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통을 따지는 폐쇄적인 재벌가에서 사위들은 대체로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는 게 일반적인 관례였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재벌닷컴이 승진현황을 조사한 결과에도 나왔다. 사위의 경우 사원에서 임원에 오르는 기간이 평균 5년이 걸렸고, 임원이 된 이후에도 상위 직급으로 승진하는데 평균 2.8년이 소요돼 총수의 아들과 딸에 비해 기간이 길었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에는 많은 인내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재벌가에서는 오직 실력만으로 경영자의 위치까지 올라간 사위들의 활약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등이 대표적인 사위 CEO로 꼽히고 있다. 이들은 실력만으로 재벌가의 높은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현재현, 법조인 출신에서 '사위 경영인'으로
그 중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가 바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다. 그는 재벌가 사위 CEO의 대명사로 통한다. 동양그룹 창업주 이양구 회장의 맏사위로, 불과 29살의 어린 나이인 지난 1977년 부산지검 검사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재벌가에서 보기드문 법조인 출신 경영인인 것이다.
현 회장은 고 이양구 회장의 장녀인 이혜경 동양레저 부회장과 결혼하면서 19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경영에 참여했으며 1989년부터는 동양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회장에 오르기까지 무려 12년의 기간이 걸렸다.
아들이 없던 장인이 후계자가 돼줬으면 했고 이를 받아들였다는 현재현 회장을 말을 들어보면 그의 변신은 운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 회장은 ‘사위 경영인’라는 꼬리표 대신 자타가 공인하는 능력있는 경영인을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즉 잘 나가는 사위경영의 원조로 꼽힐 수밖에 없다.
현 회장은 무기는 바로 탁월한 금융 감각이었다. 80년대 초반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관련 분야를 전공한 현 회장은 발빠른 투자능력을 발휘에 제조업에서 금융중심의 기업으로 만드는게 결정적인 공헌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동양그룹이 IMF이후 종합금융그룹으로 탈바꿈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에는 그의 금융감각과 리더쉽이 작용했다는게 주변의 평가다.
동양그룹에서 분리된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 역시 대표적인 사위 경영인으로 꼽힌다. 고 이 회장의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현재 그룹의 전반적인 경영을 총괄하고 있고 부인인 이화경 사장이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맡고 있다. 담철곤 회장은 2001년 동양그룹에서 독립한 이후 오리온그룹을 급성장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90년대 초반 일찌감치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 덕에 중국 러시아 등 해외시장 선점에 성공했고 지금은 유통과 금융 등 신규사업 진출도 모색 중에 있다. 최근에는 오리온그룹의 메가박스 매각 이후 그룹의 무게 중심이 담 회장에게 더욱 기우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 현대가 사위 경영인 파격적 인사 눈길
삼성가에서도 사위경영 사례는 눈에 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둘째 사위인 김재열 부사장은 최근 제일모직 경영기획총괄 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이서현 남편으로 잘 알려진 김재열 제일모직 사장이 석달 만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가에서 이건희 회장의 사위가 사장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또 맏사위가 아닌 둘째 사위가 먼저 사장에 오르는 다소 파격적인 인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있었던 삼성 임원 인사에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 한 지 불과 석달 만의 일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빙상연맹 회장 입후보에 따른 ‘예우 차원’이라지만 회장의 첫 ‘사위 사장’이란 점에서 세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삼성의 후계경영 구도에 ‘사위경영’이 더해지다 보니 많은 화젯거리를 남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의 사위 사장의 사례는 또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의 사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첫째 사위는 의사지만 둘째 사위는 경영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바로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발군의 실적을 올리면서 ‘카드업계 최고 CEO’라는 찬사를 얻고 있다. 정 사장은 과감한 공격적인경영과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으로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업계 2위로 단숨에 끌어올리는 공신으로 꼽힌다. 2003년 현대카드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지난해 자신이 맡고 있는 현대차 계열 3개 금융회사의 영업이익을 1조원으로 끌어올려 났다.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 역시 초고속 승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신 사장은 조만간 현대하이스코 공동 대표이사를 넘어 독자적으로 회사 경영 전면에 나선다. 신 사장은 3월 18일 열릴 주주총회에서 단독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신 사장은 정몽구 회장의 신임이 두터우며 사업능력 또한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현대정공을 거쳐 98년 현대하이스코에 입사했고 2001년 수출담당 이사를 맡았다. 이후 2003년 영업본부장 겸 기획담당 부사장을 맡아 1조원대에 머물던 매출을 2조3000억원으로 끌어올리는 게 기여했다.
현대그룹 외에도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둘째 사위인 박장석 SKC 사장은도 능력있는 경연인으로 꼽히면서 7년 가까이 기업을 이끌고 있으며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장녀 채은정씨의 남편 안용찬 애경 사장 역시 사위라기보다 전문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더 인정받고 있는 경우다.
사위경영인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반면 재벌가의 사위라는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재벌가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인들보다 빠른 승진 혜택을 세간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재벌가의 사위라는 이유만으로도 갖가지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기가 쉬운 길만은 아니다.
사위들이 아예 기회조차 못가지는 경우도 있다. LG가, 코오롱가, 금호아시아나가 등의 경우에는 사위들이 기를 못펴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딸들과 사위들의 경영참여는 없고 주로 아들들이 지분과 경영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경영능력에 대한 수업을 착실하게 받았거나 탁월한 감각을 갖추었다고 해도 혹독한 검증을 거치고 다년간의 현장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점에서 사위 경영인은 쉽게 탄생되기는 힘들다.
결국 재벌가의 자녀들 사이에서 경쟁을 하고 주변에서도 꼽지않은 시선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오직 실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위들의 운명인 셈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앞으로 재벌가의 사위들이 그룹 경영의 한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에서도 후계구도와는 별개로 경영능력이 탁월한 사위들에게 회사의 일정부분을 맡기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며 “재벌가의 자녀들처럼 후계구도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사위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