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쫓지만 ‘외로움’은 정말 싫어”
“‘꿈’을 쫓지만 ‘외로움’은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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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신림동 고시촌

     전세난 후유증에 고시촌 구성원들도 이젠 바뀌어 
     직장인까지 싼 물가와 집값 때문에 고시원으로 몰려
     로스쿨 법안 도입 등으로 고시촌 전체 인원 감소세
     “청춘 다 보내고, 몇 번 실패하니 자살 생각 들더라”

 고시촌에는 이제 고시생들만 살지 않는다. 오른 물가와 집값을 피해 상대적으로 싼 곳을 찾아 고시촌까지 흘러온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시촌의 구성 인원이 달라지면서 고시원의 풍경 또한 달라졌다. 한편으로 풍경은 달라졌지만 고시생들의 처지는 여전하다. 지난 2월말 노량진에서는 고시생 두 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고시촌 입성 경험자들은 그들의 자살 이유로 하나같이 ‘외로움’을 꼽고 있다. 꿈을 향해 자신의 현재를 쏟아 부어야만 하는 고시생들이 물가상승 등의 요인으로 한계에 부딪힌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자살 원인이 하나로 단순화 될 수는 없다는 의견이며 오늘날 고시원의 환경 변화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역에서 5155번 버스를 타면 ‘신림 고시촌’이라는 이름의 정거장을 볼 수 있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7·9급 공무원, 임용고시 등 다양한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 그곳에 몰려있다.

 

신림동, 고시생 천국은 옛말 

 그들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 혹은 그 이상까지 오래 머물며 합격의 영광을 꿈꾼다. 고시생들은 해바라기처럼 합격만을 바라며 한 끼에 2300원 정도하는 식사를 하고 학원을 가고 독서실을 간다. 그리고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잠을 잔다.
 

 고시촌 초입은 호프집, 바, 노래방, 각종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그것은 여느 동네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초입에서 위쪽으로 조금 걸어가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골목 어귀에 서 있는 전봇대마다 고시원, 원룸텔, 원룸 광고 전단지들이 빽빽이 붙어있다. 고시촌 초입에서 위쪽으로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그래서 고시촌은 크게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나뉘어져 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위쪽에는 주로 조용하고 한적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분들이 선호하긴 해요. 대신 눈 오거나 더운 여름날에는 오르락내리락 하기 힘들죠. 그래도 그거 빼면 저렴하게 살기 좋으니까”라며 위구역과 아래구역이 큰 차이는 없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고시원이요? 요즘엔 원룸을 많이 하는데……. 고시원들이 장사가 안 되니까 원룸으로 리모델링을 해놔서, 특히 여자 혼자 오면 원룸을 하더라구요. 방에 화장실 딸려 있고 침대랑 책상 옵션으로 있는 곳에서 살면, 부엌이야 뭐 공부하는데 매번 해먹을 수도 없고 공동이 낫죠. 대부분 그래요, 요즘엔. 형편이 아주 어렵지 않고선 그게 낫지. 쾌적한데서 건강 생각도 하고”라며 요즘은 원룸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원룸의 가격에 대해서 묻자 그는 “보증금 100에 24만원이 현재 나온 것 중 제일 싸다”고 말한 뒤 “매년 5만원씩 올리다가 경기가 안 좋아서 이번엔 5만원 정도 낮추었다”고 말했다.  
 

 지역자치구 관계자 역시 부동산 값이 오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물가도 오르고, 전세난도 있어 심각한 것은 알지만 여기는 오히려 월세 가격을 낮추는 추세다. 원래 구정 지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방을 많이 알아보러 다녀야하는데 해마다 감소했다. 빈 방이 많이 남아서 집주인들이 집을 구하러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한테 접근해 직접 원룸 광고를 하기도 한다. 내가 알기론 몇 년 간 집값을 올린 일이 없다. 고시촌 사람이 많이 빠져나가서 식당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오른 식자재값 때문에 더욱 고민이 많다. 어딜 가나 나빠진 경기 때문에 다들 어렵긴 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시원 이젠 원룸으로 개조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빠져나간 것인지를 묻자 “로스쿨이 생기면서부터 점차 감소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신림 고시촌은 노량진 고시촌과 달리 수험생이 없다. 수능을 제외한 고시 공부를 하기엔 괜찮은 환경이지만 수능 전문 학원이 없어 수험생이 없는 것이다. 대기업에 들어가기에 유리한 스펙 중 하나는 학벌이다. 
 

 노량진은 현재의 학벌을 더 높이기 위해 재수는 물론 다니던 학교를 관두고 공부를 시작한 삼수, 사수, 오수생까지 가세해 인원이 늘어나는 추세인 반면 신림 고시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시생들이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한창 공부를 할 시간임을 감안하더라도 몇몇은 길거리에서 봄직한데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관계자는 “오히려 요즘은 전세난을 피해 싼 방을 찾아 떠밀려 온 직장인들이 종종 부동산을 찾는다. 그래서 원룸으로 많이들 개조하는 것 같다. 고시원이 좀 낡기도 낡았지만, 그래도 예전엔 고시생 천국이었는데……”라며 고시촌이 적어도 옛날 같지 않음을 알렸다.  
 

 전세대란을 피해 고시촌을 찾아든 K씨(31·남)는 작년 9월에 이사를 와 50분 거리의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K씨는 “보증금이 적어도 월세 들어올 수 있거든요. 직장을 서울로 옮기면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해가 갈수록 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시생이 아니라서 인근 마트에서 장을 봐와 밥을 해 먹곤 하는데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걸 느껴요. 그나마 여긴 자취하는 이들을 배려해 야채든 휴지든 1인용으로 파니까 과소비는 없는 편이지만, 다른 곳에 비해 식당 밥값도 싼 편이고요”라며 이곳에 찾아든 이유를 밝혔다.

직장인 전세난 피해 신림동으로
 
 K씨는 고시생이 많아 조용하게 지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밤이 되면 시끄럽다고 했다. “제가 그나마 아래편에 살아요. 입구 쪽에 술집이랑 밥집 많은 곳이요. 서울대생, 근처 사는 사람들이 밤이면 모여들어서 시끌시끌한 면이 있죠. 고시생들이 고시를 준비하지 않는 일반인들을 달가워하지 않죠, 방해가 될까봐. 그런데 역으로 일반인을 방해하는 고시생도 가끔 있죠. 바로 옆방에 사는 사람인데 어느 순간에선가부터 술을 먹고 돌아다니고 그래요. 걔네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아들 고생한다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와서 청소하고 가던데”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O씨(27·여) 역시 적은 돈을 가지고 원룸에 살 수 있어 방을 얻었다. 올 초부터 원룸 살이를 시작했는데 지나가면서 고시학원을 볼 때마다 공무원 시험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O씨는 “아무래도 철밥통이니까, 되기만 하면 좋죠. 그런데 워낙 경쟁률이 세서 엄두도 안 나요. 요즘에 가끔 나이 드신 분들을 학원 근처에서 자주 봐요. 그분들, 시험 준비 하신다던데”라고 전했다. 
 

 최근 학원가에서는 고시를 준비하는 직장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올해 CPA를 치른 L씨(35·남)는 내년에 첫째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시험이 어려워서 결과는 잘 모르겠다. 결과를 떠나 꾸준히 도전할 생각이다. 지금 학원비 부담이 있긴 하지만 애들이 큰 뒤 부담할 돈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좀 더 안정적인 직장에 몸을 담고 싶다”고 밝혔다.  
 

 부동산 관계자에 의하면 고시촌은 현재 고시생만 살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방을 보러 오는 이들이 직장인이나 대학생으로 바뀌었을 정도이다. 이는 오늘날 고시촌의 구성원이 많이 바뀌었음을 짐작케 한다.        


고시생, 떠나는 자와 남는 자 

 고시촌을 몇 바퀴 돌자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하려는 고시생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도 고시생들은 여전히 ‘추리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고시생들 몇이 서점가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들은 서로가 말을 섞지 않는다. 말을 붙여보려 해도 상대방의 얼굴만 힐끔 바라볼 뿐, 상대의 시간이 얼마나 빠듯할지를 짐작하게 된다.
기자는 어렵게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지만 아무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고시 생활의 특성상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그들을 이해하지만 한편으론 야속하다. 다시 말을 걸어본다. 또 다시 말을 걸고 또 건다. 어렵게 S씨와 P씨를 만날 수 있었다.    
 

 P씨는(26·남) 지방 소재의 법학과 휴학생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고시를 준비한다는 게 만만치 않아 1년을 목표로 잡고 고시생이 되었다. 고시촌에 오면 고시원에서 줄창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돈이 들어갈 곳이 너무 많아 처음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P씨는 “고시원에서 공부하는 게 생각보다 녹록치 않아요. 좁고 숨 막혀서 몰입이 잘 안 돼요, 핑계 같겠지만. 처음엔 제일 싼 고시원에서 공부만 했어요. 학원 다닐 엄두도 안 나고 부모님께 손 벌리기는 정말 싫었거든요. 그런데 알아보니 고시원에서는 잠만 자고 독서실 가서는 공부하고 학원에서 강의 듣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야 고시촌에 머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서. 고민하다가 결국 부모님께 털어놨더니 도와주셨어요. 지금은 학원 다니고 독서실 다니고 고시원에서는 잠만 자요, 밥은 맨날 사먹고”라며 고시 공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자세한 비용은 밝힐 수 없고 한 달에 100만원 조금 못 미친다고 했다. 그는 비용 때문에 심리적 부담감이 꽤 크다고 했다. 최근 노량진 고시생 자살 소식을 듣고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 두려웠다고 한다. 그는 “20대가 이대로 가다가 끝나면 어쩌나 싶다”며 고시생활의 시작을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에 비유하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생활비, 한 달에 100만원 남짓”

 그러나 심리적 부담감보다 더 큰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다잡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혼자서라도 술 한 잔 하고 싶고 하다가 참아요.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고시생이 아닌 분들 보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나만 알고 견디고 다독여서 공부하는 게 참 외롭긴 하네요. 전 이제 시작인데도 이런데, 장기 고시생들은 어떻게 버텼나 모르겠어요.”라고 말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년에 고시원을 떠날 예정이라는 S씨(42·남)는 말을 아꼈다. 연거푸 담배 두 개비를 피우더니 불쑥 기자에게 “청춘을 다 보냈다. 몇 번 실패하고 나니, 솔직히 자살 생각도 들더라. 살다보니 꿈이 꼭 희망의 근거는 아니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노량진 고시촌에 비해 차분해진 신림동 고시촌의 풍경이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고시생인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꿈 때문이다. 한 고시생은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작년에 떨어져서 많이 울었어요. 이번에 준비하면서 다시 또 그 과정을 겪어야 하나 싶어서 막막했죠. 모르면 모를까 뻔히 다 아는 길을……. 그래도 많은 것을 얻었던 것 같아요. 인내하는 법, 나 자신을 컨트롤 하는 법 같은 거요. 그때보다 더 나아진 내가 다시 또 도전하는 거잖아요. 외롭지만 최선을 다하는 게 어떤 건지 알았으니까요.”
 

 고시촌은 떠나는 사람들과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 교차한다. 언제 왔는지 갔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남아있는 자들은 적어도 꿈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과거 고시촌 입성 선배들이 그랬듯 2011년인 지금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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