이 일반 글에 비해 10배 많고, 읽는 속도는 5배 느리니 (듣기) 힘드시겠으나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어 이 총리가 소리없이 답변석으로 나오자“총리 나오셨습니까? 다른 분들은 나오실 때 기척을 해주시면 좋겠다”며 “이것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국제적 관례이며, 지나가다 보게 되면 인사를 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예의”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 △장애 인 LPG 차량 면세 지원 △장애인 의무고용률 확대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의무화 △사회복지사 충원 및 임금 현실화 등을 차분하고 막힘 없이 요구했다. 정 의원은“국내 흡연자를 1200만명으로 계산할 경우 담배 소매점은 흡연인구 80명당 1개꼴이다. 흡연인구를 줄이기 위해서는 담배 점포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이해찬 총리는 “정 의원께서 적절하게 중요한 말씀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출범 초기 참여 복지 개념을 내세웠던 정부는 이후 거꾸로 가는 장애인정책을 펼침으로써 장애인 불참정부가 됐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정 의원은 김진표 교육부장관을 상대로는 “장애인 문제를 초·중·고 교육에 포함시켜서 장애인를 예방하자”고 원고에 없는 질의를 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3살 때인 6·25 때 피난을 가다가 포탄의 화염이 눈에 들어간 후,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19세 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좌절감 때문에 죽으려고 자살을 여러 차례 시도했어요. 그러다가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 살 바에는 열심히 살자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정 의원은 침구사로 활동하다가 장애인운동에 눈을 떠 30여년 동안 관련 활동을 해왔다. 부산에 점자도서관, 장애인을 위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부산시 의원을 거쳐 작년 4월 총선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라는 다짐을 써 놓고 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84개 시민사회단체는 정부 행사를 거부한 채 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투쟁을 벌이고 있다. 벌써 4년째 계속되는 행사다.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아 매일 외출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40%에 달하고, 70% 이상의 장애인들이 실업에 허덕이고 있으며, 50%가 넘는 장애인들의 학력이 겨우 초등학교 졸업 이하인 것이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현실이다. 이러니 국가인권위 건물에 '대한민국에 장애인 인권은 없다'는 플래카드가 걸려도 할 말이 없다. 누구라도 갑자기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의 부담은 당사자나 그 가족만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인권의 당당한 주체로 인정하고 그들의 교육과 생계, 사회적 권리를 향상시키는 종합대책이 꾸준하게 실천돼야 건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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