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여성들, '취집' 거부하기엔 너무 달콤한 유혹
미혼여성들, '취집' 거부하기엔 너무 달콤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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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집(취업+시집) 실태추적

      취집, 취업난 때문? 남성에게 의존하는 경향 때문? 
      ‘취업 대신 취집할 의향’조사, 45.5% ‘있다’고 답해
      취업난이 부른 사회 현상……‘취업 스트레스’ 벗어나고파 
      “가사와 육아도 자아실현만큼의 가치 있다”는 주장도


 2,30대 여성들이 ‘취집’을 갈망하고 있다. 취집은 ‘취업+시집’이란 신조어로 몇 년 전부터 등장해, 최근 본격적으로 실생활에 파고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 2월, 한 온라인 취업 포털사이트가 20∼30대 미혼 여성 구직자 336명을 대상으로 '취업대신 취집할 의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5.5%가 '있다'고 답해 놀라움을 선사한 바 있다. 바꿔 말하면, 이는 미혼 여성 구직자 2명중 1명은 취업 대신 결혼을 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풀이돼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조사 결과 응답자 대부분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어서'(36.6%, 복수응답)를 이유로 꼽았다. 다음으로는 '취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35.9%), '결혼부터 하고 나중에 일해도 되어서'(22.2%) 순으로 답이 나왔다.


 안정된 삶을 위해

 올해 스물세 살 대학생인 Y씨는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얼마 전 ‘취집’ 관련된 기사가 쏟아져 나오자 취집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Y씨나 주변 친구들은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차라리 결혼이나 했으면 좋겠다”며 농담 속에 진담을 섞은 지도 오래다.   
 

 Y씨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왔다. 대학 재학 중 스펙을 쌓기 위해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학점도 괜찮은 편이다. 그녀는 올해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목표였던 적은 없다. 남들이 하니까 본인도 지원을 결심했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여긴다. Y씨는 “위로 언니가 둘 있는데 큰 언니는 예술 전공해서 돈벌이가 시원찮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큰 언니가 대단해 보일 때도 있지만 돈을 못 버니까 옆에서 보기에 썩 좋아 보이진 않아요. 둘째 언니는 대기업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더 나이차기 전에 중소기업 들어갔고요. 박봉에 스트레스 쌓여가면서 일하는 게 너무 안 됐어요”라며 자신은 다르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대기업 입사에 도전해보겠지만 동시에 맞선 시장에 자신을 전시해 볼 생각이다. 
 

 그녀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젊어서 가치가 높을 때 결혼해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자아실현도 한 순간이지, 언니들 보면 꼭 좋아 보이지도 않거든요. 결혼한 친구들 보면서 한숨 쉬고 부럽다고 하니까. 난 일찍 애 낳고 문화센터에서 사소한 거 배우고 요리하고 블로그에 요리 찍어서 올리고 그러면 좋겠다 싶은 거죠”라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내비쳤다.    

오랜 직장 생활에 지쳐

 서른한 살인 B씨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학 졸업 후 두 번의 이직을 거쳐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오래된 직장 생활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했다. 친구들 대부분이 작년 가을에 결혼하더니 다가오는 봄에 결혼을 앞둔 이가 2명 더 추가되어 자칫 혼자만 솔로가  될까 전전긍긍이다. 그녀는 “무엇보다 학원 강사는 자신이 돈을 모아 학원을 차리지 않는 한, 혹은 스타 강사가 되지 않는 한 비전이 없다”고 말한다. 교단에 서면 몰라도 오십 넘어서까지 학원 분필을 잡고 있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B씨는 “결혼을 해 현명한 주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며 조건 괜찮은 남자와의 선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B씨와 같은 경우는 종종 있어 왔다. 장기간 지속된 업무 스트레스에 결혼 적령기도 지났으니 ‘취집’을 고려할만 하지 않겠냐며 이해하는 쪽이 많다. 그러나 Y씨는 어린 나이에 취직도 하기 전에 ‘취집’을 고려하고 있어 취업난이 불러들인 새로운 현상이라는 의견이 보태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이 취집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취업난을 꼽고 있다. 한 전문가는 “88만원 세대는 아직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해마다 백수나 백조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남성보다 여성의 취업이 불리해진 것도 한몫했다”며 취업난의 심각함을 역설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 결혼정보업체에서는 86년생 이하의 여대생 회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학생 회원은 부모님에 의해 강제로 끌려오는 대학 졸업반 학생과 대학원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늘날엔 대학생 회원이 더 많아졌고 직접 가입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결혼정보업체, 여대생 회원 급증

 Y씨를 비롯한 Y씨의 친구들은 ‘조혼이 하나의 트렌드’라고 말한다. Y씨의 친구 P씨는 “어릴 땐 늦게까지 결혼 안하고 혼자 힘으로 돈도 벌고 인생을 즐기는 골드 미스가 꿈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골드 미스가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나이 들면 외로울 것 같다. 차라리 조건 좋은 남자의 경제력에 기대 빨리 결혼하고 애 낳고 자유로워지는 것도 괜찮다. 그리고 결국 골드미스도 궁극적으로는 결혼을 하게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Y씨는 “어린 게 벌써부터 조건 따진다고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어른들도 많다. 하지만 또래 친구들은 공감한다. 만나면 뭐해서 먹고 살 거냐는 말이 오가는 판국이다. 그리고 어차피 나이 들면 조건 안 따지는 것도 아니고 일찌감치 포기할 거 포기하고 취업보다 성공률이 높은 결혼에 도전하는 것뿐이다”며 거들었다.  
 

 Y씨와 친구들은 주부가 되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완벽한 가정주부’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Y씨는 “요리도 하면 할수록 심오하고, 애를 잘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아이와 함께 항상 책을 읽어가면서 교육을 할 생각이에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요.”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결혼이 하나의 도피처이자 수단으로 전락했다. 조건만 맞으면 오케이란 식이니 문제”라는 지적이다.

 결혼은 도피처가 아니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결혼은 예로부터 가정 경제를 위해 선택한 수단에 불과했다”며 “사랑에 빠지기 전에 조건을 보고 서로를 재왔던 것도 새삼스럽지 않은 상황에 정말 문제는 이런 선택을 고려하게 만든 환경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결혼이 과거에 비해 무게감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또한 새삼스럽지 않다. 이혼률이 증가하는 사회 속에서 파생된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신기한 것은 이들이 결혼을 도피처로 삼는 것과 동시에 프로 주부로서의 알뜰한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30대인 기혼자들이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만든 요리의 레시피를 공개하고 살림과 육아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는 등 주부로서 프로 의식을 갖고 있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비춰지고 있어 주부가 될 결심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부가 되면 생활이 암울해진다는 의식이 팽배해있다면 아무리 취업난이 작용해도 어린 대학생들이 주부가 될 결심을 하지 않는다. 몇 년 전 가사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꽤 높은 수치였던 것이 알려지면서 주부에 대한 사회 인식이 높아졌다. 가사와 육아가 자아실현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걸 인정받은 것이다. 이것이 지금 20대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취직 대신 시집을 생각할 정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그러나 남자들은 경제 불황으로 인해 결혼을 피하고 있는 추세”라며 “남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성향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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